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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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시위’가 시위문화 바꾼다

더욱 다양해진 개인-집단 욕구 표출…여론 조성 넘어서 시민운동으로 격상 시도

  • 입력2005-05-16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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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시위’가 시위문화 바꾼다
    “러브호텔 허가 취소운동에 동참을 호소한다.”

    10월9일 인천 계양구청 홈페이지(http://kyeyanggu.inchon.kr) ‘열린마당’ 코너엔 이런 내용의 항의글이 쇄도했다. 무려 9000여건. 당황한 구청측은 서둘러 사이트를 잠정 폐쇄한 뒤 문제의 글들을 삭제하고 IP주소를 추적했지만 글을 올린 네티즌을 찾아내진 못했다.

    “계양구 계산택지지구내 러브호텔 건축허가와 관련한 주민 분노가 온라인 시위 형태로 폭발한 것 같다. 해킹처럼 명백한 범죄행위는 아니므로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계양구청 통신팀 관계자)

    웹 공간을 통해 ‘네티즌 파워’를 결집하는 온라인시위, 이른바 ‘사이버시위’가 시위문화의 양태를 급속히 바꿔가고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을 넷상에서 조성해 시민운동의 차원으로까지 격상하려는 이같은 시도들은 ‘온라인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논의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단계다.

    사실 사이버시위 시대의 도래는 인터넷이 인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의사표현수단이란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95년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블루 리본’ 운동은 사이버시위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집중접속해 인터넷상 ‘연좌시위’

    공공통신망에 저속한 정보를 올릴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 품위조항’을 미 정부가 신설하자, 이에 대항해 네티즌들이 수만 개의 웹사이트에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 리본 그래픽을 올리고 헌법소원까지 제기,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결집력을 과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의 사이버시위는 언제부터 비롯됐을까. “지난 97년 노동자 총파업과 함께 진행된 총파업 통신지원단 활동 중 하나로 PC통신상에서 노동악법 및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을 벌인 것이 사이버시위의 효시라 볼 수 있다.” 진보적 사회운동 정보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10∼30대 초반의 네티즌들이 인터넷 주사용층인 점을 감안할 때 넷상에서 참여 민주주의를 기치로 스크럼을 짜는 일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 전망한다.

    지난 9월21일 ‘매향리 대책위’ 주도 하에 한국 네티즌들이 미 군사당국 사이트에 집중 접속해 서비스 속도를 늦춘 ‘인터넷 연좌시위’는 시간과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 네트워크의 강고한 조직력과 결집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이버시위의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는 8월26일 정보통신부 홈페이지(www.mic.go.kr)를 10여시간 동안 접속불능 상태에 빠뜨렸던 ‘통신질서확립법’ 반대 온라인시위. 정통부가 입법추진 중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일명 통신질서확립법)을 정보내용 검열을 위한 ‘인터넷판 보안법’으로 규정한 네티즌들이 정통부 사이트를 타깃으로 집중적인 항의글 올리기 운동을 전개하는 와중에서 웹서비스 자체가 마비될 정도로 정통부 사이트가 무력화된 것.

    을지훈련 마지막날인 이날 ‘사이버테러 방지 모의훈련’을 끝내고도 이같은 사상 초유의 ‘치욕’을 당한 정통부는 접속불능 상태가 네티즌들이 ‘서비스 거부 공격’(특정 사이트에 장시간 반복적으로 가상 접속을 시도해 다른 사용자의 서비스 이용을 차단하는 행위)을 감행했기 때문이라 보고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근거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수사 결과는 “시스템 자체의 결함“으로 일단락됐다. 시위를 주도한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다.

    사이버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10월14일 발생한 ‘서울 중부경찰서 교사 알몸 수사’와 관련, 전교조는 15일 경찰청(www.npa.go.kr)과 중부서(http://cb.smpa.go.kr) 홈페이지에 올린 250여 건의 항의글을 경찰이 삭제하자 16일 ‘또 삭제해봐!’라는 말머리를 단 항의글들을 다시 올리는 온라인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경찰이 이마저 삭제하자 ‘여론통제’라며 강력 반발한 전교조는 다시 ‘인권유린 규탄’이란 글을 게시글 앞머리에 붙이는 ‘말머리 달기 운동’을 전개하며 경찰측의 공식 사과와 게시물 원상 복구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 전교조는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찰청장과 중부서장을 고발조치하고 실력 행사에 나설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이런 사이버시위의 ‘성과물’은 의외로 적지 않다. 정통부의 경우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부 조항을 법안에서 수정-삭제해 사실상 한발 후퇴했으며 ‘알몸 수사’와 관련된 중부서장은 경찰청장으로부터 서면경고조치를 받았다. 사이버 시위가 오프라인 시위 못지않은 기능을 수행한 셈이다.

    “모든 시위는 의사표현의 한 수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설정이 자유롭고 개인이나 집단 누구든 자기 의사를 언제든지 손쉽게 밝힐 수 있는 인터넷 덕분에 온라인 시위는 이미 새로운 유형의 시위형태로 정착했다.” 전교조 여준성 정보통신부장의 말이다. 그는 “그러나 다수의 공통 견해를 제대로 도출하고 ‘사이버 테러’와 ‘정당한 시위’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선 시위 주최측의 자체 질서유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건전한 시위문화를 위해 사이버시위를 감행하는 이들 스스로 ‘폴리스 라인’(경찰과 시위대가 상호 양해 하에 쳐놓은 저지선)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전교조 정보통신국도 이번 ‘경찰과의 전쟁’에서 실명으로 글을 올리되 욕설과 근거 없는 비방은 하지 않는다는 자체 ‘룰’을 정했다.

    사이버시위의 증가 이유 중 하나는 아직 처벌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통부 관련 시위를 제외하곤 경찰에 수사의뢰가 들어온 사례는 없다.

    “사이버시위에 가장 근접 적용할 수 있는 법규정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이지만 실제 적용된 케이스는 단 한건도 없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는 “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네티즌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의견을 개진하려 온라인시위를 벌이는 데 대해 처벌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사이버시위의 ‘위력’을 이미 톡톡히 ‘체감’한 정통부는 처벌조항을 별도로 마련중이다. 정통부 정보보호기획과 고광섭 과장은 “11월 국회 상정 예정인 정보통신망 관련법안에 특정 사이트나 통신망을 겨냥한 고의적인 서비스 거부 공격, 해킹 조장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포함시킬 방침”이라 밝혔다. 하지만 통상적인 사이버시위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으며 규제할 권한도 없다는 것이 정통부의 기본 입장이다.

    어쨌든 ‘집회신고’가 필요없는 사이버시위는 갈수록 빈번해질 전망이다. 기존의 시위를 완전히 대체하진 못하겠지만 시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오프라인 시위의 ‘보완재’나 병행수단으로 애용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상에서의 각종 집회 및 시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4년간의 시위발생 추이를 보면 최근 2년간(98년 6월∼2000년 5월)의 시위발생 건수는 2만2017건. 1만2142건에 머물렀던 이전 2년간(96년 6월∼98년 5월)에 비해 무려 81%(9875회)나 늘었다(경찰청 자료). 폭력-과격시위는 대폭 줄었지만 개인과 집단의 욕구는 더욱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외국대사관 인접 100m 이내에서 옥외집회 및 시위를 열 수 없도록 한 일명 ‘100m 룰’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어 물리력의 열세를 강한 결집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이버시위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던 시대, 서울 광화문 일대는 각종 시위의 ‘메카’였다. 이제 사이버공간은 ‘제2의 광화문’으로 자리잡았다. 그곳에서 스크럼을 짠 이들의 이름은 ‘네티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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