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8

2002.04.04

日 바둑계 뒤흔든 ‘무서운 소녀’

  • < 정용진/ 바둑평론가 >

    입력2004-10-26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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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바둑계 뒤흔든 ‘무서운 소녀’
    “소감요? 기분 째지죠, 뭐!”

    예쁘장한 얼굴과는 딴판으로 영락없는 선머슴아 말투다. 97년 14세에 입단해 올해 프로 생활 5년째를 맞는 19세의 소녀기사 박지은. 이 애송이 여류기사가 조치훈, 왕리청(王立誠) 9단 등 외국계 용병기사들이 판치는 일본 바둑계에서 유일하게 명인(名人·일본 랭킹2위 타이틀) 자리를 고수하며 ‘열도바둑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을 제1회 도요타 덴소배 32강 토너먼트 1회전에서 꺾어버리자 기가 찬 일본 언론은 ‘A급 전범기사’로 분류하였다.

    나이 어린 소녀에게 A급 전범이라니….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이런 극단적인 헤드라인을 뽑았을까. 하긴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승 상금 3000만엔을 걸고 3월18일 도쿄에서 막을 연 도요타 덴소배 세계왕좌전은 지난 10여년간 국제무대에서 만신창이가 된 일본바둑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며 창설한 두 번째 세계대회인데, 남녀오픈 세계대회라곤 처음 출전한 소녀기사가 데뷔무대에서 일본의 희망을 좌초시키며 일을 냈으니….

    1회전 총16판 가운데 세 번째로 일찍 패배가 결정된 요다 9단은 돌을 쓸어담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대국장을 떠났다. 경적필패라고 말들을 하지만 한국무대에서 박 3단은 일찍이 ‘세계 제일의 공격수’ 유창혁 9단과 ‘전신’(戰神)이란 소리를 듣는 조훈현 9단을 격침시킨 바 있는 반상 아마조네스의 여전사다. 여자답지 않게 어찌나 공격력이 강한지 ‘여자 유창혁’이란 별명을 달고 다니는 그는 싸움닭으로 불리는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도 ‘맞장’ 뜨기를 피하는 존재. 이런 핵주먹 소녀기사를 일본 명인이 ‘꽃조’로 여겼다면 거꾸로 ‘기쁨조’가 된 것은 당연한 일. 박 3단의 당장 목표는 신생 세계 여류대회인 호작배 우승. 지난달 중국여류 최강 장쉔(張璇) 8단을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한 바 있어 3월28일부터 중국에서 한국의 윤영선 2단과 세계 여류챔피언 자리를 놓고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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