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8

2002.04.04

잘 쓰면 보약, 맹신하면 독약

‘건강 열풍’ 편승 온갖 정보 범람 … 방법론에 집착 말고 전문가 조언 귀기울여야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4-10-25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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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쓰면 보약, 맹신하면 독약
    올 초 불어닥친 ‘건강 열풍’이 새봄을 맞아서도 기세등등하다. 유기농산물을 동낸 채식 신드롬은 단적인 예다. 덩달아 금연ㆍ금주ㆍ다이어트 열기도 과거 어느 때보다 뜨겁다. 운동량이 절대 부족한 직장인들이 무턱대고 운동에 뛰어들다 되레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언제부터인가 건강을 화두로 한 일시적 신드롬에 국민 건강과 식생활이 갈짓자 걸음을 걷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돼버렸다. 문제는 풍부하고 균형 잡힌 영양섭취가 필수적인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수험생), 질병 환자들마저 개인 특성이 무시된 채 신드롬의 영향권 아래 놓이는 ‘일반화의 오류’다.

    어떻게 해야 이런 ‘오류’를 떨치고 제대로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질병 치료든, 운동이든, 식생활이든 방법론에만 집착하는 ‘부화뇌동’은 금물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건강 다지기’의 필요조건은 그래서 ‘나만의’ 건강정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건강정보를 접하는 루트는 대중매체, 건강관련 서적, 인터넷 등 크게 세 가지. 이중 시ㆍ공간적으로 가장 손쉽게 접하고 활용빈도가 높은 수단은 단연 웹사이트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건강ㆍ의료 정보 사이트는 대략 7000여개(지난해 11월 대한의학회 비공식 집계). ‘정보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이들 정보는 의약분업 이후 유용성이 더욱 커졌다.

    건강정보 사이트는 평상시의 건강관리를 위해 가장 적합하다. 가령 자신의 증상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어느 과에서 진료받아야 할지 모를 때를 말한다. 응급상황 대처 요령도 쉽게 숙지할 수 있다. 기본적인 건강정보를 비교적 체계 있게 제공하는 사이트로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증진개발센터가 지난 99년 7월 오픈한 ‘건강길라잡이’(http://healthguide.kihasa.re.kr)가 대표적이다. 흡연, 음주, 영양, 운동, 스트레스, 체중조절, 암ㆍ당뇨ㆍ간질환ㆍ구강관리 등과 관련한 건강정보 및 자가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사이트엔 하루 평균 1만여명이 접속한다. 스스로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자기 건강 능력’ 향상을 위한 건강지식 보급이 주목적이다. 아직 홍보가 덜 됐지만, 지난 1월엔 ‘금연길라잡이’(http://nosmokeguide.or.kr)도 개설됐다.



    50여 항목의 문진을 통해 건강나이(health age)와 실제 나이의 격차를 알려주는 ‘내나이닷컴’(www.nenai.com)이나, 온라인 상담을 해주는 상당수 민간 건강정보 사이트들을 통해 질병 지식을 얻고, 사이트 상담의로부터 해당 진료과를 안내받으며 가족 건강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볼 수도 있다. 특히 관절염, 고혈압 등 만성질환 관련 상담이 효과적이다. 최근엔 환자 서비스 차원에서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병ㆍ의원도 많고, 특정 질환을 다루는 사이트도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희귀의약품센터(www.kodc.or.kr)에 접속하면 희귀의약품 정보는 물론 희귀질환자 동호회원들과 정보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검색엔진에서 찾고 싶은 단어만 입력하면 항목별로 수십·수백 개씩 떠오르는 건강정보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보건사회연구원 송태민 실장은 “사실 인터넷상의 건강정보 중엔 기존 건강서적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등 낭비적 요소도 많다. 복지부가 올해중 사이트 운영 주체들을 모아 이 부분에 관한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 귀띔한다.

    건강정보 사이트의 폭증이 정보 해갈에 도움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맞춤 건강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한계. 때문에 건강정보 사이트 이용은 진료 전 궁금증을 해소하고 진료 후 미흡한 정보를 보충하는 데 알맞다.

    ‘건강 광풍(狂風)’이라 할 만큼 인터넷상의 건강 열기는 뜨겁다.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건강정보까지 범람한다는 데 있다. 실제 상업주의에 물든 비전문가들의 불확실한 건강정보(?)도 난무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편승해 상당수 사이트는 엉터리 식이요법이나 의약품으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며 환자들을 유혹한다. 잘 활용하면 충실한 건강 가이드, 맹신하면 시간과 돈을 버리고 몸까지 망치게 하는 것이 건강정보의 ‘두 얼굴’이다.

    다행히 그릇된 정보를 걸러내려는 의료계 내부의 시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www.kiranet. or.kr)는 지난해 3월 국내 건강ㆍ의료정보 사이트에 대해 평가작업을 벌여 10개의 추천 사이트를 발표했다. 무분별한 건강관련 사이트의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올해는 추천 사이트를 선정하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 소속 국민건강지식향상위원회가 현재 사이비 건강정보를 가려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

    대표 김일순 교수(65ㆍ연세대 예방의학과)를 비롯한 전ㆍ현직 의ㆍ약대 교수 30여명이 모여 2000년 4월 문을 연 ‘헬스로드’(www.healthroad.net)도 비슷한 검증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사이트는 웹상의 수많은 건강정보들을 평가한 다음 검증된 정보를 담은 웹페이지를 링크해 네티즌에게 제공한다. 이 작업엔 내용의 충실성, 용이성, 공익성 등 30여 가지 ‘인터넷 건강정보 평가기준’이 적용된다.

    다음은 네티즌을 위해 헬스로드측이 제시하는 몇 가지 양질 건강정보 판별기준.

    첫째, 건강정보 제작자가 정확히 제시돼 있고, 그 방면의 전문가인가? 종합병원·대학병원 사이트의 건강정보나 전문의가 직접 쓴 내용이라면 일단 믿어도 좋다. 둘째, 정보제공 출처가 명확하며 최신 정보인가? 셋째, 사이트가 개방돼 있는가? 네티즌의 질문을 허용(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 공개)하는지 확인한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사이트라면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신뢰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아무리 많은 정보량을 지녔더라도 인터넷이 ‘홈닥터’일 순 없다. 프렌닥터내과 남재현 원장(내분비내과 전문의)은 “임상에서 보면, 예전과 달리 환자나 보호자들의 의학상식과 질병 이해 수준이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상 깊이 있게 아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실제 헬스로드가 지난해 12월부터 오는 4월까지 112일간 실시중인 ‘건강정보 112’(유해 인터넷 건강정보 신고행사)에 접수된 신고건수는 단 한 건. 일반인들이 건강정보의 유해성 여부를 판별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증거다. 따라서 자신의 체질과 특성에 ‘딱 맞는’ 건강법을 찾으려면 역시 의료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에스더클리닉 여에스더 원장(38ㆍ여)은 “질병치료 중심에서 건강을 적극 예방관리하는 선진국형 건강관리로 중심이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도 “서구처럼 주치의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맞춤식 건강관리’를 위한 최선의 대안이지만, 환자 영양문제를 홀대하는 의학교육 시스템과 ‘3분 진료’의 국내 현실에선 한낱 꿈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또 “아직도 잘못 알려진 건강상식이 너무 많다”며 “한 예로 콩은 현재까지 알려진 최고의 완전식품이지만, 이 또한 지나치게 섭취하면 문제가 된다”고 덧붙인다. 여원장은 동료 전문의들과 함께 의료인용 영양학 서적을 집필중이다. 어쨌든 생활습관, 영양섭취, 운동습관 등에 대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받으려면 담당의사와 정기적인 대화를 갖는 게 현 시점에선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건강에 왕도(王道)는 없다. 그러나 지름길은 하나 있다. 전공의협의회 이동훈 회장은 “흡연경력 자체가 병력에 포함된다. 금연은 그 병력을 단축하는 건강생활의 시작”이라고 잘라 말한다. 담배만큼은 ‘공공의 적’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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