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 중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아픈 사람은 ‘빌딩 신드롬’을 의심해 봐야 한다. 빌딩 신드롬은 밀폐된 빌딩 안에 오염물질이 쌓여 생기는 신종 신드롬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회적 유행어가 돼버린 신드롬이 본연의 뜻인 병적 징후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양한 신드롬이 등장해 바쁜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드롬들은 특정 증세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는 있지만 질병이라고 부르기에는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다.
X 신드롬
# 바쁜 생활이 건강 해친다
햄버거에 콜라 한 잔. 바쁜 샐러리맨이 한 끼를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메뉴다. 꼭 바쁘지 않더라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햄버거와 피자, 콜라 등의 맛 때문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점을 너무 자주 이용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조용한 살인자’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X 신드롬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16일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한나연구소의 빅터 재밋 박사팀은 영국에서만 500만명의 사람들이 X 신드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발표로 충격을 주었다. X 신드롬은 비만한 사람에게 당뇨병과 고혈압, 고지혈증이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 신드롬에 걸리면 쉽게 피로를 느끼고, 알츠하이머·암·심장병 등 각종 심각한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햄버거와 콜라 같은 패스트푸드는 알츠하이머, 암, 심장병 등 심각한 질환을 불러오는 X 신드롬의 원인이다.
한편 지난해 12월10일 미국 ABC방송은 상당수의 현대 여성들이 ‘바쁜 여성 신드롬’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 브렌트 보스트 박사는 “여성은 직장일과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등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결과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심장병 위험이 높아지고 성욕이 줄며 우울증과 식사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신종 신드롬에 걸린다”고 밝혔다. 미국보다 더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 이 신드롬이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행기 이코노미클래스의 좁은 좌석. 장거리 여행객들이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으로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다(왼쪽). 컴퓨터 이용자들은 근막통 신드롬, 손목터널 신드롬 등 다양한 신드롬에 시달린다.
해외출장 등을 위해 비행기를 탈 때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이코노미클래스(일반석)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2000년 10월 멀쩡하던 영국 여성이 장시간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 여행하던 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장거리 여행객을 위협하는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의 원인은 다리에 혈액이 응고된 덩어리인 혈전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좁은 좌석에 오래 앉아 있으면 하반신에 피가 굳어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상태에서 걸으면 혈액의 흐름이 활발해지면서 혈전이 혈관을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혈전이 폐동맥처럼 중요한 혈관을 막으면 생명을 잃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영국 여성 사망사건 이후로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의 심각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호주 시드니공항에서만 400여명,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25명이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으로 사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피해자들은 항공사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의 해결책을 찾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VDT 신드롬
# 컴퓨터 사용하다 생명 잃을 수도
거대한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이 증세는 전형적인 ‘빌딩 신드롬’이다.
빌딩 신드롬이 발생하는 이유는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빌딩에 오염물질이 쌓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지어진 빌딩일수록 에너지 절약을 위해 화학물질을 방출하는 단열재를 많이 사용하고 창문의 수가 적은 밀폐형인 경우가 많다. 빌딩 신드롬을 막기 위해서는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하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제거해야 하는데 창문이 열리지 않는 빌딩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대 사회가 불러일으킨 신드롬은 이밖에도 많다. 직장인들은 업무로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어깨와 뒷목 등이 뻐근하고 쑤신다. 또 손이 저리고 마비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컴퓨터병을 통칭해 흔히 ‘VDT 신드롬’이라 부른다.
컴퓨터 사용자 대부분이 한두 번은 겪었을 어깨와 목 근육의 통증은 ‘근막통 신드롬’ 때문이다. 키보드를 치는 동작은 지속적으로 어깨근육을 긴장하게 만들어 근육을 손상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뻐근한 정도지만 나중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다. 이 신드롬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중간 중간에 어깨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을 해주어야 한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래 사용하면 손이 저리고 마비되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힘줄과 신경이 지나가는 손목의 터널이 압박을 받기 때문인데 이 현상이 심해지면 이른바 ‘손목터널 신드롬’에 걸린다. 드문 경우지만 손목터널 신드롬이 심해지면 손가락이 영구적으로 마비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컴퓨터 관련 신드롬의 증상이 최근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과 같은 심각한 혈전이 생겨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1월18일 영국 BBC방송은 뉴질랜드 의학연구소의 리처드 비슬리 박사가 ‘E혈전’의 첫번째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비슬리 박사는 하루 12시간씩 컴퓨터를 사용한 남성의 사례를 유럽 호흡기 저널에 발표했다.
비슬리 박사가 진단한 이 환자는 처음에는 장딴지가 부어오르며 약간의 통증을 느낀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숨쉬기가 어려워졌으며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왔다. 비슬리 박사는 “장시간 다리를 움직이지 않아 혈전이 생겼다”고 발병 원인을 밝혔다.
이 같은 E혈전증은 가끔 국내에서 일어나는 ‘PC방에 살다시피 하며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다 갑자기 사망한’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발과 다리를 움직여주고 간간이 휴식을 취해주어야 한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신드롬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신드롬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아무리 바쁜 현대인이라도 신드롬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