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기운이 가득한 초가을 산을 바라보며 상큼한 송이버섯 맛을 값싸게 즐기는 꿈을 꾸는 미식가들이 많을 것이다. 늦여름 폭우와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산에 충분한 수분이 공급된 데다, 이후 일교차가 심한 날씨가 이어진 까닭에 올 가을 송이버섯의 대풍은 일찌감치 예고된 터. 전국 각지 송이버섯 집하장에서는 kg당 20만원대까지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했고, 각 백화점과 송이 산지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찍부터 송이축제를 예고해왔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가을송이 첫 출하 시기인 백로(9월8일)를 지나며 여지없이 물거품이 됐다. 태풍 루사의 집중 피해지역이 송이의 생산지인 백두대간 양측면과 일치한 때문. 게다가 태풍이 지나간 이후 낮기온이 30℃가 넘는 날이 계속되면서 막 고개를 내밀던 송이버섯마저 모두 썩어버렸다. 백로를 지나면서 송이 가격은 kg당 40만원을 훌쩍 넘어서 60만원대를 호가하는 상태. 추석뿐만 아니라 올 가을 내내 송이 수확량은 그 어느 해보다 적을 것이라는 게 송이 산지 임협공판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벌써부터 올해 송이버섯을 두고 ‘금송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일년 가계수입의 대부분을 송이에 의존하고 있는 백두대간 주변 산지 주민들은 태풍에 집을 날리고, 송이버섯마저 썩어 없어지자 망연자실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
지표면 온도 20℃ 넘으면 균사 녹아
낮기온이 제법 선선해진 9월10일과 11일 국내 가을송이의 75%를 공급한다는 경북 봉화군과 울진군을 찾았다. 태풍 피해가 강원도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고 소나무 숲이 밀집된 이곳만큼은 송이 구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송이산(송이가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산)의 대부분이 사유림인데다 송이철 사유림 무단침입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도죄에 해당되는 까닭에 먼저 산주들의 입산 허락부터 얻어야 했다. 부근 지역 15개 송이산 산주들에게 입산을 허락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반응은 냉담 그 자체. 송이도 없지만 혹시 올라오는 송이를 취재진이 무참히 밟아 죽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산주가 보는 앞에서 가을송이 사진만 찍고 내려오겠다는 다짐을 한 끝에 봉화군과 울진군 경계지역의 한 산주에게서 겨우 취재 허락을 받아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 6-3. 봉화읍 중심부에서 울진군 쪽으로 36번 국도와 이름 없는 지방도를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송이산 자락은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교량이 끊어지고 도로가 유실된 처참한 모습이 태풍 루사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짐작케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라곤 소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산들. 주변에 일원산, 장군봉, 통고산 등 1000m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곳은 다행히 산 내부만큼은 수해를 입지 않았다.
지난 태풍으로 낙동강 지천인 회룡천이 범람해 집이 반쯤 잠겨버린 송이산의 산주 이수일씨(61)는 “다 썩긴 했지만 깊은 산에는 그래도 송이가 나오긴 한다”며 길을 재촉했다. 이씨의 집 뒷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산 초입부터 진보라색의 송이꽃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송이버섯이 자라는 곳에는 어김없이 핀다는 송이꽃. 하지만 그곳에는 송이꽃만 있고 정작 송이는 없었다.
“송이가 나야 하는 자리지만 낮기온이 30℃를 넘어가면서 모두 썩었어. 송이는 지표면 온도가 20℃가 넘어가면 땅 위로 고개를 내밀지도 못하고 균사 자체가 녹아버리지.” 올라가는 길을 따라 지천으로 핀 송이꽃이 예전 같으면 이 산에서 얼마나 많은 송이가 자랐을지를 짐작케 했다. 이씨는 “산이 물기를 머금고 있을 때 낮기온이 빠른 시일 내에 떨어져준다면 추석 후에라도 얼마간의 생산량은 기대할 수 있다”며 일말의 기대를 내비쳤다. 아무리 올라가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송이 때문에 낙담한 취재진에게 이씨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송이가 있다”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넘기를 몇 차례. 해발 600m 부근에서 이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런 날씨에도 1등품이 나오네.” 취재진이 분명 그냥 지나친 자리인데도 이씨의 눈에만 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양이 꼭 남성의 상징처럼 생긴, 그야말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최상품 송이였다. 당일 1등급 송이의 kg당 시세가 60만원을 상회한 점을 고려하면 이씨가 발견한 송이는 개당 가격만 6만원인 셈이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이씨는 신이 나서 말을 잇는다.
“그래서 송이 캐는 사람들끼리 ‘뭐도 모르면서 송이 캐러 간다’는 말을 하곤 하지. 인삼이 사람 모양을 닮았다면 최상급 송이는 남성의 그것과 똑같이 생겼어. 송이는 대가 굵고 길면서도 갓이 적게 핀 것이 최상급품이지.”
굵기와 길이, 갓이 핀 정도에 따라 1등급에서 4등급까지 나눠지는 송이버섯은 봉화읍 송이 집하장에서 4등급품도 kg당 30만원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심지어 갓이 필 대로 펴 예전 같으면 버렸을 등외품도 시세가 8만원대에 형성돼 있을 정도다.
최상급 송이를 캔 기쁨을 뒤로하고 더욱 깊은 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도 이씨는 뜻밖의 장소에서 송이 군락을 발견했다. 산길에서는 한참 벗어난 곳, 그것도 솔잎이 떨어져 사람이 손으로 걷어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는 송이 군락을 발견했다. 솔잎을 살며시 걷어내자 6, 7뿌리의 송이가 가지런히 고개를 내밀었다.
“이거 오늘 기자 양반들 덕분에 횡재했어. 혹시나 하고 올라왔는데….” 해방 직후인 일곱 살 때부터 50여년간 송이를 캤다는 이씨는 냄새만으로도 송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송이를 모두 캐내 솔잎 위에 올려놓자 그 인근에 독특한 송이 향이 진동했다.
산꼭대기에 걸린 해를 바라보면서 하산을 재촉하는 이씨에게 입산 때부터 궁금하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읍내 송이 전문식당에서는 송이 가격이 공판장보다 더 싸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이씨는 불쾌한 듯 한번 인상을 찡그리고는 한마디 툭 던졌다. “그거 중국산이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국내 굴지의 송이 산지인 봉화군에서 팔리는 송이가 중국산이라니….
이씨의 설명은 이랬다. “올해 송이가 대풍이 될 것 같아 축제니 바겐세일이니 약속은 해놓았는데 송이 가격이 폭등하니 별 수 있어? 중국산이라도 써야지. 중국산은 국산과 모양이 똑같아 일반인은 구별도 못 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산은 수입할 때 송이에 묻은 흙을 모두 털어내 깨끗하다는 것뿐인데, 식당에서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지.” 최근 일본에서 치명적인 살충제가 뿌려진 중국산 송이가 수입돼 물의를 일으킨 일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해거름에야 산기슭에 다다라 철수를 서두르는 취재진에게 이씨가 이별의 말 대신 덤덤하게 한마디 던졌다. “기자 양반, 송이 하나 못 줘 미안허이. 9월 말(9월27~9월29일)에 열리는 봉화송이축제 선전 많이 해줘. 그때는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겠어? 그때 다시 오면 하나 줌세.”
집이 물에 모두 잠기는 수해를 입었지만 ‘송이꾼’ 이씨의 얼굴에서는 아직 삶에 대한 희망이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언젠가는 송이 대풍의 꿈을 이루어줄 소나무와 송이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가을송이 첫 출하 시기인 백로(9월8일)를 지나며 여지없이 물거품이 됐다. 태풍 루사의 집중 피해지역이 송이의 생산지인 백두대간 양측면과 일치한 때문. 게다가 태풍이 지나간 이후 낮기온이 30℃가 넘는 날이 계속되면서 막 고개를 내밀던 송이버섯마저 모두 썩어버렸다. 백로를 지나면서 송이 가격은 kg당 40만원을 훌쩍 넘어서 60만원대를 호가하는 상태. 추석뿐만 아니라 올 가을 내내 송이 수확량은 그 어느 해보다 적을 것이라는 게 송이 산지 임협공판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벌써부터 올해 송이버섯을 두고 ‘금송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일년 가계수입의 대부분을 송이에 의존하고 있는 백두대간 주변 산지 주민들은 태풍에 집을 날리고, 송이버섯마저 썩어 없어지자 망연자실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
지표면 온도 20℃ 넘으면 균사 녹아
낮기온이 제법 선선해진 9월10일과 11일 국내 가을송이의 75%를 공급한다는 경북 봉화군과 울진군을 찾았다. 태풍 피해가 강원도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고 소나무 숲이 밀집된 이곳만큼은 송이 구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송이산(송이가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산)의 대부분이 사유림인데다 송이철 사유림 무단침입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도죄에 해당되는 까닭에 먼저 산주들의 입산 허락부터 얻어야 했다. 부근 지역 15개 송이산 산주들에게 입산을 허락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반응은 냉담 그 자체. 송이도 없지만 혹시 올라오는 송이를 취재진이 무참히 밟아 죽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산주가 보는 앞에서 가을송이 사진만 찍고 내려오겠다는 다짐을 한 끝에 봉화군과 울진군 경계지역의 한 산주에게서 겨우 취재 허락을 받아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 6-3. 봉화읍 중심부에서 울진군 쪽으로 36번 국도와 이름 없는 지방도를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송이산 자락은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교량이 끊어지고 도로가 유실된 처참한 모습이 태풍 루사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짐작케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라곤 소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산들. 주변에 일원산, 장군봉, 통고산 등 1000m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곳은 다행히 산 내부만큼은 수해를 입지 않았다.
지난 태풍으로 낙동강 지천인 회룡천이 범람해 집이 반쯤 잠겨버린 송이산의 산주 이수일씨(61)는 “다 썩긴 했지만 깊은 산에는 그래도 송이가 나오긴 한다”며 길을 재촉했다. 이씨의 집 뒷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산 초입부터 진보라색의 송이꽃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송이버섯이 자라는 곳에는 어김없이 핀다는 송이꽃. 하지만 그곳에는 송이꽃만 있고 정작 송이는 없었다.
“송이가 나야 하는 자리지만 낮기온이 30℃를 넘어가면서 모두 썩었어. 송이는 지표면 온도가 20℃가 넘어가면 땅 위로 고개를 내밀지도 못하고 균사 자체가 녹아버리지.” 올라가는 길을 따라 지천으로 핀 송이꽃이 예전 같으면 이 산에서 얼마나 많은 송이가 자랐을지를 짐작케 했다. 이씨는 “산이 물기를 머금고 있을 때 낮기온이 빠른 시일 내에 떨어져준다면 추석 후에라도 얼마간의 생산량은 기대할 수 있다”며 일말의 기대를 내비쳤다. 아무리 올라가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송이 때문에 낙담한 취재진에게 이씨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송이가 있다”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넘기를 몇 차례. 해발 600m 부근에서 이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런 날씨에도 1등품이 나오네.” 취재진이 분명 그냥 지나친 자리인데도 이씨의 눈에만 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양이 꼭 남성의 상징처럼 생긴, 그야말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최상품 송이였다. 당일 1등급 송이의 kg당 시세가 60만원을 상회한 점을 고려하면 이씨가 발견한 송이는 개당 가격만 6만원인 셈이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이씨는 신이 나서 말을 잇는다.
“그래서 송이 캐는 사람들끼리 ‘뭐도 모르면서 송이 캐러 간다’는 말을 하곤 하지. 인삼이 사람 모양을 닮았다면 최상급 송이는 남성의 그것과 똑같이 생겼어. 송이는 대가 굵고 길면서도 갓이 적게 핀 것이 최상급품이지.”
굵기와 길이, 갓이 핀 정도에 따라 1등급에서 4등급까지 나눠지는 송이버섯은 봉화읍 송이 집하장에서 4등급품도 kg당 30만원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심지어 갓이 필 대로 펴 예전 같으면 버렸을 등외품도 시세가 8만원대에 형성돼 있을 정도다.
최상급 송이를 캔 기쁨을 뒤로하고 더욱 깊은 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도 이씨는 뜻밖의 장소에서 송이 군락을 발견했다. 산길에서는 한참 벗어난 곳, 그것도 솔잎이 떨어져 사람이 손으로 걷어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는 송이 군락을 발견했다. 솔잎을 살며시 걷어내자 6, 7뿌리의 송이가 가지런히 고개를 내밀었다.
“이거 오늘 기자 양반들 덕분에 횡재했어. 혹시나 하고 올라왔는데….” 해방 직후인 일곱 살 때부터 50여년간 송이를 캤다는 이씨는 냄새만으로도 송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송이를 모두 캐내 솔잎 위에 올려놓자 그 인근에 독특한 송이 향이 진동했다.
산꼭대기에 걸린 해를 바라보면서 하산을 재촉하는 이씨에게 입산 때부터 궁금하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읍내 송이 전문식당에서는 송이 가격이 공판장보다 더 싸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이씨는 불쾌한 듯 한번 인상을 찡그리고는 한마디 툭 던졌다. “그거 중국산이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국내 굴지의 송이 산지인 봉화군에서 팔리는 송이가 중국산이라니….
이씨의 설명은 이랬다. “올해 송이가 대풍이 될 것 같아 축제니 바겐세일이니 약속은 해놓았는데 송이 가격이 폭등하니 별 수 있어? 중국산이라도 써야지. 중국산은 국산과 모양이 똑같아 일반인은 구별도 못 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산은 수입할 때 송이에 묻은 흙을 모두 털어내 깨끗하다는 것뿐인데, 식당에서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지.” 최근 일본에서 치명적인 살충제가 뿌려진 중국산 송이가 수입돼 물의를 일으킨 일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해거름에야 산기슭에 다다라 철수를 서두르는 취재진에게 이씨가 이별의 말 대신 덤덤하게 한마디 던졌다. “기자 양반, 송이 하나 못 줘 미안허이. 9월 말(9월27~9월29일)에 열리는 봉화송이축제 선전 많이 해줘. 그때는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겠어? 그때 다시 오면 하나 줌세.”
집이 물에 모두 잠기는 수해를 입었지만 ‘송이꾼’ 이씨의 얼굴에서는 아직 삶에 대한 희망이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언젠가는 송이 대풍의 꿈을 이루어줄 소나무와 송이산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