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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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계는 지금 ‘女風당당’

4개 주 지방선거 여성 3명 주 총리로 선출 … 후광 없이 ‘자수성가’ 정치 거목으로 성장 예약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04-01-15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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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인도 4개 주에서 치러진 지방선거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인도 정치의 변혁을 암시했다. 우선 4개 주 모두 중앙정부에서는 야당인 국민회의당(INC)이 정권을 잡고 있던 지역이었으나, 이중 3개 주에서 인도인민당(BJP)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4개 주 중 3군데에서 여성이 주 총리로 선출되었다는 점이다. 인도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주 총리가 결정된다. 그렇다고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여성을 주 총리 후보로 내세운 정당의 승리가 75%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확실히 인도 정계에도 ‘여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수도인 뉴델리에서 국민회의당을 이끌며, 아성을 굳게 지켜 재임에 성공한 쉴라 딕시트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지켜 국민회의당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집에서는 손자손녀의 재롱을 보며 기뻐하는 평범한 할머니지만, 딕시트 시장의 탁월한 행정력과 정치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번에 뉴델리에서 다른 주와는 달리 국민회의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딕시트 시장의 행정 쇄신과 치적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중교통 수단의 연료를 의무적으로 천연가스로 바꿈으로써 대기오염을 줄이고, 지하철 개통으로 서민들의 발을 편안하게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업적이다.

    깨끗한 정치 기대감 크게 작용

    라자스탄 주의 바순다라 라제 총리와 마디야 프라데쉬 주의 우마 바르티 총리는 기존의 남성 주 총리들을 제치고 새로이 당선됐다. 바순다라 라제는 중부 인도의 유서 깊은 신디아 왕가 출신으로, 작고한 어머니 비제이 라제의 뒤를 이어 2대째 인도인민당의 실력자로 등장했다. 우마 바르티는 보다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는데, 그의 신분은 힌두교의 독신 수도승인 ‘사냐시니’. 1990년대 초반부터 힌두교 원리주의 진영의 ‘람 탄생지 재건운동’을 이끌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성직자가 정치가로 활동한다는 게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인도의 독특한 정치문화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선거 결과는 여성들의 보다 적극적인 정치참여에 대한 열망을 보여줌으로써 지난해 국회의원 여성할당제를 부결한 의회의 투표 결과와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인도 의회는 중앙과 지방의회 의석의 33%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안건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의안을 부결해 여성계를 실망시킨 바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성 주 총리를 선택함으로써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표시한 셈이다. 이같이 여성 주 총리가 대거 등장한 이면에는 기존의 ‘부패한’ 남성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즉 여성 정치인들이 상대적으로 보다 깨끗한 정치를 할 거라는 기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전에 다른 주에서 불거진 정치인들의 뇌물수수, 횡령 등 스캔들이 유권자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번 선거는 여성 유권자들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도는 여성 유권자 대부분이 남편의 의사에 따라 투표를 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투표 성향에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 분석결과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주부들의 경우 여성 주 총리 후보를 내세운 정당을 지지한 경우가 평균보다 23~24%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인도 여성들도 남편 뜻에 맞는 후보자를 지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의사로서 자신들의 대표자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주 총리 탄생은 인도에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이번에 선거를 치러 당선된 3개 주 이외에도 이미 2개 주에서 여성이 주 총리를 맡고 있었다. 비하르 주의 라브리 데비 총리와 타밀나두 주의 자야랄리타 총리가 그 주인공. 라브리 데비는 원래 비하르 주 총리였던 남편이 검찰에 기소되어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그 뒤를 이어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 랄루 야다브가 감옥에서 출소하면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남편이 출소한 뒤에도 계속 총리직을 지키며 부부 모두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자야랄리타는 영화배우 출신의 독신여성으로 이미 오래 전 정계에 투신해 ‘타밀인들의 어머니’를 자처하며 지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현재는 연정이 깨지면서 정권이 바뀌어 실각하고 말았지만,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우타르 프라데쉬 주에서도 마야와티라는 여성이 주 총리로 재임하고 있었다. 여성의 파워는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중앙 정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데, 차기 총리 후보라 할 수 있는 현재 야당(국민회의당) 총재도 여성이 맡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정치에서 여성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 비교해 매우 높은 편이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여당과 야당 모두 여성이 총재를 맡고 있으며, 스리랑카도 현재 대통령이 여성이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과거 오랜 기간 여성 총리가 재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여성 지도자들은 대부분 ‘후광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정치인이었던 아버지 또는 남편의 후광에 힘입어 정치활동을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어떤 면에서는 남아시아의 여성 지도자들이 그들 자신의 정치력을 과소평가받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내 표 내 맘대로’ 여성 유권자도 변모

    그러나 이번에 새로이 인도의 주 총리가 된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지적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롭다. 그들은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지도자 반열에 오른 ‘자수성가형’ 정치인들이다. 이는 인도, 보다 넓게는 남아시아 여성들의 정치 참여에 새로운 국면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지금까지 여성 정치인들이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에 의해서만 보좌관들의 충성과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면, 최근 인도의 지방선거가 배출해낸 여성 정치인들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이 없거나, 이를 이용하지 않고 지도자의 위치에 올랐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을 갖춘 여성 지도자들이 탄생한 셈이다.

    특히 깨끗한 여성 정치인들을 요구하는 여성 유권자들의 힘이 이번 선거에서 여성 주 총리들을 대거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향후 인도의 총선 또는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감각을 지닌 여성 정치인들과 의식 있는 여성 유권자들의 결합은 또 다른 여성 정치인들의 돌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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