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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 | 코트 디부아르① 탱골란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magenta@kornet.net >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탱골란(Tengoulan)은 서아프리카 코트 디부아르(Cote d’Ivoire)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자그마한 마을이다.

내가 이곳을 굳이 찾은 까닭은 코미안이라는 여자 무당이 이끄는 독특한 원시 신앙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타는 듯한 태양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 아프리카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허리를 구부리고 폈다가 다시 뛰어오르고 돌기를 십여 차례. 사람의 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거친 몸짓과 열기를 내뿜으며 검게 빛나는 여인이 햇볕 아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몸짓을 바라본다. 신(神)기가 감도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기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온몸을 들썩이며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모여든 사람들의 경외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여인은 바로 탱골란 마을의 ‘코미안’(Komian).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탱골란(Tengoulan)은 서아프리카 코트 디부아르(Cote d’Ivoire)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자그마한 마을이다. 내가 이곳을 굳이 찾은 까닭은 코미안이라는 여자 무당이 이끄는 독특한 원시 신앙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탱골란은 수도 아비장(Abidjan)에서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버스가 아비장과 탱골란 사이에 있는 아벤소루(Abengourou)까지밖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여, 나는 할 수 없이 아비장에서 지프를 세내어 타고 물어물어 탱골란 마을을 찾아갔다.

아비장을 떠난 지 십여 분. 외길 국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아비장의 현대적인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새 사라지고 가슴이 탁 트이도록 드넓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때마침 우기가 찾아와 생명이 움트는 기운으로 가득한 평원을 달리다 보니 다시 밀림 지대다. 그곳을 헤치고 나아가다 만난 늙은 아낙은 처음 만난 동양인이 신기한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을 생각도 없이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굵고 키가 큰 열대림 사이로 난 붉은 외길을 따라 세 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흙벽에 풀로 지붕을 만들어 덮은 집들 사이로 염소가 한가로이 노니는 마을이 나타났다. 탱골란이었다.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마을로 접어들자 드문드문 보이는 콘크리트 집과 옹색하나마 통조림이나 콜라 따위를 파는 가게가 문명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추장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마을 사람들은 정령이 자연과 인간사를 주관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흔히‘부두교’(Voodoo)라 부르는 이러한 믿음은 가나에서 나이지리아, 베닌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펴져 있다. 부두교라 하면 흔히 공포 영화에서 그려지듯 죽은 이를 좀비로 만들어 부리는 사악하고 비밀스러운 종교쯤으로 여길지 모르나, 이는 아프리카의 종교를 처음 접한 서구인들의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들여 있고, 이들이 모든 자연 현상이나 인간사를 주관한다는 믿음은 세계 어느 나라의 원시 신앙에서나 두루 나타나는 것이다. 이곳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수호신을 ‘보두’ 또는 ‘보둔’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소나 닭, 양, 염소 등을 제물로 바친다. 부두교라는 이름은 이 ‘보두’ 또는 ‘보둔’이라는 정령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인들에 의해 야만적인 노예 사냥과 식민지 침탈이 자행되던 때에 부두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갈 수 있게 해준 힘의 원천이었다. 영화 ‘아미스타드’에서도 소개되었던 것처럼 부두 의식은 그들의 결속을 확인해 주는 끈이었던 것이다.

탱골란 마을에는 이 부두교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과는 달리 코미안이라는 여자 무당이 모든 종교 의식을 주관하고 있다. 코미안은 신의 부름을 받은 이를 말한다. 신의 부름은 특정한 병도 없이 시름시름 앓거나 헛것을 보거나 하는 ‘무병’으로 나타나는데, 무병을 앓게 되면 치료 능력과 예언 능력이 뛰어난 신어미를 찾아가 신에 대한 지식과 약초를 이용한 치료법, 미래를 점치는 법, 신을 불러들이는 춤 등을 일정 기간 수련한 뒤 뙤약볕 아래서 다섯 시간 동안 춤을 추는 시험을 거쳐 비로소 코미안이 된다. 코미안은 대를 이어 전수되는데, 지금은 33세의 아히 알루아라는 여자가 3대 코미안으로 마을의 종교 의식을 주관하고 있다.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운 좋게도 내가 찾아간 날 마을에서는 아픈 아이를 위한 의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치료를 위한 의식은 나무껍질과 풀을 찧어 약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코미안은 직접 약재를 구하러 다녀서는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이 일은 그녀의 아버지가 대신하게 된다. 약이 다 만들어지면 신에게 바칠 닭과 염소를 잡아 그 피와 털을 흩뿌려 주위를 정화한다.

본격적인 의식은 코미안의 아버지가 마을의 1대 코미안인 마카우야 만도야의 무덤에 술을 뿌리고 난 뒤에야 시작되었다. 고수들이 탐탐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온몸에 하얀 고령토를 바르고 색색의 구슬로 단장한 아히 알루아와 그녀의 제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히 알루아는 소꼬리와 창을 휘두르며 구부정한 자세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동작이 빨라질수록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열기도 높아갔다. 탐탐 소리와 그녀의 춤은 묘하게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구석이 있다.

문명 때 묻지 않은 ‘무속의 마을’
춤이 절정에 이르자 그녀는 빠른 말투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어와 마을 사투리가 섞여 있어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말투와 목소리가 자주 바뀌는 것으로 보아 여러 신들이 그녀의 몸을 드나들며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는 제자들이 건네는 각양각색의 목각 인형에 따라 달라졌는데, 우리네 무당들이 다른 신령들을 받아들일 무복을 갈아입는 것처럼 코미안은 목각 인형을 통해 각기 다른 정령들을 불러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던지는 이야기에 따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거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의식이 무르익어 가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녀와 함께 춤을 추는 이들도 생겨났다. 신이 내린 코미안이나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나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닮아 있는지…. 나는 어느덧 그 까만 사람들이 살갑게 느껴졌다.

의식을 마치고 난 아히 알루아의 얼굴에는 신기는 사라지고 보통 여자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천대받는 우리네 무당이나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이곳의 코미안이나,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자 치유자로 살아가자면 많은 인간적인 부분들을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히 알루아의 허탈한 표정에 가슴 가득 연민이 밀려든다.





주간동아 2001.04.05 278호 (p96~97)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magenta@kor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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