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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가? 여대생 피살 사건 ‘미궁’

치밀하고 잔인한 수법 면식범 가능성 … ‘남자관계’ 루머 확산 경찰·유가족 난감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왜 누가? 여대생 피살 사건 ‘미궁’

왜 누가? 여대생 피살 사건 ‘미궁’
지난 3월16일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기슭에서 서울 모 여대 법대 4학년 하모씨(22·휴학)가 얼굴과 머리에 공기총 여섯 발을 맞고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 수법의 치밀함과 잔인성으로 미루어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건 발생 10일이 지나도록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아 수사는 답보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하씨 주변 인물에 대한 경찰의 수사 진행과정에서 흘러나온 피해자의 이성관계가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부 언론이 경찰 조사를 근거로 공개한 보도내용은 ‘피해자의 남자관계가 복잡해 치정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 ‘현직 법조인과 고시생 등 세 남자가 용의선상에 오르고 있다’는 것.

이들이 지목한 ‘남자관계’와 ‘세 남자’란 현직 판사이자 대학시절 하씨의 과외선생이던 외가 친척 A씨와 A씨의 대학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 B씨, 그리고 하씨와 같은 대학 연합동아리 출신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애인 C씨 등이다.

“지극히 평범한 여대생일 뿐”이라는 경찰의 설명과 “딸의 죽음을 희화화하지 말아달라”는 가족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명문 S대 법대 졸업생이라는 점과 하씨 또한 고시를 준비하는 미모의 법대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둘러싼 근거 없는 루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경찰이 주변 인물에 주목한 것은 범행 수법과 사건을 둘러싼 정황이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됐기 때문. 발견 당시 낙엽 사이로 비어져 나온 쌀포대 안에 들어 있던 하씨의 사체는 얼굴 이외에는 외상이 전혀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부검 결과 범인은 구경 5mm 공기총으로 하씨의 미간과 왼쪽 눈 부위, 왼쪽 귀에 네 발을 차례로 쏜 후, 뒤로 넘어진 하씨를 거꾸로 눕혀 뒤통수에 다시 두발을 쏜 것으로 밝혀졌다. 마치 총살형을 집행하는 사람처럼 범인은 하씨의 두 눈을 청테이프로 가린 후 그 위에 공기총을 난사했으며, 네 발의 공기총 탄환이 하씨의 머리를 관통했는데도 죽은 사람을 뒤집어 놓고 확인사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왜 누가? 여대생 피살 사건 ‘미궁’
30년 수사관 경력을 가진 보안경비업체 에스원의 최중락 고문은 “얼굴에 총을 대고 난사한 것으로 미뤄 범인은 원한에 사무쳐 심리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확인사살은 피해자가 살아날 경우 자신을 알아볼 것을 우려한 데서 비롯됐으며 이는 오래 전부터 범행을 준비해 왔다는 증거다. 하지만 범행의 대담함과 치밀함으로 볼 때 전문가에 의한 청부살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경찰이 조심스럽게 청부살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경찰은 그 단서로 하씨가 제3의 장소에서 살해된 뒤 발견 장소인 검단산 기슭으로 옮겨진 점을 들고 있다. 공기총 탄환이 머리를 관통하려면 얼굴에 닿을 만큼 근접사격을 했다는 얘기인데 사체가 발견된 장소 인근과 사체가 들어 있던 쌀포대에는 피가 튄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1km 밖에서도 들린다는 공기총 소리를 들은 인근 주민이 전혀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도 광주경찰서 형사계의 한 관계자는 “대로변에서 150m나 떨어진 산기슭까지 혼자 사체를 들고 옮기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원한이 깊다 해도 일반인이 확인사살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씨가 다른 곳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국과수는 하씨의 사망 시점이 실종 시점인 3월6일보다 일주일 이상 지난 3월14일이나 15일로 추정한다.

하씨는 3월6일 오전 5시30분쯤 평소와 다름없이 인근 체육관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집을 나선 후 연락이 두절됐다. 하씨의 아버지(57)는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한 달 보름 전부터 새벽 운동 후 집에 와서 아침 먹고 인근 독서실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이날은 집에 들르지 않아 운동 후 곧바로 독서실로 간 줄 알았다. 그런데 오후 1시30분쯤 딸의 남자친구가 ‘약속을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고 전화해 체육관과 독서실에도 오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후 오후 3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결국 하씨는 새벽 운동을 나가면서 납치돼 일주일 이상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다 살해된 후 검단산에 버려졌다는 이야기다. 아파트 폐쇄회로에 잡힌 하씨의 마지막 모습은 검은색 상하의 운동복에 미키마우스 무늬가 그려진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사체 발견 당시와 똑같은 차림새였다.

그런데 이 폐쇄회로 테이프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하씨의 뒤를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따라 나가고, 이후 그 앞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지나간 것. 경찰은 문제의 두 남자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폐쇄회로의 화질이 워낙 나빠 신원 확인에는 실패했다. 이 시각쯤 아파트 앞에서 검은색 바지를 입은 여자와 남자가 말다툼하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났지만 이들이 하씨와 범인이라는 단서는 아직 찾지 못한 상태.

경찰은 하씨가 평소 새벽 운동을 한다는 것을 범인이 알고 있었던 점, 하씨의 몸이나 옷가지 등에서 폭행당하거나 크게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납치 과정에 주변 인물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고 하씨의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원한을 가질 만한 인물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수록 하씨의 남자관계에 대한 의혹만 불거지자 경찰과 유가족은 무척 난감해하고 있다. 하씨의 아버지는 “판사 A의 장모가 A와 딸의 관계에 대해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다. 최근까지 1년6개월 동안이나 딸을 따라다니며 감시해 지난해에는 A의 장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심지어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씨가 실종되자마자 경찰에 신고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

광주경찰서 황영풍 형사계장은 “변호사 B씨는 2000년 가을 A씨의 부탁으로 하씨와 맞선 본 사람으로 한 달 동안 네 차례 만난 것이 전부고, 이미 자진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두 사람 간의 관계에 특별한 정황이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A씨가 B씨를 소개한 것으로 봐 A씨와 하씨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고시생 C씨는 하씨가 대학 1학년 때 만나 4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이자 애인. 하씨의 아버지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는데 문제 될 게 무엇이 있느냐. 딸의 실종을 안 것도 그 친구 때문”이라며 세간의 소문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런 정황은 하씨의 대학생활이 적힌 다이어리에도 잘 나타난다. 이런 것까지 써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신변잡기를 소상히 기록해 놓은 다이어리에는 애인 C씨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만 가득할 뿐, 몇 군데 나오는 친척 A씨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원망’뿐이다. 예를 들면 두 집안 간에 벌어진 송사에 대해 “(A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뒤로 까무러칠 정도로 황당무계한 일이다”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의 한 관계자는 “A씨도 하씨와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할 뿐 장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종 당일(3월6일) 곧바로 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 가출신고를 하면서 단순 가출이 아닌 것 같다고 호소했는데 무시됐고, 이틀 후(8일)에도 폐쇄회로 테이프를 직접 가져가 형사계에 넘겨달라고 했는데도 수사가 바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다이어리도 우리가 가져다 줬습니다.” 하씨 유족은 경찰이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더라면 딸이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삼켰다.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여대생 살해사건을 경찰이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경찰은 3월23일 뒤늦게 하씨의 모습을 담은 전단을 만들어 집 주변과 사건 현장 주위에 뿌리고 목격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주간동아 328호 (p12~13)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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