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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 | 말리-몹티 마을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 < 글·사진 / 전화식 > (Magenta International Press), magenta@kornet.net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작은 시골역 같은 말리공항에 내려 다 낡은 택시, 그야말로 겉모습만 차의 형태를 갖춘 고물차를 타고 작은 마을 몹티로 향했다. 우리에게 ‘가난과 기아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말리, 그곳의 작은 마을 몹티(Mopti)는 그렇게 흙먼지 속에 묻혀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몹티가 본디 ‘말리의 젖줄’이라 할 만큼 풍요로운 곳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나이저강과 바니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까닭에 몹티는 예부터 서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왔다.

육지의 교통로가 따로 발달하지 않은 탓에 수상로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고, 무엇보다 물이 귀한 말리의 현실을 볼 때, 강에서 풍요롭게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몹티는 신의 축복을 받은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부강한 왕국으로 손꼽히던 말리의 옛 영화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몹티의 매력이라 할 수 있었다.

한때 말리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부강한 왕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기원 전후부터 열린 사하라사막 교역로에 있으면서 금·상아·노예 등의 집산지로 교역로를 장악한 왕국들이 그들 나름의 문화를 꽃피웠다. 그 가운데 주된 왕국으로는 8~13세기의 가나 왕국, 13~16세기의 말리 왕국, 14~16세기의 송가이 왕국 등을 꼽는다.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말리는 이러한 왕국들이 흥망을 거듭했지만, 지금은 과거 영화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당근을 캐는 것보다 황금을 캐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고 유럽인들 사이에서 회자된 말리지만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남아 있을 뿐, 이 땅에서 과연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몹티는 왜 이토록 피폐해졌을까? 그들이 농업에만 종사하며 자연에 의지해 사는 동안 자연환경과 세계가 급격히 변해버린 데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유럽 국가 사이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정책이 유행처럼 번져가면서 아프리카는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이 정해졌다. 마치 파이를 잘라 배를 채우듯 아프리카 대륙을 나누어 가지는 서구의 막강한 힘 앞에서 아프리카는 무기력하게 굴복해 한 나라가 두 나라로 나뉘고, 자신들의 언어 대신 유럽의 말과 글을 써야 했으며, 경제적 수탈 등 갖은 역경을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는 전통적 문화와 국가의 주체성을 가질 여력이 없어 오늘날까지도 그 후유증을 수습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단독무대가 되다시피 한 서북아프리카 내륙의 나라 말리 역시 그들 고유어 대신 프랑스어를 국어처럼 사용하며, 경제적 의존도 또한 높다. 이웃 나라인 세네갈이나 코트디부아르처럼 가난을 피할 여력이 없었기에 말리는 세계 최빈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말리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큰 호를 그리며 관류하는 나이저강을 옆에 끼고 있는 몹티는 이 강으로 인해 번영을 누렸다. 나이저강은 형편없는 육지 교역로를 대신해 훌륭한 수상로 구실을 하면서 지역간의 활발한 교역을 도와왔다. 특히 몹티는 나이저강의 지류인 바니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아 말리에서 제일가는 수상교역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몹티의 활력은 바로 이 나이저강(Niger R.)에서 나온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금도 몹티를 비롯해 강변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카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피로그’를 타고 이 강을 오르내리며 그들 나름의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몹티, 아니 말리의 젖줄인 이 강은 사막 한가운데서 흘러 들어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려지지 않아 ‘수수께끼의 강’으로 불렸다. 스코틀랜드의 탐험가 망고파크가 1769년경 잠비아강을 타고 들어와 이 강을 발견한 뒤 많은 탐험가들이 나이저강 주변을 탐험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때 이곳은 늪과 숲이 있고 일대에 사자가 많아 숲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습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러한 풍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몹티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에는 강 주변의 풍경에서 소박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잠시뿐, 아프리카의 독특함을 더해주는 바오밥나무 사이로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을 만날 때면 야생의 땅 아프리카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여름에는 섭씨 40도를 넘는 뜨거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물스물 들어오고 주위는 온통 흙바람을 일으키는 황토뿐이다.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더위와 상관없이 밝지만 이를 보는 이방인으로서는 그 더위와 삭막함이 단순히 ‘오지’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 민망할 만큼 낯설고 힘들다.

몹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흙의 마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몹티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모스크 역시 흙으로 지어졌다. 모스크는 이곳 사람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교도의 성소인데, 중동 지역의 이슬람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붕과 첨탑은 찾아보기 힘들다. 진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모스크는 독특한 조형미와 기하학적 외형을 지녀 마치 지상의 건축물이 아니라 우주영화에 나오는 4차원 세계의 건축물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진흙으로 저렇듯 독특한 모습의 사원을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 한달음에 달려가게 만든다.

지난날 영화 흙먼지 속으로…
기도시간이 되면 몹티에 사는 여러 부족이 모스크에 모여 하나의 형제가 되어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이마가 땅에 닿도록 기도를 드려 황토색 흙이 이마에 묻은 노인의 얼굴을 보노라면 이들에게 이슬람이 얼마나 큰 정신적 지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뜨거운 열기로 감싸인 몹티에 석양빛이 물들기 시작하면 삶의 열기도 잠시 식어간다. 이 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가는 소몰이 떼의 아련한 풍경 속으로 사라지는 몹티에는 지난날의 영화도 함께 먼지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주간동아 307호 (p94~95)

< 글·사진 / 전화식 > (Magenta International Press), magenta@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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