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E텔 전경. ‘영업 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동성애 클럽 출입문.
‘목요이벤트’ 입장료 1만원
동성애자들의 비밀스런 모임인 만큼 엄격한 신원확인 절차를 거칠 것이란 취재진의 예상은 빗나갔다. 입장료 1만원을 내자 종업원은 옷장 열쇠와 흰 수건 한 장, 눈을 가릴 수 있는 가면을 건넸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나오니 폭이 채 1m가 되지 않는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창가에는 서너 명의 남성들이 나체로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안에서만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을 통해 이태원의 야경이 드러났고 이를 감상하는 친구의 얼굴은 꽤나 진지했다.
복도 끝에는 화장실과 샤워실, 파우더실이 마련돼 있다. 로션, 칫솔, 일회용 가글액이 놓여 있는 파우더실 한편에는 동성애자들이 관계를 맺을 때 사용하는 일회용 윤활제도 쌓여 있다. 지나가는 이들과 통로에 기댄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흔한 모습. 서로 가슴이나 성기를 쓰다듬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따금 추파를 거절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커플(?)은 분위기에 취해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몇몇 커플은 창문 건너편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칸막이로 나눠진 방은 모두 여섯 개. 문이 없고 커튼이 걷힌 방은 방이라기보다 오픈된 섹스 공간에 가깝다.
성행위를 하는 이들 주위로 사람들이 모인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애무를 시작했다. 자위를 하는 남성에서 서너 명씩 엉켜 있는 이들까지…. 주위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2평이 채 안 되는 방에서는 남성 7명이 서로 쓰다듬고 애무를 한다. 성행위가 끝나면 흩어졌다가 다른 상대를 끌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손님들은 대부분 건장한 체격의 20대.
목요일마다 열리는 이 집단 성교 이벤트에는 간단한 규칙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전라여야 한다는 것. 종업원은 “수건으로 가리면 안 된다”며 몸을 가린 이들에게 수시로 규칙을 환기시킨다. 나가려는 취재진에게 “기다리면 손님이 더 많이 온다”며 관심을 유도하는 종업원 얼굴이 무표정하다.
이곳에서 만난 ‘로빈’은 캐나다인이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며 “동양 남자에게 관심이 있어 중국에 가는 길에 들렀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온 일본인도 “서울에 올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며 E텔의 국제경쟁력(?)을 확인해줬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며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게이바에 앉아 있는 두 남성.
이 업소가 위치한 골목은 흔히 ‘게이 힐’이라고 불린다. 건물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King Club’, ‘Always Homme’ 등 이름만 봐도 남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는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트랜스젠더들의 바도 맞은편 골목에 들어서 있다.
골목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남성 동성애자들의 마사지 업소인 B숍이 있다. 이곳은 보디빌더들을 마사지사로 고용해 인기가 높다. 특히 B업소의 남성 고고쇼는 동성애자들 사이에 인기폭발이다.
업소 위치한 골목 ‘게이 힐’로 불려
이들은 전국 게이 클럽 순회공연을 하기도 하고 동영상을 제작해 동성애 포털사이트를 통해 유통시키기도 한다. 가면 파티를 비롯해 남성 마사지나 고고쇼, 즉석에서 성행위를 할 수 있는 휴게텔과 사우나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에 버스터미널 화장실이나 삼류 극장에서 만나는 게 고작이던 동성애자들이 지금은 클럽이나 전용 찜질방 등에서 자유롭게 상대를 만나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물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파트너를 고른다. ‘이반닷컴’이나 ‘이반시티’ 같은 동성애 포털 사이트에는 동성애자들이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사우나, 휴게텔, 술집 등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동성애에 개방적인 풍조가 정착되면서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도 관대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1년 6월23일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서 열린 동성애자 퍼레이드에 세계 각국에서 온 5만여명의 동성애자와 성전환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윤 교수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고 동성애를 인정한다면 집단 혼음과 같은 비정상적인 연애 형태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단 난교는 흥분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의식”이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기에 이러한 유대가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단 혼음 지극히 일부의 문화”
집단 혼음은 물론 동성애자들 전부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관계자는 “집단 혼음은 동성애자들 가운데에서도 지극히 일부의 문화”라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집단 혼음 등의 방식으로 실정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런 동성애자들에 대한 단속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E텔 같은 경우 근처 상인들도 “그런 곳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관할 경찰서 한 관계자는 “E텔의 실태를 아느냐”는 질문에 “정보가 있으면 달라”고 매달렸을 정도. 그는 “집단 혼음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없다”며 “동성애 모임의 경우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듣지 않는 한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전원택 변호사는 “성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라면서도 “집단으로 혼음을 일삼는 성 도착증 환자까지 보호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명백한 범죄 행위들은 적발하는 대신 합법적인 행위들은 보호해줘야 한다는 동성애자들의 권익에 대한 재해석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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