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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일본은 지금①

‘삼엄한 통제’ 축제 열기에 찬물

외국인 서포터들 소리만 쳐도 ‘경찰 출동’… 잔치를 삼엄하게 통제하는 이율배반

  • < 도쿄= 이성욱/ 문화평론가 > dasaner@hanmail.net

‘삼엄한 통제’ 축제 열기에 찬물

월드컵은 지구 규모의 환각체험이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세계 곳곳의 모든 정치인들은 손익 챙기기에 바쁘다. 사람들은 4년 주기로 한 번씩 돌아오는 그 환각체험을 생략하기 힘들다. 그런 만큼 환각에 빠진 그 시간은 곧 정치적 입장에 따라 누구에게는 이익을, 누구에게는 손실을 낳는다. 그런 월드컵이 일본에서도 한국보다 하루 늦게 시작되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모든 환각은 종종 축제의 성격을 지닌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인 바흐친은 축제를 ‘일상의 정지’라고 설명했다. 일상이 지리멸렬한 반복의 체험이라면, 축제는 그 반복의 궤도를 빠져나와 쾌락의 벡터를 쾌속으로 긋는 특별한 체험이다.

그러므로 축제는 언제나 비일상, 비이성, 비정상적인 성격을 갖는다. 인간이 축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수천년 동안 지속해 오는 것도, 또 카니발 기간중 적지 않은 사람이 죽어 넘어가지만 그것을 금지하지 않는 것도 축제, 환각, 쾌락이라는 게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생존조건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주도면밀한 논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월드컵은 분명 현대인의 생존조건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를 이룬다.

일본에서는 이 축제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다. 일본인들이 축구보다는 야구, 스모 등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애써 세계 최대의 쇼이자 거대한 축제를 유치해 놓은 초청자의 처지를 생각할 때 금방 납득하기 힘든 점이었다. 거리에 취재를 나간 기자가 ‘오지상’, 즉 아저씨들에게 지단을 아느냐고 물어도 그들은 지단이 축구선수 이름인지, 한국의 유명한 먹을거리인 ‘지지미’(지짐의 일본식 발음)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들은 ‘회사인간’의 정수를 길러내는 일본 사회의 장년층답게, 일상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이 다가와도 신문 스포츠면 톱기사가 야구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만약 일본의 감독이었다면 일찌감치 짐을 쌌을지도 모른다.

사실 히딩크의 생각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확실히 월드컵은 이제 올림픽보다 한 수 위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맹국 숫자만 보아도 전자는 203개국인 데 비해 후자는 199개국이다. 잔치 기간도 월드컵이 보름 정도 더 길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금메달 숫자다. 올림픽은 수천명이 참가해 300개의 금메달을 나누어 갖는 반면, 월드컵은 736명이 참가해 단 한 개의 금메달을 다투는 대회다. 그러니 그 치열함이나 백병전의 수준에서 올림픽이 이제 월드컵 앞에 감히 나서기 힘들다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육제 혹은 잔치라는 말이 갖는 말 자체의 본디 의미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사육제나 잔치는 관용과 이해의 태도를 뒷배로 삼는다. 평소의 합리적이고 날카로운 시시비비의 감각은 잠시 서랍에 넣어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잔치에는 대개 금기라는 말이 없다. 모든 것이 허락되고 모여들며 섞인다. 성한 사람도 모이고, 곰보도 모이고 꼽추도 섞인다.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비정상’의 존재도 잔치에서는 넉넉한 대접의 일단을 받는 것이다.

한데 지구 최대의 잔치라는 월드컵에서는 그런 면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미가 보인다. 요컨대 예의 잔치의 성격이 서서히 거세돼 가고 있다는 말이다. 관심의 집중도나 게임의 무게로 보아, 일본의 실질적인 개막전이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전이 열린 이바라키경기장도 그런 냄새가 풍긴다. 장소도 한 곳에 두어 잔치 분위기를 애써 평온하게 만들려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경기장 안팎의 완벽한 통제와 관리는 오싹하기조차 했다. 경기장에 배치된 경찰병력은 관객들을 모두 예비범죄자로 보면서 일종의 예비검속을 위해 나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분위기는 축제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삼엄했다. 아마 한국도 다르지 않을 터다. ‘삼엄한 축제!’ ‘관리된 축제!’이 얼마나 웃기는 단어인가.

그런데 형용 모순의 모범을 보이는 이 단어가 이즈음 월드컵의 지상과제가 되어 있다. 잉글랜드와 스웨덴전이 있던 6월2일 저녁 평소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록뽄기(六本木) 거리에 서포터들이 모여 소리를 치고 ‘약간의 흥분’을 내보이자 순식간에 경찰이 인간방패를 만들었다. 그 방패의 금 안에서만 노래와 흥분이 허용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슬그머니 훌리건을 이해하고픈 생각조차 들었다. 따지고 보면 훌리건은 통제와 관리의 그물이 촘촘한 사회일수록 발생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평소의 압력이 만들어낸 몸속의 울혈이 축구경기 같은 시간에 제 스스로 터져나갈 데를 찾는 게 훌리건 현상이라는 말이다. 일본의 월드컵은 시작 전에는 관심이 비등점 이하라서, 시작 이후는 과도한 안전지향으로 인해 이래저래 잔치 맛이 별로 나지 않고 있다.







주간동아 2002.06.13 338호 (p12~14)

< 도쿄= 이성욱/ 문화평론가 > dasa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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