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2

2002.02.14

역시! 관록 묻어난 音의 향연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4-11-15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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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관록 묻어난 音의 향연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이 2년의 절차탁마(切磋琢磨) 끝에 여덟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신승훈이 10년 가까이 지켜온 옥좌를 조성모 등 젊은 후계자들에게 이양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날이 탄생하는 젊은 수용자들은 새로운 영웅을 만들고 어제의 트렌드를 무심하게 망각한다. 2000년에 발표한 7집은 조성모의 도도한 기세(400만장)에 밀려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이로써 그도 변방의 제후로 쓸쓸히 밀려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번 신작은 시시껄렁한 브라운관의 운동회나 무가치한 토크쇼의 말장난이 아니라 오로지 무대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펼친 진검승부다. 그의 음악을 사시(斜視)의 눈으로 바라본 비판자들마저 흡입할 만한 완숙의 미학을 펼친다. 한마디로 그는 이제 자기 음악의 마스터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이제 신승훈은 주류의 경기장에서 거의 유일한 ‘앨범 아티스트’인지도 모른다. 그가 90년대 메이저 레이블 라인음향의 프로듀싱에서 벗어나 자기 앨범의 주재자가 된 것은 다섯 번째 앨범부터다. 그로부터 단순한 발라드의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 셀프 프로듀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다시 말해 음악 이외의 요소가 음악의 본질을 학살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소요의 기간 동안 댄스그룹과 뮤직비디오의 현란한 마케팅이 라디오스타들을 하나둘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승훈은 이 서바이벌 게임에서 파격적 변신의 깜짝쇼를 하지 않고서도 어떻게 자신의 성채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지 입증했다.

    이번 앨범의 프로모션 타이틀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은 데뷔앨범 때부터 그가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신승훈표’ 드라마틱 러브 발라드다. 그러나 호흡은 과잉의 감정이입 없이 꿈결같은 호소력을 조직한다. 그러나 눈을 씻고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은 음악적 사건들이 이 트랙 이후로 줄줄이 펼쳐진다. ‘哀而不悲’와 ‘loving you’ ‘올거야’로 이어지는 전반부 트랙에서 이 앨범의 주재자는 신선한 리듬감과 적절한 브라스 세션, 그리고 다양한 보컬 연출을 통해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수작들을 연이어 선보인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홉 번째 트랙 ‘飛上’. 90년대 세대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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