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검찰의 팽팽한 대립은 일단 노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난 듯하다.
검찰의 집단반발은 당초 논리와 명분이 약했던 게 사실. 이는 9일 토론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평검사들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고위 간부 인사안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밀실인사’이기 때문에 검찰 인사위원회(이하 검찰 인사위) 등 투명한 제도를 만든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도 검찰 인사위는 자문기구에 불과한 데다 검찰 인사위 멤버들이 인사 대상이기 때문에 자문을 거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또 인사(제청)권을 법무장관에서 검찰총장으로 이관해달라는 평검사들의 요구도 국가의 민주적 운영 원리를 모르는 얘기라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기관은 법률전문가 집단인 검찰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게 문민통제의 본질”이라면서 “세계적으로도 막강한 수사권을 갖는 검찰이 인사권까지 갖고 있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조교수는 또 “젊은 검사들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검찰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토론이 없어 그들의 충정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총장 퇴임하며 “강장관은 거짓말 장관” 직격탄
물론 검찰의 반발은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산발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각영 검찰총장도 퇴임하면서 “강금실 장관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강장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강장관 인사안에 대한 반발 명분 자체가 약한 데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아 ‘서열파괴’ 인사방침을 분명히 한 노대통령의 검찰 인사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대통령은 9일 토론회에서 직접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일부 검찰 수뇌부를 ‘정치검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치검사’는 누구일까. 강장관이 3월6일 김각영 총장에게 고검장 승진 대상자로 통보한 간부들의 면면을 보면 노대통령의 인식을 알 수 있다. 강장관은 이날 정홍원 부산지검장(사시 14회)과 김종빈 대검 중앙수사부장(사시 15회), 임래현 전주지검장과 윤종남 법무부 보호국장(이상 사시 16회) 등을 고검장 승진 대상자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는 호남 출신도 포함돼 있지만 대개 김대중 정부에서 별로 ‘잘 나가지 못한’ 인물들. 결국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에서 잘나간 사람들을 ‘정치검사’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셈.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인사태풍’을 몰고 온 인사파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 및 검찰 수뇌부의 이런 노골적인 집단반발은 평검사들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발화 시점은 바로 검찰 사상 최초로 평검사회의가 열렸던 2월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북 4000억원 송금사건 수사 유보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서울지검 24개 부서의 평검사 90여명은 이날 사상 초유의 평검사회의를 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인사 공정성이 확보돼야 검찰이 개혁될 수 있다”는 내용의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한다. 검찰(대검)은 이때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혀 “개혁안은 형식상의 모양내기일 뿐 새 정부의 개혁 요구에 검찰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검찰의 이 같은 화해 제스처는 2월27일 노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으로 강금실 변호사를 임명하면서 막을 내린다. 김각영 당시 총장에 비해 사시기수로 11회나 아래인 강장관은 현재 검찰 서열상 부장검사급. 이에 대해 검찰과 법무부는 당황스러움과 배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의 개혁안을 거의 다 수용했는데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장관 혼자만 검찰개혁을 외치다 왕따를 당하는 사태가 온다”는 등 검찰 내부의 반발이 쏟아져 나왔다.
강장관의 인사개혁과 관련한 취임 일성은 수뇌부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강장관은 “법무부의 문민화를 위해 현재 법무부 내 검사장급의 자리와 부장검사급이 맡고 있는 과장 자리를 점차 일반직 전문관료에게 맡기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는 검사들의 승진 코스인 검사장 자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의미. 검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과 강장관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대결 기류는 3월3일 법무차관에 사시 17회인 정상명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이 내정되면서 극에 달한다. 법무차관은 검찰총장, 대검차장에 이어 법무부와 검찰을 통합해 서열 3위 자리. 명노승 전 차관(사시 13회)과 무려 4회나 차이가 났다. 검사들은 “사시 17회인 정검사를 법무차관에 임명한 것은 윗기수 선배 31명에게 모두 검찰 조직을 떠나라고 한 것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인사와 관련해서 “파격이 아니라 파괴”라는 의견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라온 것도 바로 이때다.
검사들의 집단반발이 ‘항명’ 수준으로 나아간 것은 3월6일 강장관이 공석이 될 고검장에 14회에서 16회 간부들의 임명안을 김총장에게 통보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이날 사퇴한 고검장들보다 2∼4회 가량 낮은 기수. 연공서열에 익숙한 검찰로서는 파격을 넘어 집안이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고검장뿐만 아니라 요직인 서울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등에도 사시 16회와 17회의 발탁설도 유력하게 제기됐다.
인사안이 검찰 내부에 알려지면서 대검과 서울지검 간부들은 이날 부서별로 긴급회의를 여는 등 집단반발했고, 대검 간부들은 아예 ‘파격’ 인선의 문제점을 담은 ‘총장님께 드리는 글’이란 건의문을 김총장에게 제출했다. 건의문의 내용은 “검찰간부 인사에 검찰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 심지어 서울지검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들은 회의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김각영 총장은 사퇴하라” “검찰의 위상이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더욱이 김각영 총장은 이날 저녁 강장관과 인사안에 대한 협의를 하고 나오면서 “재고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해 검사들의 집단반발 움직임에 또 한 번 기름을 부었다. 총장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대검 간부들은 다음날인 7일 오전 또다시 시위성 회의를 열며 강장관에 압력을 가했다. 강장관은 이런 사태에 잠시 흔들린 듯 보였다. 서울지검 평검사 100여명이 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15층 대회의실에서 전체 검사회의를 긴급 소집, 강장관의 파격인사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각 지방검찰청, 심지어 강장관의 안방인 법무부 평검사들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강장관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했기 때문. 7일 오전까지 ‘인사원칙 고수, 인사안 강행’으로 일관하던 강장관은 이날 오후 들어 “8일이나 9일 총장과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재협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전혀 물러설 뜻이 없었다. 평검사들의 회의가 끝난 7일 오후 “(인사에 대한 집단반발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면 징계하겠다”고 평검사의 집단반발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뜻을 밝히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언론들은 ‘집단반발’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인사권자이자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검사들의 이번 인사파동은 분명한 ‘항명’일 수밖에 없었다. 노대통령은 “나는 검찰에 신세지지 않고 임기 5년간 정권을 당당하게 이어가고 싶다”며 이번 인사가 ‘검찰개혁’을 위한 전제조건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대통령의 입에서 ‘징계’ 발언이 나오자 일부 평검사들은 더욱 반발하고 나섰다. 노대통령을 공격하는 평검사들의 입장 발표는 계속됐고, 7일 밤 서울지검과 20개 지검 평검사들의 모임이 다시 열렸다. 이를 지켜보는 일반인들의 입에서 “검사들이 통치권자인 대통령에게 저래도 되나”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파국으로 치닫던 청와대와 평검사들의 갈등은 8일 오전 노대통령이 ‘평검사와의 공개토론회’를 제의함으로써 가까스로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물론 일부 평검사들은 공개토론 불가론을 펴며 ‘저항’했으나 대통령에게 직접 공격을 퍼부었던 검사들로서는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법무부의 한 평검사는 “검사들이 가장 우려한 점은 옷로비사건 때처럼 평검사들이 검찰 수뇌부에 이용만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검찰개혁에는 동의하지만 올바른 개혁을 이루는 방법상의 문제만을 대통령과 이야기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으나 쓸데없는 말이 많이 나온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검사의 우려는 현실화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인적 청산’이라는 1단계 검찰개혁 카드를 뽑아 든 노대통령. 그러나 벌써부터 검찰 일각에선 강장관이 김각영 당시 총장에게 통보했던 고검장 승진 대상자 중에는 개혁적인 인사라고 하기 어려운 간부가 포함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