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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녹슨 칼에 게이트는 코웃음

사법권 없어 조사 한계, 원장도 단명 일쑤, 조사해봤자 솜방망이 처벌

  • <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

금감원 녹슨 칼에 게이트는 코웃음

금감원 녹슨 칼에 게이트는 코웃음
장면 1. “2000년 3∼5월까지 2개 종목을 증권거래소로부터 통보받아 7월21일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10월31일 당원(當院)이 자체 인지한 다른 1개 종목은 11월2일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이 3건(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2000년 12월21일과 2001년 6월8일 검찰에 통보했다. 2001년 들어서면서 이용호씨가 종래의 시세조종 수법을 바꿔 미공개정보 이용 등 새로운 수법으로 불공정거래 행위를 시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증권거래소도 2001년 3∼5월, 3건의 불공정거래 혐의를 통보해 7월27일부터 기획조사 차원의 조사를 했다. 이 조사과정에서 8월28일 대검찰청의 수사가 진행돼 공조수사가 진행중이다.”(금융감독원 보고서)

장면 2.”금감원 조사에는 어려움이 많다. 피의자를 강제로 불러들일 수도 없고 현장조사권 (압수수색권)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돌아설 때도 잦다. 더구나 모든 주요 조사내용은 검찰에 통보, 검찰이 기소해 금감원 조사가 무위로 끝날 때도 있다. 이용호씨의 경우도 조사받는 과정에서 ‘빨리 (조사) 끝내고 검찰로 보내달라’고 오히려 큰소리까지 쳤다. 검찰에 가면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약식기소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다.”(금감원 조사관계자 설명)

이 두 가지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증권시장의 불공정거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왜 금융감독 당국이 효과적인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차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장면 1’을 보자. 이는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검사·감독·조사의 실무책임을 지고 있는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낸 보고내용이다. ‘이용호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던 지난해 9월14일자. 문건 제목은 ‘㈜G&G(대표 이용호) 관련 보고’로 되어 있다.

금감원이 이용호 게이트를 엄정하게 조사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금감원은 당시 1차는 시세조종 혐의로, 2차는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이용호씨 주변을 조사했다. 두 가지 모두 증권가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불공정거래 행위로, 개인은 물론 다수 기관까지 포함한 불특정 다수 건전한 투자자의 알토란 같은 재산을 교묘히 앗아간다는 측면에서 악질 범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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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악질 범죄를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금감원은 보고서에서 보여지듯 늑장대처로 일관하는 바람에 감독기구의 임무를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0년 3월에 통보받은 혐의를 4개월 지난 7월 하순에야 조사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이를 검찰에 넘긴 것은 이보다 5개월 후인 12월 말이었다. 지난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가조작에 나섰을 때도 늑장대응은 마찬가지. 연초 정보 입수→3∼5월 증권거래소 혐의 통보→7월 말 조사 실시→8월 말 대검 조사내용 이첩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늑장대처에 대해 금감원 실무관계자의 변명을 들어보자.

“상장기업 관련 불공정거래는 증권거래소에서, 코스닥 등록 기업과 등록 준비중인 벤처기업 관련 사항은 증권업협회에서 금감원으로 혐의내용을 통보해 온다. 그런데 혐의가 있다고 통보해 오는 조사의뢰건이 너무 많다. 어떻게 보면 시장의 불법 부당행위를 일차 심리하는 자율규제 기관에서 책임을 모두 감독원에 떠넘기겠다는 심보다. 업무량은 많고 조사권한과 조사인력은 제한되어 있으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한 건 조사하는 데 9개월씩 걸리는 것에 대한 해명치고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시세조종자나 내부정보 이용자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일을 저지르고 재빨리 튀어버리는 현실에서 이런 설명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장면 2’를 보자. 민첩하지 않다는 비난은 듣고 있지만 어쨌든 금감원이 통보된 혐의사실에 대해 열심히 조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또 거래정보가 방대한 양이라고는 하지만 전문인력들이 나서 거래명세에 확대경을 갖다 대면 상당부분 혐의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 사법권이 없다 보니 금감원 조사국 요원들이 냉가슴 앓을 때도 많다는 얘기다. 특히 검찰에 든든한 ‘백’이 있다고 생각하는 혐의자일수록 금감원 조사에서 큰소리치게 마련이다. 금감원이 불공정혐의를 걸어도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금감원과 한지붕 아래의 큰집 격인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는 금감원의 업무 방향을 정하고 그 결과를 심의하면서 통제하는 상급기관)가 날만 새면 새롭게 불거지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데는 바로 이 같은 내부 시스템의 문제와 대(對)검찰 관계 등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문제점은 또 있다. 바로 적지 않은 조사에서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로 그친다는 점이다. 금감원의 조사국이나 검사국에서 징계안을 마련하면 이는 내부의 심의제재위원회를 거쳐 금감위나 산하의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심의·의결 절차를 거친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이 위원회 의결결과는 그동안 늘 ‘S사, K씨 등에 대한 조치결과’라는 식으로 공개돼 왔다. 이 때문에 S사가 어디인지, K씨는 또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기자들과 이를 감추려는 금감원, 금감위와 신경전이 그칠 날이 없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장에는 항상 비정상적 방법으로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세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는 돈의 속성이다. 자본시장의 최첨단 지대인 증권시장에는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농후하다.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신원과 범죄내용을 완전 공개하고 금융회사 종사자 등에 대해 일정기간 시장참여(취업)를 막는 방식으로 일벌백계 조치를 취한다면 이러한 가능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그런데도 금감위나 금감원에서는 한 번도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실명을 직접 밝히면 ‘피의자 공표’로 법 위반이 되기 때문. 실명을 거론했다가 소송당한 금감원 직원도 있었다. 그렇다면 금감위나 금감원은 실명을 밝힐 수 있도록 증권거래법을 개정할 법도 한데 그런 노력의 흔적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공개되도록 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조사권한이 이원화된 점도 또 하나의 문제다. 내부자거래, 시세조종, 단기매매 차익 반환 등은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사항이고 공시위반 등 법 위반 사항은 상위기관인 금감위에 올라가는 사안이다. 거래소·코스닥`-`금감원`-`증선위`-`금감위로 조사관련 업무가 복잡하게 나뉘어 있는 데다 증권관련 법률은 모두 재정경제부 소관이다.

조사활동이 강력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을 금감위원장(금감원장 겸임)의 임기가 지켜지지 않는 데서 찾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금감위 발족 4년이 다 되어가지만 3년 임기를 채운 위원장은 아직 한 명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초대 이헌재 위원장이 1년9개월, 2대 이용근씨는 7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현 이근영 위원장도 2000년 8월부터 맡고 있지만 과연 임기를 채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임기제를 도입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도 임기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다. 개각설만 나오면 정치권, 청와대 할 것 없이 당연한 듯 금감위원장을 교체대상으로 흔들어대는 게 현실이다.

불공정거래의 최고 사령탑이 이처럼 쉽게 흔들리니 ‘외풍 없는 조사’ ‘성역 없는 조사’라는 구호는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큰 조사가 진행되면 정치권, 국회, 정부 타 부처 등 힘깨나 쓴다는 곳에서 청탁성 민원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데 이때 기관장이 소신 있게 바람막이 구실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경제검찰총장 격인 금감위원장이 이렇게 쉽게 교체대상에 오르다 보니 실무자들의 잦은 교체는 이상할 것도 없다. 근래 금감위 상임위원, 증선위 상임위원 등 1급 고위 공무원들도 수시로 바뀌었고 금감원의 일선 책임자들 역시 쉽게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진승현-이용호-윤태식 게이트 등을 거치면서 범정부 차원에서 불공정거래 조사 효율화 방안을 마련,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증선위에 강제조사권이 부여되고 불공정거래 조사 정책을 담당할 조사기획과도 신설됐다. 업무 분담과 처리에서도 ‘신속·철저’가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조사기관간 유기적인 협조시스템과 제재수단의 다양화를 모색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제 이 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소프트웨어의 개혁만 남은 셈이다. 조사업무 담당자의 역량 강화, 불공정거래를 반드시 뿌리뽑겠다는 독기에 가까운 의지가 소프트웨어 개혁의 요체다.



주간동아 322호 (p44~46)

<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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