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8

2002.01.17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문화의 세기 한국인들 교양 새롭게 인식 … 세상 이해하는 ‘팔방미인’은 시대적 요구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1-05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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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고령자 입학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간 주부 이모씨(57)에게 “왜 그리 힘든 공부를 다시 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껏 살아온 좁은 틀에서 벗어나 교양을 갖춘 인생이 되고 싶다.” 이씨가 대학 문을 두드린 것은 보수가 많은 일자리를 얻거나 전문연구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교양’을 쌓고 싶어서다.

    서울대 경제학부 1학년 이범주군(20·‘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의 저자인 단국대 이해명 교수의 아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수강한 과목을 보자. 철학개론, 생명의료윤리, 법학개론, 사진의 이해, 양궁, 종교학개론, 과학사개론. 그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없는 ‘개론’ 과목을 두루 수강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봐요.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전문적 지식과 전인적 지식인으로서 필요한 지식. 특히 후자는 적어도 대학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의무라고 봅니다.” 이군은 앞으로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 학부과정에서 접해본 다양한 학문세계(소위 교양적 지식)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 인격 형성 핵심이념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유럽에서 교양은 곧 문화(Culture)다. 문화로서 교양은 폭넓은 일반적 지식의 총체라는 의미다. 독일어로 교양은 빌퉁(Bildung)인데, 직역하면 ‘경작’이 된다. 이 말에는 문화를 형성, 육성 혹은 교육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인간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교양’으로 정의하는데 대학에서는 이것을 ‘리버럴 아트’(Liberal Art·교양교육)라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교양’ 혹은 ‘교양 있다’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예절이나 상식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안목을 가리키기도 한다. 대학생이라면 커리큘럼상의 교양과목을 연상할 것이고, 전문연구자에게는 ‘빵을 위한 학문’의 반대편에 있는 그 무엇이다. 작가 복거일씨는 그것을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전공분야를 벗어난 지식은 일상생활에서 쓸모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그 ‘쓸모없는 지식’이 재평가받고 있다.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교양인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써온 인제대 이광주 명예교수는 “우리는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살아왔다. 경제제일주의를 지나 정치의 계절을 겪었고 21세기 문턱에서 드디어 문화의 세기를 외치기 시작했다. 문화가 곧 교양 아닌가. 유럽에서는 이상적 인간이란 곧 교양인이었다. 심지어 키케로는 ‘우리들은 인간이라고 불리지만 우리 중에서 인간성에 알맞은 학예로서 교양을 몸에 지닌 사람만이 인간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양인은 단순한 학식자나 지식인이 아니라, 학식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삶의 인간이다”고 설명했다.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는 슈바니츠의 책 ‘교양’ 추천사에서 교양을 이렇게 정리했다. “교양은 문화사의 기본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미술·음악·문학의 대표작을 이해하는 것이다. 교양은 유연하게 훈련된 정신의 상태이며, 모든 것을 한 번 알았다가 다시 잊었을 때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교양은 문화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어색하게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교양은 직업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전문가의 양성과는 반대로 보편적인 인격형성을 핵심이념으로 한다. 따라서 교양은 지식과 능력의 총합이며 정신적인 상태다.”

    사실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교양적 지식의 중요성이나 교양인의 역할이 간과되었다. 복거일씨는 “전공분야에 관한 지식이나 기술은 충실히 갖추었으나 전공분야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모르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과학자나 기술자를 만나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고 개탄했다.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그러나 일본의 대표적 교양인으로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했으나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면서 사회적 문제 외에 우주·뇌 등 과학분야에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 시대가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를 요구한다면서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어떤 조직에서나 정책·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모두 제너럴리스트다. 엔지니어 출신이라도 최고경영자가 되면 경영전략을 짜고 회계를 알아야 한다. 정치나 사회의 움직임도 이해해야 한다. 반대로 사무직 출신이라도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톱 클래스에 오를 수 없다. 이처럼 하이 레벨의 제너럴리스트를 길러내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교양교육이다.”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지난해 ‘동아일보’가 꼽은 최고의 책 중 하나인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저자 정재승씨는 물리학도지만 영화, 음악, 철학, 사회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는 잡식성 지식인이다. 그는 “과거 물리학자들은 단순 명쾌한 몇 가지 요소로 세상을 설명하는 데 익숙했지만 ‘복잡성의 과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물리학자들도 이제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다뤄야 한다”면서 과학자들에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교양인이 갖춰야 할 내용도 달라진다. 그리스 교양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 일곱 가지 학예를 가리켰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국제적 교류에 필요한 외국어와 과학적 지식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된다. 현대교양의 특징은 그 내용의 대부분이 과학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이다.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오늘날 지식인의 문제는 교양목록에 과학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인문대 학생들이 과학 과목을 수강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하지만 20세기 3대 혁명을 이룬 마르크스, 프로이트, 다윈은 모두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이론을 발표했다. 기본적인 생물학적 개념을 모르면서 어떻게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 윤리학적 문제를 논할 수 있겠는가. 설령 과학의 수식은 모른다 해도 현재 우리 삶을 바꾸고 있는 원동력은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장은수·‘사이언스북스’ 편집장)

    뭐? ‘교양’이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교양인 역사와 예술을 몰라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통하는 박홍규 교수(영남대·법학)는 최근 오페라의 사회사적 성격을 강조한 책 ‘비바 오페라’를 출간하면서 “나는 음악은 정치적·사회적인 것이라고 이해한다. 아니 모든 예술이 정치적·사회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단지 음악이나 그림이라는 창으로 그 사회를 이해하는 것뿐이지, 예술 그 자체만 뚝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다치바나 같은 이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상속한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열 가지 재주 있는 사람이 밥 굶는다”고 했지만, 이 시대는 팔방미인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학이 산업인력을 배출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교양교육은 찬밥 신세가 되었고, 중·고교에서조차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는 ‘선택’이 강조되고 있다. 결국 우리의 학교교육은 사회를 모르는 물리학자, 물리학을 모르는 철학자를 양산하는 꼴이다. 이광주 교수는 “서양사의 전통에 교양인이 있다면 우리의 선비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교양공동체’였다”고 말하며 그 전통이 단절된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교양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눈’이라고 한다면, 빵을 위한 기술만 있고 교양이 부족한 현대인은 외눈박이 거인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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