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젊은 여성이 약혼자와 함께 자동차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수송되었다. 그 병원은 1년 전 젊은 여성이 아기를 출산한 곳이었다. 수속을 밟던 병원 접수요원이 병원 컴퓨터에서 그녀의 의료기록을 조회하다 여성의 약혼자를 남편으로 착각하고 “어머! 작년에 여기서 아기를 출산하셨군요”라고 했다. 접수요원의 사소한 실수였지만 이미 떠벌린 개인정보를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1999년 컴퓨터 회사인 휼렛패커드가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했다. “댁의 따님은 당신에게 과속하는 운전 습관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당신은 구형 재규어를 고이 차고에 모셔놓았습니다. 이때 E-서비스에 들어가세요. 자동차 속의 보안칩이 따님의 열쇠를 인식하고 차량 속도가 시속 65마일을 넘지 못하도록 ‘적정한계’에 위치시킵니다. 물론 따님은 과속하려 합니다. 차는 즉각 서비스에 신호를 보냅니다. 3000마일 밖에서도 당신은 저녁식사를 잠시 중단하고 거실로 나와 속도 다이얼을 누릅니다. 따님이 세 블록도 가기 전에 차량 전화벨이 울립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이 서비스가 항상 당신에게 유리하게 이용되리라는 법은 없다. 칩은 딸뿐만 아니라 당신의 운전태도까지 감시할 것이다. 만약 보험회사나 경찰이 차로부터 위험한 운전자에 대한 정보를 받는다면? 앞으로는 경찰 단속에 걸려 속도위반 딱지를 떼는 게 아니라 칩이 자동으로 정보를 보내 은행계좌에서 속도위반 벌금을 공제할지도 모른다.
약혼자 몰래 아이를 낳은 여자의 잘못이지 접수요원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생활이란 금기된 일이나 불법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은신하기 위해 문과 창문을 닫아 걸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사생활이란 사람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겪는 미묘한 일들을 드러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다(심슨 가핀켈). ‘데이터베이스 제국’의 저자인 가핀켈은 1995년 조사에서 미국인의 80%가 “우리는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기업체가 어떻게 유통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응답했음을 상기시켰다. 이미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비디오 카메라는 사사로운 순간들을 포착하고, 컴퓨터는 개인정보를 저장하고, 통신 네트워크는 이것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데이터베이스의 제국’은 기술이 우리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였는지 다각도로 보여주어 경각심을 일으키는 데 목적이 있다. 미국의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의 말대로 이 책은 ‘사생활 침해에 관한 생생하고 통렬한 고발’이다.
한편 렉 휘태커 교수(캐나다 요크대 정치학과)의 ‘개인의 죽음’(The End Of Privacy)은 사생활 침해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룬 ‘데이터베이스 제국’보다 시야가 넓다. 휘태커 교수는 새로운 정보기술이 정치 권력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흥미롭게도 대중이 새로운 감시기술에 의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권력의 감시에 대해 상대적으로 항의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답은 새로운 형태의 ‘원형감옥식 감시권력’이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상을 주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원래 원형감옥 개념을 만든 것은 18세기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다. 그는 원형모양으로 설계한 감옥을 제안하면서 감시자는 중앙사무소에서 밤낮으로 죄수를 지켜보고 지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항상 감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수들은 자신들이 끊임없이 감시 받는 것을 의식하고 위반에 따른 벌 때문에 규율을 지키고 나중에는 처벌이 불필요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 개념을 확대하면 국가 자체가 원형감옥이다. 관료인 감시관은 국가 자체를 철저히 보호하면서(행정기밀이라는 이유로) 대신 국민을 정교한 감시체제(각장 사회보장 시스템)로 편입시킨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이버 공간에 만들어진 거대한 바벨의 도서관이다. 새로운 감시기술은 개인을 점점 더 노출하고 사적인 공간을 무자비하게 축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프라이버시 보호정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형감옥에서 벌어질 연대와 저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술의 발전은 원형감옥의 일방적 투명성(감시관이 재소자를 감시)을 쌍방적 투명성(피감자가 감시자들을 감시)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세계화와 특정 지역문제에 대해 투쟁하기 위해 국경을 초월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활동을 가능케 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인은 비로소 함께 모이고 함께 일하는 지구촌 건설을 꿈꿀 수 있다. 이것이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고하는 시대에 거는 마지막 희망이다.
ㆍ 데이터베이스 제국/ 심슨 가핀켈 지음/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옮김/ 한빛미디어 펴냄/ 465쪽/ 1만3000원
ㆍ 개인의 죽음/ 렉 휘태커 지음/ 이명균·노명현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348쪽/ 1만2000원
1999년 컴퓨터 회사인 휼렛패커드가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했다. “댁의 따님은 당신에게 과속하는 운전 습관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당신은 구형 재규어를 고이 차고에 모셔놓았습니다. 이때 E-서비스에 들어가세요. 자동차 속의 보안칩이 따님의 열쇠를 인식하고 차량 속도가 시속 65마일을 넘지 못하도록 ‘적정한계’에 위치시킵니다. 물론 따님은 과속하려 합니다. 차는 즉각 서비스에 신호를 보냅니다. 3000마일 밖에서도 당신은 저녁식사를 잠시 중단하고 거실로 나와 속도 다이얼을 누릅니다. 따님이 세 블록도 가기 전에 차량 전화벨이 울립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이 서비스가 항상 당신에게 유리하게 이용되리라는 법은 없다. 칩은 딸뿐만 아니라 당신의 운전태도까지 감시할 것이다. 만약 보험회사나 경찰이 차로부터 위험한 운전자에 대한 정보를 받는다면? 앞으로는 경찰 단속에 걸려 속도위반 딱지를 떼는 게 아니라 칩이 자동으로 정보를 보내 은행계좌에서 속도위반 벌금을 공제할지도 모른다.
약혼자 몰래 아이를 낳은 여자의 잘못이지 접수요원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생활이란 금기된 일이나 불법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은신하기 위해 문과 창문을 닫아 걸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사생활이란 사람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겪는 미묘한 일들을 드러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다(심슨 가핀켈). ‘데이터베이스 제국’의 저자인 가핀켈은 1995년 조사에서 미국인의 80%가 “우리는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기업체가 어떻게 유통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응답했음을 상기시켰다. 이미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비디오 카메라는 사사로운 순간들을 포착하고, 컴퓨터는 개인정보를 저장하고, 통신 네트워크는 이것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데이터베이스의 제국’은 기술이 우리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였는지 다각도로 보여주어 경각심을 일으키는 데 목적이 있다. 미국의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의 말대로 이 책은 ‘사생활 침해에 관한 생생하고 통렬한 고발’이다.
한편 렉 휘태커 교수(캐나다 요크대 정치학과)의 ‘개인의 죽음’(The End Of Privacy)은 사생활 침해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룬 ‘데이터베이스 제국’보다 시야가 넓다. 휘태커 교수는 새로운 정보기술이 정치 권력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흥미롭게도 대중이 새로운 감시기술에 의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권력의 감시에 대해 상대적으로 항의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답은 새로운 형태의 ‘원형감옥식 감시권력’이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상을 주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원래 원형감옥 개념을 만든 것은 18세기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다. 그는 원형모양으로 설계한 감옥을 제안하면서 감시자는 중앙사무소에서 밤낮으로 죄수를 지켜보고 지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항상 감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수들은 자신들이 끊임없이 감시 받는 것을 의식하고 위반에 따른 벌 때문에 규율을 지키고 나중에는 처벌이 불필요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 개념을 확대하면 국가 자체가 원형감옥이다. 관료인 감시관은 국가 자체를 철저히 보호하면서(행정기밀이라는 이유로) 대신 국민을 정교한 감시체제(각장 사회보장 시스템)로 편입시킨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이버 공간에 만들어진 거대한 바벨의 도서관이다. 새로운 감시기술은 개인을 점점 더 노출하고 사적인 공간을 무자비하게 축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프라이버시 보호정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형감옥에서 벌어질 연대와 저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술의 발전은 원형감옥의 일방적 투명성(감시관이 재소자를 감시)을 쌍방적 투명성(피감자가 감시자들을 감시)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세계화와 특정 지역문제에 대해 투쟁하기 위해 국경을 초월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활동을 가능케 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인은 비로소 함께 모이고 함께 일하는 지구촌 건설을 꿈꿀 수 있다. 이것이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고하는 시대에 거는 마지막 희망이다.
ㆍ 데이터베이스 제국/ 심슨 가핀켈 지음/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옮김/ 한빛미디어 펴냄/ 465쪽/ 1만3000원
ㆍ 개인의 죽음/ 렉 휘태커 지음/ 이명균·노명현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348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