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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달동네에도 월드컵이 떴다

“내게도 이변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서울 신림7동 달동네 ‘난곡’마을 김주남군의 월드컵 … 축구 국가대표 막연한 희망이 현실로 바뀌었으면

  •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내게도 이변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게도 이변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전이 열리던 5월31일 밤 8시30분께. 서울 신림7동 달동네, 이른바 ‘난곡’의 김주남군(12)네 집에도 텔레비전 소리가 커졌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이자 전 대회 우승팀인 프랑스와 월드컵에 첫 출전하는 세네갈의 경기는 그 결과가 너무 뻔하다고 느꼈을까. 팬티만 입고 방바닥에 벌렁 누운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남군이 세 살 위 형 주광군에게 말했다.

“한국팀도 안 나오고 별로 신이 안 난다, 형아.”

“야, 너는 축구 볼 줄도 모르는구나. 프랑스가 세계 최강이야. 예술축구 하는 거 보기가 쉬운 줄 알아?”

그 말에 주남군이 입을 삐죽거린다. 주남군도 축구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5월14일 동작교육청이 한국의 월드컵 개최를 기념해 연 지역 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 난향초교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 6학년 4학급 145명 가운데서 선발된 대표팀은 급조된 데다 축구골대도 없는 좁은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좋은 실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난우초교에서 열린 이날 경기에는 난향 난곡 미성 삼성 신우 난우 신성 등 주변의 7개 초교가 참가해 토너먼트를 벌였는데, 난향초교는 첫 경기에서 지고 말았다.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한 주남군은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빠른 발놀림을 보이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뛰어다니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지고요.”

난향초교 이휴성 교감(48)은 “난곡 아이들도 월드컵 열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아이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월드컵 기간에 언제 휴교하는지 물어오는 아이들도 많았고, 14일 치러진 축구대회에 대한 관심도 무척 높았다고 한다.

주광군(15·난우중 2년) 역시 축구라면 열일 제쳐놓고 달려들 만큼 좋아한다. 학교에 축구부가 없어 선수생활은 못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때 단거리선수 출신이었다는 장점을 살려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일 만큼 축구에 빠져 있다.

어머니 이정순씨(36)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닦달해도 주광군의 관심은 오직 축구뿐이다. 이씨는 ‘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제법 공부를 잘했던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축구만 열심히 하고 공부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서운하다.

“내게도 이변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힘든 노동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 김경수씨(46)와 어머니 이씨도 모처럼 텔레비전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이른 시각에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긴 힘들었다. 이씨는 식당일을 마치고 밤 11시쯤, 아버지 역시 밤 10시쯤에나 귀가했다. 저녁밥은 형제가 스스로 챙겨먹고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들어 이씨가 토요일과 일요일만 식당에 나가면서 자신들에게 신경 쓰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하고 있다. 김씨도 최근 몇 달간은 일거리가 끊이지 않은 데다 귀가시간이 앞당겨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이미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 익숙해 있다. 주남군은 자신이 학교 대표선수로 다른 학교와의 경기에 출전했다는 얘기조차 부모에게 하지 않았다. 보통 아이라면 자랑하고도 남았을 텐데 주남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성격이 모난 게 아니다. 주광군이 다소 수줍음을 타지만 주남군의 웃음은 너무나 해맑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잘 웃는다는 뜻으로 “주남이 같다”는 말을 쓸까.

5평쯤 되는 큰 방과 아이들이 겨우 발 뻗고 잘 수 있는 쪽방, 그리고 바깥에서 문을 열면 바로 연결되는 부엌이 이들의 보금자리다. 그나마 지금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4만원짜리 집에서 살고 있지만, 4년 전만 해도 지금 사는 곳에서 30여m 위쪽의 단칸방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주고 살았다. 허리 펴고 일어설 수도 없을 만큼 낮은 천장, 밖에서 문을 열면 바로 방이 나오고 여름엔 덥고 외풍 심한 겨울엔 추위가 살을 에는 곳, 화장실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써야 하고 옆집과 너무 붙어 있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곳….

그런 삶의 터전도 지금은 전쟁이 지나간 폐허처럼 변했다. 지난해부터 재개발을 위한 철거작업이 진행되면서 하나둘 떠나고 2500여 가구 중 250여 가구만 남았다. 지금 사는 집에서도 내년쯤이면 떠나야 할 판이다. 공유지인 위쪽과 달리 지금 사는 곳은 사유지이고, 구역이 다르지만 내년쯤이면 이곳도 철거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이들도 새 터전을 찾아 떠나야 한다.

김씨는 20여년간 노동일을 하면서 콘크리트 까는 기술(속칭 방통)을 배워 요즘 일당 7만원을 받는다. 차비와 식대 등을 떼고 나면 집에 6만원은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쉬지 않고 일하면 한 달 평균 140만원 정도는 번다.

그러나 생활은 빠듯하기만 하다. 지난 겨울부터는 주남군과 주광군의 학원비도 못 내고 있다. 요즘 김씨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월드컵 때문에 건설현장이 중단된 곳이 많은 데다 장마가 시작되면 두어 달은 일거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마기간에는 빚으로 생활하고, 8월 이후 일거리가 많아지면 다시 벌어서 갚아 나가기를 해마다 반복하고 있다.

“터덕터덕 헤매며 살아왔어요.” 김씨의 넋두리다.

경기가 시작된 지 30분이나 지났을까, 이웃집 사람들의 왁자한 고함이 터져나왔다. 성난 사자처럼 재빠르게 프랑스 수비진영을 헤집던 세네갈의 골잡이 부바 디오프가 2002년 월드컵 첫 골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변의 전조였을까. 이후 최강 프랑스 선수들이 종횡무진 세네갈 진영을 파고들어도 좀처럼 만회골은 터지지 않았다.

축구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이변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김씨의 삶에는 단 한 번도 이변이 없었다. 오히려 이 달동네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아들들에게도 이 가난이 대물림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난향초교에는 아파트나 연립주택에 사는 비교적 형편이 좋은 집 아이들과 달동네로 불리는 쪽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다닌다. 마치 이곳을 배경으로 한 듯한, 소설가 이상락씨의 소설 ‘누가 호루라기를 불어줄까’ 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배구시합을 하다가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면 서로 코트를 바꾸는 것처럼,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서로 처지를 바꾸는 때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 호루라기는 언제쯤 누가 불어주는 것일까?’

“내게도 이변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호루라기를 불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김씨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힘들어도 조금씩이나마 돈을 모으고 더 나은 미래를 내다보며 살아간다.

프랑스의 공격이 매섭다. 경기주도율 76%대 24%. 그러나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이 빠진 프랑스는 조직력이 많이 떨어졌고, 탄력 있는 세네갈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슈팅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기를 반복한다. 주남이네 식구들 얼굴에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결국 프랑스는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복병 세네갈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예기치 못한 사건 중 하나’(AP통신)가 일어났다.

“세네갈, 정말 대단하네요.”

한동안 경기만 지켜보던 김씨가 내심 흡족해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약자인 세네갈 편을 응원했던 게 분명하다. 월드컵 때문에 며칠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됐지만 경기를 보는 지금 그는 축구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고향 나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그는 고무공이나 튜브에 바람 넣은 공을 차고 놀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장거리달리기 전북도 대표선수로 전국체전에 나가 7등 한 적도 있을 만큼 운동신경도 발달했다. 그러나 핍진한 삶이 그를 축구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두 아들이 축구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아버지가 큰아들을 바라보며 묻는다.

“주광아, 한국이 16강에 들 것 같냐?”

주광군은 “이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히딩크 감독이 온 뒤 훈련을 잘 받아 충분히 16강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김씨가 흐뭇한 듯 웃음을 머금었다.

김씨는 아들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말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잘 안다.

한국 축구대표 선수가 된다는 것, 그리고 월드컵에 나가 뛰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야 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축구부에서 선수로 뛰는 아이들은 전국에 1만1700여명. 그중 최고 실력을 갖춰야 대표선수가 된다. 김씨의 두 아들처럼 아무런 체계적 준비도 없이 길거리나 학교에서 재미로 축구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훌륭한 선수로 자라날 가능성은 사실 희박하다. 김씨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의 꿈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

“희망은 아이들이지요. 큰아이는 축구에 소질이 있어요. 작은아이는 만들기를 잘하고. 아비가 저희들 소질을 잘 밀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아들에게 축구공도, 축구화도 사주지 못한 김씨. 갑자기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건넸다.

“한국과 포르투갈이 경기하는 거 보러 갈래?”

그러나 아들은 고개만 흔들 뿐 아무 말이 없다. 다시 아버지가 묻는다.

“친구들하고 구경하러 가. 아버지가 표 사줄게.”

그래도 아들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한마디 한다.

“싫어요. 그냥 텔레비전으로 보면 돼요.”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하는 아들의 속 깊은 마음을 김씨가 모를 리 없다.

나중에 지단처럼 돈 많이 벌고 실력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주광군. 그러나 그에게 그 길은 너무 멀다. 훌륭한 감독을 만나지도 못했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가진 거라곤 오직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막연한 희망 하나뿐. 그도 세네갈팀처럼 자신의 삶에서 이변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 난곡의 밤이 깊어간다.



주간동아 2002.06.13 338호 (p18~20)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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