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5

2006.03.07

태국 시골청년의 어처구니없는 모험담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6-03-06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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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시골청년의 어처구니없는 모험담
    태국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는 끝내주는 영화였다. 아마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이 영화로 태국 뉴웨이브 영화에 눈뜨게 된 관객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괴상망측한 태국 웨스턴 영화는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차기작인 ‘시티즌 독’이 먼저 개봉된다. 좋은 일일까? 아니, 전작을 먼저 소개하는 게 제대로 된 순서라고 생각한다.

    황당무계한 정도만 측정한다면 ‘시티즌 독’도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작을 능가한다.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유지했던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와 달리 ‘시티즌 독’은 이야기의 당위성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포드라는 시골 청년이 대도시 방콕에 와서 겪는 모험담이다. 포드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진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진은 하늘에서 떨어진 정체불명의 외국어 책을 뜻도 모르면서 읽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플라스틱 병을 모아 달에 닿을 정도로 높은 산을 만드는 사람이다.

    포드가 만나는 나머지 사람들도 진보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헬멧 비에 맞아 죽은 뒤에도 여전히 오토바이택시 운전사 노릇을 하는 유령, 스물을 넘긴 어른이지만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와 그 소녀의 말하는 골초 곰인형, 정어리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다가 잘린 손가락이 포드의 손가락과 바뀐 친구 요드 등등. 포드는 이들과 얽히면서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무표정한 ‘버스터 키튼’ 얼굴을 바꾸지 않는다.

    태국 시골청년의 어처구니없는 모험담
    뭔가 실험적인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티즌 독’은 형식면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작품이다.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트릭은 단순하다.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일상적이고 평범한 보통사람의 이야기처럼 덤덤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굉장히 손쉽기 때문에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다음 시퀀스에 등장할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금방 짐작될 정도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태국판 ‘아멜리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아멜리에’가 한 수 위다.



    그래도 HD로 찍은 화면은 아름다우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는 즐겁고 사랑스럽다. 전작과 이 영화를 비교하지 않는 관객들에게 ‘시티즌 독’은 즐거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시티즌 독’에 거는 또 한 가지 기대.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국내 관객이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를 만날 수 있는 길도 열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Tips

    위시트 사사나티앙
    광고와 음반 회사, TV 프로그램 연출자로 경력을 쌓은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그가 시나리오를 쓴 ‘댕 버럴리와 일당들’과 ‘낭낙’은 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그를 ‘뉴웨이브’의 주자로 꼽히게 했다.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년)은 밴쿠버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칸에도 초청됐다.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에 필적하는 코믹 배우로 자신은 웃지 않으면서 관객들의 페이소스와 웃음을 자아내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로 불렸다.

    아멜리에
    장 피에르 주네의 아주 독특한 러브스토리 영화로 전 세계에 ‘아멜리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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