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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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이룬 청년의 꿈 ‘그림 에세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1-16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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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에 이룬 청년의 꿈 ‘그림 에세이’
    “나는 전생에 여자였던 것 같아.”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고백이다. 그러나 동성제약 윤길영 이사(56)는 스스럼없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때로는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도 곧잘 눈물을 쏟는다는 그는 그림 에세이집 ‘나는 전생에 계집이었나 보다’(해누리 펴냄)를 통해 남다른 감수성과 ‘여성성’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윤이사가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취업한 후부터. 평생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직장에 들어가야 했던 그에게 사회생활은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했다. 복잡한 세상을 떠나 시 쓰고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어질 때면 그는 ‘언젠가는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리라’는 다짐으로 버텼다. 이 책은 퇴근 후 집 한쪽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혼자 밤새우며 그림을 그린 그의 젊은 날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꿈을 잊지 못하는 아마추어의 치기 어린 작품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남대 미대 박철교 교수는 그의 그림에 대해 “묵색의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해내는 화풍으로 질박하면서도 토속적인 우리 가락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화면에는 언제나 향수 어린 우리들의 애정이 농축돼 있다”고 평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네 번의 개인전과 50여회의 그룹전을 연 중견 화가다.

    어느새 한 기업의 이사 자리에 오를 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자신의 이름을 단 그림 에세이집도 냈지만, 윤이사의 자유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안에는 또 다른 자아, 전생의 ‘계집’이기도 하고 끝없이 자유를 바라는 ‘보헤미안’이기도 한 자아가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마음껏 자유로워지는 것’을 꿈꾼다. 퇴직 후에는 머리도 길러보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시 쓰고 그림 그리고 싶다는 윤이사는 새로운 삶을 위해 서울 근교에 혼자만의 작업실도 마련해두었다.



    “청년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가족을 돌보느라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진정 청년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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