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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민심을 모른다”

민주당 소장파 ‘整風 회오리’ 확산 … 통치구도 흔들, 당 내분양상 조짐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

“아직도 민심을 모른다”

“아직도 민심을 모른다”
임기말을 맞은 여권의 권력관리 프로그램 및 차기 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내 개혁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에 의해 주도된 이번 정풍운동은 시간이 가면서, 단순히 정풍 차원의 집단적 움직임이 아니라 당내 내분 양상으로 치달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다음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읽을 수 있다. 지난 5월24일 초선 의원 6인이 안동수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 파동과 관련해 인사 개입자 문책을 요구한 데 이어 재선인 천정배 신기남 의원이 이에 가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때, 정균환 특보단장은 이들 의원들과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나섰다. 정균환 의원은 어차피 말할 내용이라면 대통령 앞에서 직접 얘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겠느냐며 천의원과 신의원의 설득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두 의원은 다음날 오후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정균환 의원이 이들 의원과 김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은 김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의 ‘승락’ 없이 정의원 독자적으로 움직였다고 보기 힘든 것. 그러나 천의원과 신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당내 소장파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이미 청와대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아직도 민심을 모른다”
초선 의원 6인이 인사개입자 문책론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여권 핵심부는 이를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이를 항명으로 보지 않고 당을 위한 충정으로 이해한다고 발언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여권 핵심의 안이한 반응은 당내 소장파의 거센 반발을 더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과 지도부가 아직도 민심 이반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격앙된 반응이 주류를 형성했다. 이는 또한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 보좌진과 일종의 친위대 격인 동교동 구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집약되는 계기가 됐다.

5월28일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도 이런 모습은 재연됐다. 중국을 방문 중인 김중권 대표를 대신해 의사봉을 잡은 동교동 구파의 안동선 최고위원은 “충정은 이해하나 성명 발표는 적절하지 않았다. 오늘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자 정동영 최고위원이 이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정최고위원은 “오늘 회의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있게 떠맡지 않으면 안된다”며 “최소한의 대답을 오늘 회의에서 할 필요가 있으며, 분열로 규정해선 안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이날 회의가 김중권 대표의 귀국 후에 수습책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정위원은 회의 30여분만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섰다.



이번 민주당 소장파들의 정풍운동 사태는 결국 여권 핵심부를 구성하고 있는 동교동계 구파 인사들과 당내 소장파 사이에 심각한 인식의 균열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안동선 위원은 “당의 위기의식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당이 분열된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 정책이나 인사의 실패보다 더 큰 문제”라고 못박았다. 결국 사태의 근본적 치유보다는 봉합을 우선적으로 내세운 것. 그러나 정동영 위원은 “문제를 제기한 의원들로 인해 당이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당에 희망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 밖에선 이 분들이 민주당에 새출발의 기회를 줬다고 한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인식의 단절은 결국 이날 오후 정위원의 공식 입장 표명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번 소장파들의 정풍운동이 어느 차원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냐 하는 점. 또한 당내 소장파 인사들의 세 규합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도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이번 소장파들의 ‘거사’는 민주당의 근본적인 대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소장파 인사들은 최고위원 전원 사퇴→ 조기 전당대회 개최 →당정 전면 개편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하나같이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기존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이번 사태를 “전형적인 레임덕 현상”으로 규정하는 한 고위당직자의 전망. “정치권에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은 전근대적 가신문화라는 울타리에 안주해 권력을 운영하고 있다. 국정 난맥상을 초래한 왜곡된 인사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여권 내부의 항명은 수시로 터져 나올 것이며 김대통령의 말년은 그만큼 피곤할 것이다.”당의 한 관계자는 “당 소속 의원들의 항명은 노태우 대통령은 물론 YS 정부 때도 유례가 없던 일”이라고 지적한다. 여권 지도부의 최대 고민도 바로 이 점이다.

천정배 신기남 의원이 지난 5월25일 기자회견에서 요구한 것은 국정쇄신이었다. 절제된 표현이지만 내용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구도를 흔들 수 있는 예민한 부분으로 채워졌다. 이들의 주장은 김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맞아 구축한 국정운영 및 인적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국정쇄신을 명분으로 김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는 인사에 대한 처벌과 2선 후퇴를 요구한 것. 구체적으로 대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그들이 조준하는 타깃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우선 소장파가 지적한 비선 라인은 동교동계 구파와 청와대 주변의 실세 참모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권노갑 전 고문과 한광옥 비서실장, 남궁진 정무수석, 박지원 정책기획수석 등이 그들이다. 동교동 구파의 이훈평 의원은 “움직이면 움직인다고 야단이고, 가만있으면 가만있는다고 야단”이라며 소장파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김중권 대표와 박상규 사무총장도 당정쇄신의 대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초-재선 시각에 투영된 김대표와 박총장은 ‘과거 인물’이다. 초-재선 그룹의 한 인사는 “이들로 인해 정체성이 모호해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대표의 한 측근은 “115명 민주당 의원 중 4~5명의 주장”이라며 이를 평가절하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김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과 관련해 고르고 고른 인물들로 당-정의 핵심 포스트를 맡았다는 점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들을 빼고 새롭게 진용을 구축할 만한 인물도, 여유도 없다. 이미 문제를 거론한 자체만으로도 김대통령 중심의 구심력을 상당 부분 훼손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한 인적 자원의 한계 차원으로는 소장파 의원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과 청와대가 손발을 맞추어도 어려운 상황에 핵심 3각축이 갈등을 드러냈다는 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는지에 따라 민주당의 진로는 크게 달라진다.

보다 심각한 것은 소장파가 제3, 제4의 거사를 준비한다는 점이다. 정장선 의원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제3, 제4의 행동도 있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김대통령을 뛰어넘을 생각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혁 모임 소속의 한 인사는 “문제는 김대통령의 정국운영에 대한 인식과 방법”이라 못박는다. 김대통령에게 직접 국정운영 스타일의 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상황이 악화하면 필연적으로 여권의 대권 구도도 영향을 받는다. 김대통령 통제력의 이완은 그야말로 당의 춘추전국시대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초-재선 그룹의 거사로 시작한 국정쇄신론은 여권 내부의 차기 구도는 물론, 정치권에 일대 지형 변화를 몰고 올 촉매가 될 수 있다. 민주당 개혁세력의 결집은 곧 한나라당 개혁세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여권 내부의 분열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도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민주당 소장파들에 쏠리고 있다.





주간동아 2001.06.07 287호 (p12~13)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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