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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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함께 춤을?

정치권과 대권주자들 연일 복지에 추파 던지기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1-01-10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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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와 함께 춤을?
    ‘한국형 복지’ ‘보편적 복지’ ‘선택적 복지’ ‘선별적 복지’ ‘자립자활형 복지’ ‘자립보장형 복지’…. 연일 새로운 복지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복지전쟁’이다. 여야 정치권과 대선주자들은 경쟁적으로 자당(自黨) 혹은 자신들만의 복지가 최선이라 주장한다. 2011년 새해 벽두부터 복지전쟁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월 3, 4일 이틀간 대구에 머물며 신년교례회 참석 직후 달성군 노인복지관에 이어 대구시립희망원, 대한노인종합복지관을 찾는 등 복지 행보로 한 해를 시작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00일간 전국 234개 시군구를 돌면서 서민생활을 직접 챙기는 ‘찾아가는 복지’로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전략이다.

    복지 신호탄 쏜 박근혜 전 대표

    서울시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오세훈 시장과 시의회 간의 힘겨루기로 새해 첫날부터 파행을 예고했다. 시의회에서 통과한 무상급식 예산 집행을 오 시장이 전면 거부하기로 한 것. 속내를 들여다보면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와 오 시장의 자립자활형 복지 간의 미묘한 정책적, 이념적 대립이 숨어 있다.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200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민심의 미묘한 변화를 반영한다. 2007년 대선은 ‘분배’와 ‘성장’ 간 대결이었다. ‘압축성장’의 상징인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당시 민심이 ‘성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대통령도 성장 못지않게 ‘친서민’ ‘복지’도 강조하는 상황이다.



    민심 변화의 분수령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였다. 당시 서민층의 표심을 자극한 최대 이슈는 무상급식 문제였다. 여야 정치권은 무상급식 공약을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이라고 반박했다. 예산도 부족한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유층 자녀까지 무상급식을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한나라당 측 논리였다. 야당은 선별 무상급식을 하면 저소득층 자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낙인효과’가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지방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패배였다. 무상급식 공약 논란이 표심을 가른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지난해 10월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명문화하고 당론으로 채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실시하는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표를 얻기 위한 차별화 시도

    복지와 함께 춤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10년 12월 20일 오후, 자신의 복지정책 구상을 담은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의 공청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복지전쟁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12월 20일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면서부터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한국형 복지국가론’을 피력했다. 박 전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 사회보장제도는 서구 국가가 과거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구시대에 만들어진 틀이라서 사회안전망으로서 역할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 양극화 등에 따른 대량빈곤 문제와 사회적 소외 문제 때문에 제도 유지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 제안하는 ‘한국형 복지모델’의 핵심은 선제적, 예방적이며 지속가능하고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통합 복지시스템”이라 소개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가 12월 국회 초청 강연을 통해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복지’를 말할까. 장 교수는 “우리나라가 아직은 성장이 더 필요한 단계지만, 국민이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단계에 왔다”고 설명했다.

    서강대 이현우 정치학과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중산층은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개인적으로 노력해서는 경제적 지위가 나아지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해졌으며, 노령화 사회를 걱정하면서 국가의 책임과 복지 문제에 관심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주호영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도 “오랫동안 분배가 먼저냐, 성장이 먼저냐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는데, 이제 분배, 특히 복지에 신경 쓸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경제성장과 함께 복지를 논의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이야기다.

    2012년 총선에 이어 대선이 치러지는 시대적 상황도 복지전쟁을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교수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생각하는 것이 무상급식 문제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이 문제가 이미 표심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복지문제가 우리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정치인들도 이를 파악하고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난 대선 때 국민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이명박식 성장을 선택했지만, 복지를 동반하지 않은 성장은 문제가 있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명박식 성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지와 관련한 국가와 사회의 역할에 관심이 커지면서 복지문제는 내년 대선 때 중요한 이슈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은 현재 여야 할 것 없이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 내용이나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복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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