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세노르·사울 싱어 지음, 윤종록 옮김/ 다할미디어/ 335쪽/ 1만5000원
성공신화는 아름답다. 개인이 상상하지 못할 큰 꿈을 품고, 그 꿈을 위해 무모하게 노력하다가 끝내 그곳에 다다르는 과정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오늘날 성공신화는 대부분 창업신화다. 하지만 창업은 자릿값과 초기 자본금 등 현실적인 조건을 갖춰야만 비로소 시동이 걸린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은 창업 불가 사회다. 제도는 소홀하고 문화는 덜 익었다. 떡잎의 성장을 도울 만한 뒷받침이 부족하다. 때문에 대부분 청년은 구직에 목을 맨다. 창업의 어려움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잠재력 있는 아이디어가 영글지 못하며, 조직문화는 제자리걸음한다.
‘창업국가’는 이스라엘의 21세기 경제성장을 다룬 책이다. 건국 당시 이스라엘은 무일푼 난민사회였다. 생활 표준이 미국인의 1800년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은 세계 제일의 벤처 강국이다. 세계의 벤처 캐피털이 이스라엘로 몰려들며, 유럽 대륙 전체보다 더 많은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 책은 미국 및 이스라엘인 100여 명을 만나 이스라엘의 성장 배경을 추적했다.
저자는 우선 이스라엘의 문화에서 강점을 발견한다. 이스라엘은 70개가 넘는 다민족 국가이며, 이라크, 폴란드, 에티오피아에서 온 난민은 언어나 문화도 공유하지 않았다. 이질적인 문화는 흔히 사회적 걸림돌로 지적되지만 이스라엘은 탁월한 팀워크로 단점을 혁신정신으로 일궜다. 문화차이 속에 떠도는 아이디어가 창업국가의 바탕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지목한 것은 ‘후쯔파(chutzpah)’다. 후쯔파의 사전적 의미는 ‘주제넘은, 뻔뻔스러운, 철면피, 놀라운 용기, 오만’. 하지만 이스라엘에 녹아든 후쯔파의 본뜻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대학생이 교수와 이야기할 때, 직원이 상사를 대할 때 몸에 밴 태도가 바로 후쯔파다.
“신사적인 기업에서는 이스라엘식 토론이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차원을 초월하면 홀가분해진다. 그들은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심리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은 0살부터 당연함에 도전하고, 물어보고, 논의하고, 혁신하라고 교육받는다.”
이스라엘의 군대도 일등 공신이다. 이스라엘 청소년은 17세가 되면 들어갈 군대 유닛을 선택한다. 과정이 탄탄한 엘리트 유닛은 경쟁률이 명문대만큼 치열하다. 엘리트 유닛이 아니라도 이스라엘인들은 군대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쌓는다. 모든 군인에게 분명한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자연스럽게 리더십과 위기 대처능력을 기를 수 있다. 또 20년간 예비군 훈련을 하면서 쌓은 전우애는 사업적 네트워킹으로 이어진다.
“18세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은 최소 2, 3년간 군복무를 해야 한다. 대학에 먼저 갈 수도 있지만,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가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이 군대에서 생사가 오가는 결정을 내리고 규율을 배우는 것이다. 혁신은 이러한 경험에서 나온다고 본다.”
한국은 여러모로 이스라엘과 닮았다. 자원이 부족하고 안보가 불안정하며 군복무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창업국가로 비약한 반면 한국은 주춤했다. 한국은 왜 이스라엘만큼 벤처 창업을 일구지 못한 것일까. 다음은 기술과 문화를 연구하는 ‘리프트 콘퍼런스’의 창시자 로랑 허그의 말이다.
“체면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2000년 IT 거품의 붕괴가 그 원인이다. 한국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남에게 알려져선 안 된다. 1차 벤처 거품이 꺼진 뒤 그들의 실패는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에 상처를 남겼다.”
최근 한국은 제2의 벤처붐을 노리고 있다. IT와 스마트폰 시장이 동력이 됐다. 하지만 붐은 쉽게 일지 않을 전망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과거 젊은 벤처 사장들의 방종으로 인한 규제 강화, 그리고 한 번의 실패로 인한 투자 확보의 어려움 탓이 크다. 이런 점에서 로랑 허그의 통찰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탈무드를 읽는 똑똑한 유대인들의 나라’ 정도로 알려진 이스라엘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