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간의 갈등을 다룬 ‘애정의 조건’, 방송국이라는 직장에서 아옹다옹하는 전문가들의 에피소드들을 모은 ‘브로드캐스트 뉴스’, 한물 간 배우인 아빠와 막 아역배우로 성장하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 ‘너를 위하여’, 강박증에 걸린 괴짜 작가와 주변 사람들 및 개의 이야기를 다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여러분은 이 영화 속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겠지만 정작 줄거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막히고 만다. 간신히 내놓을 수 있는 건 캐릭터들이 놓인 상황이다. 하지만 그건 줄거리가 아니다.
‘스팽글리쉬’에서도 줄거리를 소개하는 건 쉽지 않다. 설정은 말해줄 수 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멕시칸 불법 체류자인 여성이 약간 괴팍스러운 중산층 가족의 가정부로 취직한다. 가정부에게도 딸이 하나 있고 그 가족에게도 딸이 하나 있어서 둘이 두 가족의 중간 다리 구실을 해준다. 여기에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연결돼 느슨한 드라마와 코미디를 형성하는데, 약간의 충돌도 있고 살짝 위태로운 상황도 생기지만 결국 모두가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얻고 만족스러운 결말에 도달한다는 것 이외엔 말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그 이상을 말해줄 수 있을 만큼 내용이 분명치도 않다.
위에 언급한 브룩스의 영화들이 그렇듯, ‘스팽글리쉬’도 독특한 캐릭터들과 그들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갈등은 문화 충돌과 언어라는, 보다 커다란 포장을 쓰고 있지만 거기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건 개인이다. 문화와 언어는 그들이 연관된 하나의 상황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라면 한 가족 내에서도 사방으로 날뛰는 이 괴팍한 사람들의 성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코미디 장르 규칙 속에서 한계에 도달한 미국인들? 상관없다. 쉽게 정리되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이들의 성격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동은 여전히 꽤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격을 그대로 시트콤에 옮겨도 꽤 괜찮은 시리즈가 나올지도 모른다.
애덤 샌들러가 출연했다고 해서 샌들러 영화의 과격한 유머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반대로 샌들러는 이 영화에서 비교적 얌전한 캐릭터다. 진짜 화끈한 코미디는 그의 장모인 클로리스 리치먼과 아내 티아 레오니가 담당하고 있다. ‘섹스와 루시아’의 헤로인 파즈 베가가 훨씬 노출이 적은 역으로 등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