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저를 허풍선이로 알더군요. 나노와 바이오를 융합해 뭘 할 건지를 얘기하면 모두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냐고 의아해했어요. 물론 이제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만큼 나노와 바이오 분야의 연구자들이 서로의 분야에 대해 모른 채 일해왔던 거죠.”
2003년 7월 출범한 나노·바이오 측정제어기술개발사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문대원 박사(52)의 말이다. 나노·바이오 측정제어기술개발사업단은 첨단 신기술을 융합해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원천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과학기술부가 시작한 신기술융합사업의 대표격이다. 해마다 45억원씩 10년간 투자되는 규모 있는 사업단의 사령탑을 맡은 문박사는 과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스타다.
“2004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되자 연구원 정문에 정말 엄청난 크기의 제 캐리커처가 걸리더군요. 어찌나 쑥스럽던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더 열심히 했죠.”
미소를 잃지 않는 말끔한 얼굴, 뛰어난 말솜씨에 적절한 유머감각까지 갖춘 문박사.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물론 뛰어난 연구 성과 덕분이다.
“지난 20년 동안 표면과학에 몰두했습니다. 표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두꺼운지 등을 알아내는 거지요. 말은 쉽지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인 나노 스케일로 내려가면 아주 까다로운 연구 주제입니다.”
원장보다 많은 급여 ‘특급 대우’
표면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산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이다.
“반도체는 아주 얇은 박막에 회로를 새기는 겁니다. 박막의 두께가 일정해야 반도체를 제대로 만들 수 있어요. 반도체를 만들 때는 박막의 원자층 개수를 셀 정도로 까다롭게 하는데, 이는 반도체의 ‘수율’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수율이란 1000개를 만들었을 때 이 가운데 몇 개나 사용할 수 있느냐는 개념이다. 같은 액수의 돈을 투자해도 수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흔히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은 수율 싸움으로 결정된다.
“저는 반도체의 박막 두께를 일정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표면분석용 인증표준물질(CRM)을 개발했습니다. 물리·화학적 특성을 엄밀하게 검증한 표준시료인데, 박막 두께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잣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표준물질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반도체 생산라인마다 다른 두께의 박막이 입혀지기 때문에 반도체 수율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잘못된 잣대로 생산라인을 하루만 돌려도 수백억원에 이르는 제품이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표준물질은 극도로 정밀해야 한다. 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개국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영국 정도가 반도체 표준물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엔 우리 역시 선진국에서 수입했지만 세계 1위가 된 만큼 표준물질도 가장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성능이 향상된 만큼 표준물질은 더 정밀해야 합니다. 국제학회에 참석하면 해외 각국에서 제 말에 귀 기울이며 한 가지라도 더 배워가려고 합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교류하고 있지요.”
현재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국내 반도체 회사들은 모두 표준과학연구원에서 만든 표준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의 일등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우리 사회에 공헌한 가치가 얼마나 큰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물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다.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기는 꺼리지만 연구원이면서 원장보다도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 연구소는 잘하는 사람이 연구개발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게 확실히 밀어주고 있습니다. 과학자가 공헌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지요. 과학자가 비전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괜찮은 인생을 산 과학자의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초박막 표면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문박사는 요즘 새로운 도전에 심취해 있다. 나노·바이오 사업단 일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노와 바이오의 융합 연구를 아주 좋은 시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노와 바이오 모두 연구 수준이 높아서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에너지부(DOE)와 국립보건원(NIH)에 의해 올해 시작했으니까 우리가 1년쯤 앞선 거죠.”
미국보다도 1년 앞서 연구 시작
극미(極微)의 세계를 다루는 나노와 생명체를 연구하는 바이오를 융합해 그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지금까지 바이오 분야에서는 생명체를 거시적으로 관찰하거나 분자 수준인 DNA와 단백질 차원에서 확장시켜 보고 있는데, 둘 다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예요. 저는 생명 현상의 기반이 되는 세포를 생체분자 수준에서 직접 3차원적으로 분석하고, 제어하고, 가공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려 합니다. 바이오 연구에서 꼭 필요한 ‘꿈의 장비’의 등장이겠죠.”
그의 말처럼 생체에서 실제 일하는 세포와 생체분자를 분자 수준으로 이해하고 제어하고 가공할 수 있다면 파급 효과는 상당하리라 전망된다. 특히 수조원대 시장이 형성돼 있는 질병연구와 신약개발에서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에게서 배우는 벤치마킹을 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는 세계 최고인 과학자의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더 생깁니다. 사실 반도체도 꼭 지금처럼 시작했거든요. 지금 추세라면 나노·바이오의 융합장비를 만들고 실제 적용하는 시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확보한 뒤 다른 나라들과 어떤 게임을 할지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1975 서울대학교 화학학사
1977 한국과학원 화학석사
1977-1980 한국표준연구원
1984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원 화학박사
1984-85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원
1985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 방문연구원
1986 한국물리학회 정회원
2003 나노·바이오 측정제어기술개발사업단 단장
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질량표준부 나노표면그룹 그룹장
2003년 7월 출범한 나노·바이오 측정제어기술개발사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문대원 박사(52)의 말이다. 나노·바이오 측정제어기술개발사업단은 첨단 신기술을 융합해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원천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과학기술부가 시작한 신기술융합사업의 대표격이다. 해마다 45억원씩 10년간 투자되는 규모 있는 사업단의 사령탑을 맡은 문박사는 과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스타다.
“2004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되자 연구원 정문에 정말 엄청난 크기의 제 캐리커처가 걸리더군요. 어찌나 쑥스럽던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더 열심히 했죠.”
미소를 잃지 않는 말끔한 얼굴, 뛰어난 말솜씨에 적절한 유머감각까지 갖춘 문박사.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물론 뛰어난 연구 성과 덕분이다.
“지난 20년 동안 표면과학에 몰두했습니다. 표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두꺼운지 등을 알아내는 거지요. 말은 쉽지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인 나노 스케일로 내려가면 아주 까다로운 연구 주제입니다.”
원장보다 많은 급여 ‘특급 대우’
표면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산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이다.
“반도체는 아주 얇은 박막에 회로를 새기는 겁니다. 박막의 두께가 일정해야 반도체를 제대로 만들 수 있어요. 반도체를 만들 때는 박막의 원자층 개수를 셀 정도로 까다롭게 하는데, 이는 반도체의 ‘수율’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수율이란 1000개를 만들었을 때 이 가운데 몇 개나 사용할 수 있느냐는 개념이다. 같은 액수의 돈을 투자해도 수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흔히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은 수율 싸움으로 결정된다.
“저는 반도체의 박막 두께를 일정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표면분석용 인증표준물질(CRM)을 개발했습니다. 물리·화학적 특성을 엄밀하게 검증한 표준시료인데, 박막 두께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잣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표준물질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반도체 생산라인마다 다른 두께의 박막이 입혀지기 때문에 반도체 수율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잘못된 잣대로 생산라인을 하루만 돌려도 수백억원에 이르는 제품이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표준물질은 극도로 정밀해야 한다. 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개국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영국 정도가 반도체 표준물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엔 우리 역시 선진국에서 수입했지만 세계 1위가 된 만큼 표준물질도 가장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성능이 향상된 만큼 표준물질은 더 정밀해야 합니다. 국제학회에 참석하면 해외 각국에서 제 말에 귀 기울이며 한 가지라도 더 배워가려고 합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교류하고 있지요.”
현재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국내 반도체 회사들은 모두 표준과학연구원에서 만든 표준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의 일등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우리 사회에 공헌한 가치가 얼마나 큰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물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다.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기는 꺼리지만 연구원이면서 원장보다도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 연구소는 잘하는 사람이 연구개발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게 확실히 밀어주고 있습니다. 과학자가 공헌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지요. 과학자가 비전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괜찮은 인생을 산 과학자의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초박막 표면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문박사는 요즘 새로운 도전에 심취해 있다. 나노·바이오 사업단 일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노와 바이오의 융합 연구를 아주 좋은 시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노와 바이오 모두 연구 수준이 높아서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에너지부(DOE)와 국립보건원(NIH)에 의해 올해 시작했으니까 우리가 1년쯤 앞선 거죠.”
미국보다도 1년 앞서 연구 시작
극미(極微)의 세계를 다루는 나노와 생명체를 연구하는 바이오를 융합해 그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지금까지 바이오 분야에서는 생명체를 거시적으로 관찰하거나 분자 수준인 DNA와 단백질 차원에서 확장시켜 보고 있는데, 둘 다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예요. 저는 생명 현상의 기반이 되는 세포를 생체분자 수준에서 직접 3차원적으로 분석하고, 제어하고, 가공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려 합니다. 바이오 연구에서 꼭 필요한 ‘꿈의 장비’의 등장이겠죠.”
그의 말처럼 생체에서 실제 일하는 세포와 생체분자를 분자 수준으로 이해하고 제어하고 가공할 수 있다면 파급 효과는 상당하리라 전망된다. 특히 수조원대 시장이 형성돼 있는 질병연구와 신약개발에서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에게서 배우는 벤치마킹을 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는 세계 최고인 과학자의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더 생깁니다. 사실 반도체도 꼭 지금처럼 시작했거든요. 지금 추세라면 나노·바이오의 융합장비를 만들고 실제 적용하는 시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확보한 뒤 다른 나라들과 어떤 게임을 할지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1975 서울대학교 화학학사
1977 한국과학원 화학석사
1977-1980 한국표준연구원
1984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원 화학박사
1984-85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원
1985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 방문연구원
1986 한국물리학회 정회원
2003 나노·바이오 측정제어기술개발사업단 단장
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질량표준부 나노표면그룹 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