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8

2002.04.04

한-일‘FTA’급히 먹다 체할라

‘빨리빨리’ 일본측 요구에 말려들어서는 곤란 … 산업경쟁력 고려 철저한 준비 필요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25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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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FTA’급히 먹다 체할라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일본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급류를 타고 있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 FTA 체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 및 학계와 경제계 인사 등이 참여하는‘산관학(産官學) 공동연구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양국간 FTA 논의에 정부가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양국 정상이 만나 이같이 합의한 것은 얼마 전 양국간 FTA 체결을 위한 재계 협의체인 한일 비즈니스 포럼의 한국측 대표인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강한 톤으로 한일 FTA에 대한 전향적 사고를 주문한 직후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협정 체결 땐 자동차산업 적자폭 확대

    한-일‘FTA’급히 먹다 체할라
    그러나 바깥 분위기가 빠르게 돌아갈수록 이해득실은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법. 특히 한-일 FTA는 농업 분야의 반대에 부딪혀 협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한-칠레 FTA와 달리, 농업분야는 오히려 찬성하고 제조업이나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신중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농민이나 농민단체들이 칠레와의 FTA 협상처럼 강하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분석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박사는 “대(對)일본 수출의 관세가 철폐되면 10대 신선작물의 대일 수출 증가로 얻을 수 있는 이익만도 6000만 달러 수준”이라며 농업 분야에서 한-일 FTA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상호 보완적인 한-칠레와 달리 한국과 일본은 철강, 자동차, 조선, 가전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중첩된 영역을 갖고 있어 양국간 무역장벽이 무너질 경우 이들 산업에는 강한 구조조정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한-칠레 FTA가 세계시장에 경쟁력 있는 우리 공산품을 칠레에 수출하고 칠레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는 데 비해 일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

    물론 재계를 비롯한 제조업 분야에서 한-일 FTA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나오는 상황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환영 일색이다. 그러나 협상이 구체화할수록 우려의 목소리는 조금씩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심한 경우 기계, 자동차 등의 기술력에서 앞선 일본은 고부가치 제품을 독차지하고 우리는 단순 조립가공 제품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극단적인 우려도 나온다.

    일본에 1억3000만 달러를 수출하고 5억9000만 달러를 수입해 4억6000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경우 FTA가 체결되면 적자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본은 자국 자동차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기반으로 지금도 수입차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 우리만 현행 8%의 관세를 철폐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일본 수입차 시장은 주로 유럽산 고급 브랜드나 특정 용도 차량으로 구성되어 있어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저가 소형차나 경차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FTA가 체결될 경우 소나타, 크레도스, 그랜저XG 등의 국내 수요를 어코드, 캠리, 렉서스 등이 잠식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한국과 일본 양국간 FTA가 체결될 경우 예상되는 무역수지 적자 증가분의 절반 정도는 일본이 우리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보유한 기계산업 부문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기계산업 분야에서 일본측의 기술 이전이나 투자 확대 없이는 FTA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가전 분야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입선 다변화제도 폐지 초기까지만 해도 대일 감정 등을 감안해 머뭇거리던 일본 기업들이 한국시장에 대한 대대적 공략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업계의 긴장감은 적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한일간 FTA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일본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 역시 한국 방문을 앞두고 한국 특파원단과 회견을 통해 양국간 경제협력의 필요성, 특히 FTA 문제에 대해 강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양국간 민간 포럼에 참여해 온 전경련 장국현 상무는 “일본은 기한을 정해 이른 시일 내 연구를 끝내자는 입장이고, 우리는 오히려 기한을 정하지 말자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정인교 FTA팀장 역시 “8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13개국과 추진중인 칠레 역시 우리와 협상 과정에서 ‘기한을 정하면 실패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측의 준비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KIEP 김양희 박사는 “같은 기간 일본 재계는 아홉 차례 모임을 갖고 준비했지만 우리는 세 차례의 준비회의밖에 갖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우리가 FTA 본격 협상에 나서기에 앞서 점검해야 할 문제 중에는 일본과 비교해 우리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나 일본의 각종 비관세 장벽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 것인지 등이 있다. 일본은 아직까지 일부 제품에 대한 수입 제한이나 복잡한 인증절차 등 우리보다 훨씬 높은 비관세 장벽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정재화 FTA 연구팀장은 “한-일 FTA는 단계적이고 장기적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FTA가 불가피하다면 한일간 FTA보다는 중국을 포함하는 한-중-일 FTA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불모지 격인 중국시장을 우리가 선점하는 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중-일 3국의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으로 수출하는 액수는 지금보다 연간 227억 달러나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일본을 통해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러 변수를 염두에 두고 이제 막 정부간 논의의 첫 단추를 끼운 한-일 FTA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에서는 발 빠르게 서두르되 바깥에서는 조금 느긋하게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 급하게 먹으려다 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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