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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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 마을 주민들 ‘한숨 소리’

드라마 촬영지 청주 수암골 매일 북새통 쓰레기·주차 등 유명세로 홍역 치러

  • 글·사진 =최정인 프리랜서 기자 gajungchoi@hanmail.net

    입력2010-08-30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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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구 마을 주민들 ‘한숨 소리’

    충북 청주시 수암골의 골목길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장대비가 쏟아지던 8월 25일 저녁, 기자는 ‘수암골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광진 씨와 ‘김탁구 마을’로 유명해진 충북 청주시 수동(수암골)을 찾았다. 비가 와서 관광객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마을 입구 언덕을 오르자마자 팔봉제과점 앞을 기웃거리며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잠시 비를 피해 팔봉제과점 앞에 있는 삼청슈퍼에 서 있었더니, 나이 지긋한 마을 주민이 ‘여기 앉으라’며 자리를 내줬다. 수암골 부녀회원들이 운영하는 먹을거리 장터였다. 대형 파라솔 아래에서 파전에 맥주를 마시면서 취기가 오른 어르신들은 취재하러 왔으면 수암골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며 이야기를 풀었다.

    수암골은 청주 우암산 아래에 자리한 수동과 인근 우암동을 아울러 부르는 것으로 특히 수동은 해방 직후 중국, 일본에서 온 귀향민과 6·25전쟁 피란민 등이 뒤섞여 마을을 이룬 곳이다. 좁은 골목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대표적 달동네로, 50대 이상 주민이 대다수다.

    수암골은 지난 200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예술가들이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벽화를 그리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적한 마을을 가족이 산책할 수 있는 활기찬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청주시와 청주공항이 지난해 2월, 청주공항 활성화를 위해 드라마 ‘카인과 아벨’을 유치하면서 이곳은 촬영장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더니 올 6월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이 시작된 후 수암골은 그야말로 ‘떴다’.



    평일에는 1000여 명, 주말에는 4000~5000명이 마을을 찾아 수암골 일대는 수백 대의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관광명소 수암골이 뜨자 충북도와 청주시는 ‘2010 대충청방문의 해’와 맞물려 수암골 관광 홍보에 나섰고, 이에 맞춰 지역 언론들은 관광객 수와 TV 시청률을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일약 화려한 조명을 받은 ‘김탁구 마을’ 주민들의 시름은 깊다. 드라마 촬영으로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것은 수암골 주민들도 환영하지만, 문제는 생활 속 불편과 관계 당국의 무관심. 이날 수암골 경로당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마을을 관광지로 만들려면 시나 구청에서 휴지통도 가져다놓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부터 만들어놓아야 했다. 촬영장 사용에 대해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어 지금 주민들의 피해가 말이 아니다.”

    담 넘어 기웃 창문도 못 열어

    주민들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촬영에 하루 수천 명씩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균 일주일에 2~3일 드라마 촬영이 이뤄지는데, 촬영이 있는 날에는 밤이고 낮이고 구경 온 사람들로 북적대 발 디딜 곳이 없다. 새벽까지 촬영이 있는 날은 조명과 소음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은 한적한 곳에 야외 세트장을 만들고, 도심에는 실내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하지만 수암골은 도로가 좁은 데다 주택 밀집지역이어서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 수동 15통 통장 윤여정 씨의 하소연이다.

    “요즘 같은 폭염에도 창문을 제대로 열 수 없다. 담 너머 기웃거리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문을 두드리는 관광객도 한두 명이 아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카인과 아벨’ 촬영 때부터 관광객이 몰려 공중화장실을 건립해달라고 청주시에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제빵왕 김탁구’가 뜨면서 주민과 관광객들의 불편이 커지자 지난 7월 언덕배기 정상 부근 마을 공중화장실을 개·보수한 뒤 개방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화장실이 멀다” “화장실까지 길이 가팔라 오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집을 들락날락한다.

    김탁구 마을 주민들 ‘한숨 소리’

    밤늦은 시간의 관광을 자제해달라는 주민들의 ‘부탁 현수막’(위). 주민들은 촬영장 앞에 주점을 열어 수익금은 마을 발전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주인공 윤시윤(김탁구 분)을 만나기 위해 일본 관광객이 단체로 찾아오지만, 이처럼 무질서한 상황에 ‘국제망신’을 당하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주민도 많다. 마을 입구에는 최근 청주시가 조성한 주차장이 있지만 이미 마을 전체가 주차장이 돼버렸고,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주민들이 알아서 치워야 한다.

    주민들은 이런 불편을 겪고 있는데 정작 수암골이 드라마 촬영지로 정해질 당시 제작사나 청주시 어느 한 군데도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드라마 제작 반대 시위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관광객들의 ‘수암골 촌평’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다.

    “관광객들이 주민들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고,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 ‘이 동네 달동네인가 봐’ 같은 듣기 불편한 이야기도 많이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기분이 나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불편한 것은 우리인데 왜 관광객들로부터 그런 평가까지 받아야 하나? 우리는 드라마 (촬영을) 안 해도 상관없다.”

    주민 김종수 씨는 “시나 구청에서 지금이라도 주민들을 찾아와서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전혀 그럴 움직임이 없다. 관광객 쓰레기는 누가 치우나? 수암골 주민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고 정이 많아서 힘들어도 손수 치운다. 한밤중에 관광객이 화장실 쓰고 싶다고 하면 문을 열어준다. 빨리 도로를 넓혀주든가, 청소를 해주든가 해야….”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민들은 최근 ‘수암골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우리 마을이니까 우리 손으로 가꾸고 생활 기반도 마련하자는 게 취지.

    “이 기회에 마을 살리자” 이심전심

    부녀회원들이 주축이 돼 촬영장 앞 공터에 작은 먹을거리 판매장(일종의 주점)을 차렸고, 그 옆에서 이상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직지 티셔츠와 열쇠고리, 컵 등도 판다. 앞으로 작가들과 협의해 수암골의 특징을 담은 기념품도 제작할 계획이다. 여기서 생긴 수입은 모두 마을 발전기금으로 쓰기로 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도 관광객 상대로 계속 운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수암골의 빈집에 작가들이 입주해 ‘예술 마을’을 조성하고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연계한 ‘수암골 작품’을 판매할 계획도 논의했다. 청주시에는 마을 청소와 인근 우암산 전망대 청소를 수암골 주민들이 할 수 있도록 희망근로사업을 확대해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청주시는 ‘수암골 알리미 사업’을 주민들이 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주민 2명을 주차관리 요원(희망근로사업 대상자)으로 일하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암골 주민은 작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갑자기 생긴 ‘사건’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동안 어두운 마을 이미지를 벗고 이 기회에 마을을 살려보자는 뜻이 이심전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수암골을 찾은 관광객들은 종종 ‘빵 팔아 돈 좀 벌었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수암골 W갤러리 공간 일부를 개조한 팔봉제과점은 주인공 김탁구가 빵을 만드는 곳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려든다. 드라마가 뜨면서 ‘빵을 팔라’는 관광객의 요청이 잇따르자, 청주의 모 제과점으로부터 매일 팥빵과 크림빵, 소보로빵 등 3000~4000개를 납품받아 판매하는데 연일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하지만 빵의 수익금은 수암골 주민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갤러리 주인의 몫이다. 얼마 전까지 1000원에 판매하던 빵을 최근 500원 인상된 1500원에 판매하자 일부 관광객으로부터 너무 비싸게 파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한다.

    청주시 용암동에 사는 최모(35) 씨는 “아이들이 빵을 먹고 싶다고 해서 샀는데 관광지라 그런지 너무 비싸다”며 “장사도 좋지만 수암골이 지나치게 상술이 밝은 곳으로 비칠까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청주시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최근 충청북도 정무부지사가 수암골 주민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건의사항과 그동안 제기돼왔던 민원 등을 종합해 조만간 관 대책회의를 열 것”이라며 “전문가 자문을 거쳐 수암골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차장 문제는 현재 마을 초입에 설치해놓았으므로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정된 곳에 주차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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