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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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밝힌 밤바다 고기잡이 장관

  • 양영훈

    입력2005-05-17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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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 밝힌 밤바다 고기잡이 장관
    섬은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작은 뭍이다. 아니, 몇 개의 뾰족한 봉우리와 짤막한 마루금(稜線)만 간신히 남겨둔 채 반쯤 바다에 잠긴 산이다. 그래서 섬들이 오롱조롱한 대도해를 항해할 때면 바닷길을 가는 게 아니라 어느 첩첩산중의 넓은 산길을 헤집고 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보령 앞바다의 낙도 외연도(外煙島)로 가는 뱃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엷은 해무가 깔린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들만 잠겨 있을 뿐, 섬은 눈에 잡히지 않는다. 원근(遠近)과 농담(濃淡)에 따라 그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실제로는 얼마나 큰지, 사람 살 만한 곳은 어디인지조차 어림칠 수가 없다. 대신에 산길 같은 바닷길에서는 마음이 편안하다. 때마침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따사로이 내려앉은 가을 햇살은 먼길에 곤해진 몸을 꿈길로 이끈다.

    보령항에서 외연도까지의 거리는 53km. 뱃길로 두 시간쯤 걸리는 이 섬은 면적이 2.18km2(약 20만평)에 불과하다. 해안선의 길이도 8.7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섬의 동서에 봉화산(273m)과 망재산(175m)이 각기 우뚝해서 지세는 험준한 편이다. 두 봉우리 사이의 중앙부에는 포구와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남향(南向)으로 만입한 바닷가의 낮은 산자락에 기댄 마을은 언뜻 보기에도 아늑하고 푸근하다.

    외연도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이 멀고 외진 섬에 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게 마련이다. 포구와 마을의 규모가 제법 크고 번잡하기 때문이다. 긴 방파제와 규모 있는 계단식 선착장을 갖춘 포구는 선령(船齡)이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고깃배들로 가득하다. 선착장을 따라 민가와 여관 슈퍼 민박집 식당 등의 건물이 늘어선 모습도 외딴섬답지 않은 풍경이다. 무엇보다도 섬의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낙도 특유의 단절감과 애잔함을 싹 가시게 만든다. 놀이터가 따로 없는 섬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뜨기를 하거나 골목길에서 자전거를 타며 노는데, 하나같이 해맑고 다부진 인상이다.

    외연열도(外煙列島) 유일의 자연부락인 외연도리에는 모두 150여 가구에 530명쯤의 주민이 산다. 그중 40대 이하가 절반 가까이나 되고, 오천초등학교 외연분교의 학생수만도 병설유치원생을 포함해 50명이 넘는다. 이처럼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은 곧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가멸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인지 외연도에는 자동차가 많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는 통틀어 2, 3km도 안 될 성싶은데도 1t 소형트럭이 적잖이 눈에 띈다.



    불 밝힌 밤바다 고기잡이 장관
    반농반어(半農半漁)를 이루는 여느 갯마을들과 달리, 외연도리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순수어촌이다. 140가구의 주민들이 소유한 어선은 모두 90여 척이나 되는 반면, 농토라고는 마을 안쪽의 남새밭말고 찾아보기 어렵다. 애초부터 농토가 비좁은 데다 농사일을 돌볼 여력도 일손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파시(波市)가 형성되었을 만큼 어황(漁況)이 좋다. 외연도 주변의 밤바다를 대낮처럼 밝힌 채 고기를 잡는 풍경은 ‘외연어화’(外煙漁火)라 하여 보령팔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외연도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외경(畏敬)도 유별나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바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마을 뒤편의 울창한 당산(堂山)은 이곳 주민들이 바다를 얼마나 떠받들고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넓이가 약 3000평쯤 되는 이 당산 숲에는 후박나무 동백나무 식나무 돈나무 붉가시나무 등의 상록수 활엽수 고목들이 빼곡해서 대낮에도 새벽녘처럼 어스레하다. 그래서 숲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풍겨 나오는 서기(瑞氣)가 온몸을 전율케 한다. 숲 바닥에는 어린 나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여전히 강건한 숲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남해가 아닌 서해의 작은 섬에 상록수림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뜻밖이지만, 사람의 손길을 거의 타지 않은 원시적인 천연함은 더욱 놀랍고 신비롭다. 나라에서도 이미 1962년에 ‘외연도 상록수림’으로도 불리는 이 당숲의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했다.

    외연도 상록수림의 동북쪽과 서북쪽에는 전혀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하는 바닷가가 있다. 동북쪽 해안의 ‘금명몽돌밭’은 억겁의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씻겨서 동글동글해진 몽돌이 나뒹구는 곳인데, 파도가 들고 날 때마다 돌들이 서로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쏟아내는 해조음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반면 서북쪽에는 독수리바위 병풍바위 등의 기암괴석들로 가파르게 잘리거나 솟구친 암석해안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갯바위들의 기기묘묘한 형용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가슴 시리도록 맑고 푸른 바다와 안개 속에 아득한 섬들이다. 이 독수리바위와 금명몽돌밭을 찾아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포구에서 10여 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외연도와 그 주변의 여러 무인도는 조황(釣況)이 섭섭지 않은 바다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농어 우럭 광어 놀래미 감성돔 등의 입질이 잦은데, 외연도에서는 포구를 둘러싼 방파제와 독수리바위 주변의 갯바위가 포인트라고 한다. 포구 근처의 낚시점에서는 미끼와 간단한 채비를 팔기 때문에 낚싯대만 챙겨 가면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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