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델이 2004년 가을, 겨울에 유행할 옷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의식 중에 패션, 유행, 트렌드를 의식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문을 열어 이옷 저옷을 꺼내 입고 온갖 폼 다 잡으며 혼자 패션쇼를 한다.
“음~ 꽃무늬가 유행이라던데… 어디 있더라… 뭐, 비타민 컬러(오렌지와 옐로, 애플 그린 등의 밝고 환하고 건강한 느낌의 색)가 올 유행 색이라고… ” 하며 중얼거리다가 불쑥 튀어나온 배를 내려다보고 화도 한번 내본다. 또 휴대전화 광고에서 멋지게 춤추는 이효리의 몸매가 떠올라 애꿎은 밥숟가락만 들었다 놓았다 한다.
역사적으로 패션이란 ‘유행·풍조·양식’을 일컫는 말로, 라틴어 ‘factio’에서 유래되었고 ‘창조하다(to mak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패션의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 다르지만 ‘어떤 특정한 감각이나 스타일의 옷, 장신구 등이 집단적으로 일정한 기간에 받아들여진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패션이 옷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으로 가장 쉽게 와닿기에 대부분 옷으로 패션 현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유행은 현란한 조명 아래서 모델들이 온갖 맵시를 뽐내며 소개하는 봄, 가을 국내외 패션쇼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문화적 첨단의 상징인 패션의 역사를 보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이 전해 내려온다.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극찬받는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할 때 화장실을 빼먹은 실수는 우아하고 넓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귀족부인들이 정원으로 가서 볼일을 보게 만들었다. 또한 생리적인 이유로 치마 폭을 점점 넓게 유행시켰다는 아이러니와 마냥 조여드는 코르셋 때문에 여성의 몸은 거위에 비유돼 그려졌고, 이를 답답하게 여긴 마리 앙투아네트가 속옷 차림으로 정원을 돌아다니자 슈미즈 패션이 유행되는 예측 불허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스와 미케네에서도 입었던 코르셋은 16~18세기에 후프 스커트가 유행하면서 함께 유행했다. 허리를 꽉 졸라매고 허리 아래에 고래뼈 등을 심으로 넣어 퍼지도록 만들었다.
멋과 예절을 알았던 우리 선조의 미적 감각을 본받아 우리는 어느덧 알게 모르게 패션의 리더로서, 추종자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폼생폼사’ 자기 개성시대에 트렌드에 대해, 그리고 말 많고 탈 많은 ‘패션’에 대해 이제부터 하나하나 보따리를 풀어볼까 한다. 끊임없는 변화, 겉치레, 과시, 유혹,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시대의 반영이자 생활을 나타내주는 패션이 역사적으로, 감각적으로 새로운 자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호기심과 충격을 이 글을 통해, 또 거울 앞에 서서 함께 고민해보시기 바란다.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