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7

2001.08.16

개나 소나 다 같은 부류로구나

  • < 유시춘 / 소설가 >

    입력2005-01-18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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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 소나 다 같은 부류로구나
    ”DJ 정책은 의사 대신 정육점 주인이 심장수술한 것 같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는 구라파 사회주의 국가에서 도입한 것이다. DJ 정부가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이 장사가 안 되니까 시장기능을 가미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집단이 전교조다. 사학법 개정은 자기들이 학교를 접수하겠다는 발상과 똑같다” “햇볕정책은 북한 퍼주기식 정책이다” 이런 한나라당 발언이 쏟아진 후 즉각 되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야당 총재 가계의 친일 의혹이 불거져 나왔고, 그 생가 복원을 향해 ‘컴퓨터 바이러스’ 출현에 비유하는 당보 만평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특권층이 태어난 생가는 다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느냐’는 이의 제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인민재판식 정적 죽이기’식으로 되로 받아 말로 메어치는 사이 정책의 쟁점이나 논쟁의 내용이 되어야 할 의제는 증발해 버리고 정치는 야당 총재 스스로 규정했듯이 ‘난장판’으로 전락한다.

    난장에는 원래 ‘삐끼’와 ‘약장수’와 ‘야바위’ ‘협잡꾼’이 있어야 제격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은 민주당을 이런 말로 욕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게 막가는 거친 말의 수사학적 성격을 뜯어보면 야당은 냉전 반세기를 통치해 온 집단답게 주로 ‘색깔론’에 의지해 있다. 그 태세도 거침없고 공세적이다. 여당이긴 하지만 야당보다 여러 모로 약체를 면하지 못하는 민주당은 그에 비해 늘 방어적이고 공격 수위도 낮은 편이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이 좁혀지고 제3의 길이 대안으로 뜨고 있다’는 식으로 다소 진지하다. 그러니 싸움판에서는 늘 목청 높고 강경한 쪽이 득세하는 꼴이다.

    오, 한국 정치여! 그대 몸 속에서 토론과 대화와 타협의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일은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만큼이나 부질없는가. 난데없이 ‘포퓰리즘’이니 ‘페로니즘’이 횡행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과연 ‘국민의 정부’가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는 정책으로 터럭만큼이라도 인기를 얻었느냐는 점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 집단은 결사항전으로 정권퇴진운동도 불사하겠노라며 으름장을 놓지 않았는가. 그런가 하면 기득권 세력은 그들대로 절차상의 하자야 있든 말든 정부의 ‘법치’ 아닌 ‘인치’를 비판하고 나서니 도대체 ‘국민의 정부’는 누구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원칙 없이 흔들리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랜 장마와 불경기와 급등하는 전셋값과 대졸 실업자 등으로 주눅든 국민에겐 정치권끼리의 공방이 시비곡직 불문하고 그저 짜증스럽기만 할 뿐이다. 오죽하면 제7차 교육과정으로 개편한 중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정치인을 영역다툼을 벌이는 늑대로 묘사했겠는가.



    이러한 정치 불신과 혐오를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르치는 나라에 미래가 있는가. 군국주의 일본제국의 전쟁범죄를 은폐 왜곡하여 거짓역사를 가르치는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를 향해 분노와 적개심을 감추지 못하는 우리는 과연 우리 신세대를 올바르게 가르쳤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험담과 비속어가 판치는 한 결코 우리 정치는 정책과 현안의 본질을 규명하면서 갈등 조정을 위한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의회와 의원이 모두 대권에 종속된 현 상황을 혁파하는 구조적 개혁을 선행하지 않고는 아무런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짤꼬, 이 뇌성마비된 정치를!

    정조 때 정쟁에 희생되어 폐서인된 불우한 문인 심익운의 오언고시가 남아 있는데 딱 이즈음의 형국을 패러디한 것 같다.

    소가 먹던 여물통에/ 개떼들 달려들어 핥는구나 요 개들 핥지 마라/ 이건 소가 먹다 남긴 것이다 개들은 듣고도 못들은 척/ 꼬리 흔들며 계속 핥아대는구나 이를 보고 길게 탄식하노니/ 개나 소나 다 같은 부류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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