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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최고 대 최고|① 앙리 VS 오언

佛·英 축구 신동 “내가 최고 골 사냥꾼”

신기의 드리블·타고난 골감각 닮은꼴… 98년 대회서 맹활약 후 나란히 시련 겪기도

  • < 김한석/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 hans@sportsseoul.com

佛·英 축구 신동 “내가 최고 골 사냥꾼”

  • 축구란 무엇인가. 녹색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는 축구의 마력은 어디서 오는가. ‘주간동아’는 이번 호부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팬들을 매료시킬 축구 천재들과 날로 새로워지는 전술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주요 포지션에서 ‘월드컵 지존’을 노리는 스타들을 비교·분석하는 ‘최고 vs 최고’와 역대 월드컵을 통해 현대 축구전술의 발전사를 짚어보는 ‘월드컵은 전술이다’는 축구 팬들의 안목을 높여주고 축구 보는 재미를 배가시켜 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꿈의 무대 월드컵에서 수여하는 골든슈(득점왕)나 골든볼(MV P)에 도전하는 데 가장 유리한 포지션은 무엇일까. 단연 ‘축구의 꽃’인 골을 겨냥하는 스트라이커들이다. 호쾌한 질주로 상대 수비라인을 단숨에 허물어뜨리는 파괴력의 ‘돌파형’ 스트라이커들과, 지역을 따지지 않고 먹이를 찾아내며 고감도의 골감각을 과시하는 ‘감각형’ 스트라이커들. 그중에서도 관중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돌파형 스트라이커의 대표주자로는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언(22·리버풀)과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24·아스날)를 첫손 꼽을 수 있다. 두 선수는 프레미어 리그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 클럽에서 간판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프레미어 리그서도 팀끼리 라이벌

1998년 7월1일 프랑스 생테티엔. 잉글랜드-아르헨티나 간의 월드컵 16강전에선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18세 소년 마이클 오언이 창조한 경이적인 골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전반 16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베컴의 패스를 받은 뒤 30여m를 쏜살같은 스피드를 앞세워 수비수 3명을 제치고 GK와 맞선 뒤 총알 같은 오른발 슛으로 네트를 갈랐다. 12년 전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에게 50여m의 단독 드리블에 이은 환상골을 헌납한 잉글랜드로선 신기(神技)에 가까운 오언의 황금골로 설욕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승부에선 패했지만. 당시 오언의 나이는 축구 황제 펠레가 58년 월드컵에서 데뷔할 때 나이보다 한 살이 많았다. 98년 2월 칠레전에서 18세 59일로 잉글랜드 축구 사상 최연소 A매치 출전기록을 세운 그는 이 골 하나로 ‘원더 보이’(Wonder Boy)란 애칭을 얻었다.

여기에 촌철살인의 슈팅, 수비수 2∼3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개인기와 틈새를 놓치지 않는 천부적인 골감각을 지녀 보비 찰턴∼케빈 키건∼게리 리네커로 이어져온 축구 종가의 슈퍼스타 계보를 이어나갈 주역으로 우뚝 섰다.

이에 맞서는 티에리 앙리. 그는 97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0세 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 한국전에서 두 번씩이나 네트를 갈라 4대 2 승리를 이끈 주역이며, 98월드컵에서는 빠른 스피드로 공격측면을 누비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2골, 남아프리카공화국전에서 1골을 뽑아 팀 최다득점자로 조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유로2000 D조 덴마크와의 서전에서 가장 빛났다. 후반 19분, 50여m를 질주한 뒤 당대 세계 최고 골키퍼의 하나로 손꼽히는 슈마이켈과의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게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으로 골네트를 가르며 우승의 예광탄을 쏘아올렸던 것.



앙리는 흑인 특유의 유연성과 스피드에 왼발 오른발 가릴 것 없는 고감도의 슈팅감각 등 축구 스타로서 꼭 필요한 삼박자를 갖추고 있다. 그는 모로코 출신으로 월드컵 최다골 득점왕(58년 13골)을 차지한 퐁텐의 후계자로 각광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오언과 앙리는 세계 축구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98프랑스월드컵 이후 나란히 시련을 겪었다.

오언은 2000년 4월 장딴지 근육이 파열되는 중상에 이어 잇따른 부진으로 한때 ‘반짝 스타’라는 눈총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리그 16골(5위)의 기세를 앞세워 잉글랜드 최고전통의 FA(축구협회)컵과 리그컵 우승, 또 UEFA (유럽축구연맹)컵 제패라는 트레블(3관왕) 신화의 선봉이 됐다. 그 기여도를 인정받아 유럽 골든볼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앙리는 3골 1어시스트로 98월드컵 우승을 이끈 직후 모나코에서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했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반 시즌 만에 모나코의 옛 은사 웽거가 있는 아스날로 다시 보따리를 쌌다. 웽거의 조련으로 윙이 아닌 중앙공격수로 보직을 변경, 스피드를 위주로 한 돌파만 고집하던 단조로운 플레이 패턴에서 벗어나 기술과 침착성, 시야까지 겸비한 원숙한 톱 스트라이커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오언과 앙리의 공통점은 축구 영재교육이 빚어낸 ‘작품’이라는 사실. 오언의 아버지 테리는 60∼70년대 299경기에 출장해 70득점을 기록한 공격수 출신. 일곱 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오언은 11세 이하 유소년리그에서부터 94년 잉글랜드축구협회에서 추천한 축구영재학교에 입학해 15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등을 거치며 착실히 성장했다. 앙리 역시 90년 설립된 프랑스 축구 부흥의 요람 ‘클레르 퐁텐 국립축구기술학교’가 배출한 스타. 학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이 학교의 장학생을 거친 앙리는 94년 모나코클럽 톱팀에 입단하는 빠른 성장을 보여줬다. 최고의 스트라이커 뒤에는 양국 축구협회의 정책적 육성이 있었던 것.

두 축구 신동은 2000년 9월2일 파리 생드니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한 차례 맞붙은 바 있다. 당시 프랑스는 유로2000을 제패한 여세를 살려 선취골을 넣었다.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앙리는 선발 멤버. 유로2000에서 충격의 1라운드 탈락으로 감독까지 바뀐 잉글랜드는 절박했다. 후반 30분 오언이 교체 투입되어 종료 4분 전 극적인 동점골을 작렬해 끝 모르고 추락하던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웠다. 오언의 판정승이었던 셈이다.

지난 시즌 앙리는 리그 17골을 기록해 오언보다 골이나 골 랭킹에서 하나씩 앞섰다. 그러나 A매치에서는 오언이 월드컵 예선 6경기 동안 6골을 뽑아 팀 내 최다득점자에 오른 반면, 앙리는 11경기에서 3골에 그쳤으니 두 사람의 골 경쟁력 우열은 아직 단언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4년 전 프랑스월드컵을 비롯해 이제까지 이들이 보여준 활약이 완성형이 아니라 예고편이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주간동아 327호 (p76~77)

< 김한석/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 han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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