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에서 잠든 한 취객. 급작스러운 죽음 뒤에는 보험금액을 놓고 유족과 보험사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보험의 특성상 일반사망보다 재해사망의 보험금을 2~3배 높게 책정하고 있다. 이같이 보험금액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피보험자가 돌연사한 경우, 보험회사와 보험금 청구권자 사이에서는 사망의 성격을 둘러싼 분쟁이 잦다. 물론 교통사고로 인한 재해사망이나 암 등으로 인한 일반사망의 경우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특별한 질환이 없는 사람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재해사망인지 일반사망인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통상 보험약관에서는 재해란 “외래의 급격하고도 우발적인 사고로서 약관상 재해분류표에 명시하고 있는 사고를 의미하지만,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이 있는 자로서 경미한 외부 요인에 의해 발병하거나 또는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었을 때는 그 경미한 외부 요인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재해분류표에는 ‘기타 불의의 사고’라는 포괄적인 규정도 마련하고 있다. 이때 사고 발생에 피보험자의 과실이나 귀책사유가 있었는지 여부는 문제 삼지 않으며, 오직 사고 원인이 피보험자 내부인지 외부인지가 문제 될 뿐이다.
보험금 청구권자는 피보험자의 사망이 외래의 급격하고 우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했음을 주장·입증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높은 농도의 알코올 흡수와 고온의 밀폐된 공간에 장시간 노출된 것을 우발적인 외부 요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편 보험회사는 피보험자가 급성심장사를 일으킬 수 있는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그 입증에 성공한다면 피보험자의 사망 원인은 외부적 요인보다 피보험자의 질병이라는 내부적 요인 탓으로 판단되어, 결국 일반사망 보험금만 지불하면 면책될 수 있다.
현재 판례는 피보험자가 술에 취해 자다가 구토로 인한 구토물이 기도를 막음으로써 사망한 경우나 피보험자가 승용차의 시동과 히터를 켜놓았다가 산소 결핍으로 질식해 사망하는 등 사망 사고에 피보험자의 과실이 상당 부분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외부적 행위에 의해 초래된 재해 사고로 인정하고 있다.
또 한편으론 사망에 피보험자의 과실이 전혀 없으며, 특별한 질환이 없는 피보험자가 안마시술소에서 성관계를 맺은 뒤 휴식하다 급사했을 경우, 부검감정서에 ‘청장년급사증후군’의 가능성을 언급한 사안에서는 청장년급사증후군은 청장년이 갑자기 사망해 사후검사를 시행해도 사인을 입증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하는 점을 중시, 이를 내인성(內因性) 급사로 판단해 성관계를 피보험자의 체질적 요인에 작용해 더욱 악화시킨 경미한 외부 요인에 불과하다고 보아 일반사망으로 판단했다.
결국 판례에 따르면 사망 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 ‘기타 불의의 사고’로 볼 수 있는 사건도 성관계나 격렬한 운동 등으로 일시적 신체 변화를 불러오더라도 곧바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경우에는 우발적인 외래 사고로 보지 않는다. 이는 사인 불명의 경우 보험회사가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보험금 청구권자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일반인이 사망할 수 있음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재해사망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위 사건의 경우 재해사망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도한 음주나 고온의 밀폐된 공간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신체 건강한 사람의 사망을 유발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부정맥이나 발작성 심계항진은 심장병 증세를 보이지 않던 일반인들에게도 과도한 음주 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 의견이며, 특히 사우나 도중 알코올 섭취는 저혈압·부정맥·급사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있는 점에 비춰보아 충분히 재해사망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길은 그런 재해를 미리 막는 일일 것이다.
박 정 일 ㅣ 변호사·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