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게 주민증을 주어라! 다만 지구의 안전과 평화를 해치지 말라는 조건으로. 그렇지 않으면 미연방 일급비밀기관인 맨 인 블랙(MIB)이 해치운다. 이것은 배리 소넨필드 감독의 ‘맨 인 블랙 2’의 개요다.
1997년 그 1편이 소개된 지 5년 만에 나타난 속편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부류는 어떤 사람들일까? 우선 다음과 같은 부류는 제외되지 않을까. 파시즘적 심미안을 가진 문화자본가, 수구적인 안정 희구세력, 낡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
아무래도 ‘맨 인 블랙 2’는 한·일 월드컵 때 거리로 쏟아져나온 ‘붉은 악마’ 세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영화는 금기를 거부하고 자유의사가 소통되는 광장을 찾았던 이들에게 감각적으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열린 사고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우스꽝스러운 영화 ‘맨 인 블랙 2’는 반(反)엄숙주의면서 고전주의를 조롱한다.
‘맨 인 블랙 1’의 성공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 속편의 국제적인 성공도 특기할 만한 문화·산업적 현상이다.
어느 순간 외계인은 우리에게 먼 존재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에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외계인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인과 외계인의 동거와 동행, 그 공존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 물론 지구인과 외계인의 공존이라는 것은 단지 꿈(영상)속에서 진행되지만 문화적 공간에서는 분명한 정서적 실체를 갖고 있다.
전후 냉전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강력하게 받던 시절, 할리우드 공포영화와 SF영화 속의 외계인은 주로 적 혹은 공포의 대상에 해당하므로 함께 할 수 없는 또 다른 ‘빨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의 영화산업은 외계와 외계인을 다룬 다양한 영화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맨 인 블랙’ 시리즈처럼 외계인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레드 플래닛’처럼 타행성을 무대로 소통되지 않는 지구인과 외계(인)와의 대결양상을 그린 영화도 있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블록버스터 무비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외계인을 적의 개념으로 극대화한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관객들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공존을 도모하는 내용이라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만큼 감독과 작가들의 고민이 커지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맨 인 블랙’ 1, 2편의 성공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이 시리즈는 코믹액션이란 장르를 선택했다. 철저하게 비현실적인 상황인 만큼, 개그에 가까운 코미디에 액션을 가미하는 방식을 통해 지구인과 외계인 간의 낯선 동거의식을 잘 그려냈다.
여기에 로랜드 브렌케프롤의 특수효과는 더욱 정교해져 부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없앴다. 즉 외계 캐릭터와 허구적인 드라마의 논리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속편임에도 전편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완전 무장해제를 통한 화해와 평화란 있을 수 없는 위험천만한 것인가. ‘맨 인 블랙 2’에도 여전히 상징 이미지라 할 수 있는 검은 정장, 레이밴 선글라스, 초강력 무기를 다루는 ‘버디’(동료)가 등장한다. 그들은 제이(윌 스미스)와 케이(토미 리 존스)다. 케이는 1편 후반에 모든 기억을 잃고 은퇴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 속편에서는 지역 우체국장으로 근무하다 다시 제이에게 설득당해 지구의 체제전복을 노리는 외계인 세리나(라라 플린 보일) 일당을 쳐부순다.
이 엉뚱한 코미디 SF영화는 단순 오락영화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시간이 지나도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정치적인 함축성을 띤다는 것이다. 세리나 그룹이 25년 전 복수를 위해 잠입한 다음 MIB 본부를 접수함으로써 영화는 긴장이 감돌게 되고 흥미로운 리듬감을 제공한다. 긴장감이 스며 있는 평화의 분위기. 그것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무렵의 서해교전을 떠올리게 한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여전히 미국 중심적인 가치관 때문이다. 영화는 소멸하지 않는 적과의 대치를 위해 초강력 무기를 고안해서 다양하게 선보인다(왜? 미국은 무기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검은 정장은 질서와 권력, 제도를 강제하고 제복에 대한 잠재적인 향수를 유도하여 세계경찰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감각적으로 전파하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자유 이미지나 ‘아메리칸 드림’은 얼마나 모순적이고 허구적인가. 이민자와 불법 체류자에 대한 지나친 관리체계, 자국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는 자(국가)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 응징 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맨 인 블랙 2’는 이렇듯 중의적으로 읽힌다.
1997년 그 1편이 소개된 지 5년 만에 나타난 속편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부류는 어떤 사람들일까? 우선 다음과 같은 부류는 제외되지 않을까. 파시즘적 심미안을 가진 문화자본가, 수구적인 안정 희구세력, 낡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
아무래도 ‘맨 인 블랙 2’는 한·일 월드컵 때 거리로 쏟아져나온 ‘붉은 악마’ 세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영화는 금기를 거부하고 자유의사가 소통되는 광장을 찾았던 이들에게 감각적으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열린 사고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우스꽝스러운 영화 ‘맨 인 블랙 2’는 반(反)엄숙주의면서 고전주의를 조롱한다.
‘맨 인 블랙 1’의 성공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 속편의 국제적인 성공도 특기할 만한 문화·산업적 현상이다.
어느 순간 외계인은 우리에게 먼 존재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에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외계인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인과 외계인의 동거와 동행, 그 공존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 물론 지구인과 외계인의 공존이라는 것은 단지 꿈(영상)속에서 진행되지만 문화적 공간에서는 분명한 정서적 실체를 갖고 있다.
전후 냉전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강력하게 받던 시절, 할리우드 공포영화와 SF영화 속의 외계인은 주로 적 혹은 공포의 대상에 해당하므로 함께 할 수 없는 또 다른 ‘빨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의 영화산업은 외계와 외계인을 다룬 다양한 영화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맨 인 블랙’ 시리즈처럼 외계인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레드 플래닛’처럼 타행성을 무대로 소통되지 않는 지구인과 외계(인)와의 대결양상을 그린 영화도 있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블록버스터 무비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외계인을 적의 개념으로 극대화한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관객들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공존을 도모하는 내용이라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만큼 감독과 작가들의 고민이 커지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맨 인 블랙’ 1, 2편의 성공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이 시리즈는 코믹액션이란 장르를 선택했다. 철저하게 비현실적인 상황인 만큼, 개그에 가까운 코미디에 액션을 가미하는 방식을 통해 지구인과 외계인 간의 낯선 동거의식을 잘 그려냈다.
여기에 로랜드 브렌케프롤의 특수효과는 더욱 정교해져 부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없앴다. 즉 외계 캐릭터와 허구적인 드라마의 논리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속편임에도 전편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완전 무장해제를 통한 화해와 평화란 있을 수 없는 위험천만한 것인가. ‘맨 인 블랙 2’에도 여전히 상징 이미지라 할 수 있는 검은 정장, 레이밴 선글라스, 초강력 무기를 다루는 ‘버디’(동료)가 등장한다. 그들은 제이(윌 스미스)와 케이(토미 리 존스)다. 케이는 1편 후반에 모든 기억을 잃고 은퇴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 속편에서는 지역 우체국장으로 근무하다 다시 제이에게 설득당해 지구의 체제전복을 노리는 외계인 세리나(라라 플린 보일) 일당을 쳐부순다.
이 엉뚱한 코미디 SF영화는 단순 오락영화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시간이 지나도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정치적인 함축성을 띤다는 것이다. 세리나 그룹이 25년 전 복수를 위해 잠입한 다음 MIB 본부를 접수함으로써 영화는 긴장이 감돌게 되고 흥미로운 리듬감을 제공한다. 긴장감이 스며 있는 평화의 분위기. 그것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무렵의 서해교전을 떠올리게 한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여전히 미국 중심적인 가치관 때문이다. 영화는 소멸하지 않는 적과의 대치를 위해 초강력 무기를 고안해서 다양하게 선보인다(왜? 미국은 무기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검은 정장은 질서와 권력, 제도를 강제하고 제복에 대한 잠재적인 향수를 유도하여 세계경찰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감각적으로 전파하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자유 이미지나 ‘아메리칸 드림’은 얼마나 모순적이고 허구적인가. 이민자와 불법 체류자에 대한 지나친 관리체계, 자국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는 자(국가)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 응징 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맨 인 블랙 2’는 이렇듯 중의적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