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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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돌판서 ‘칠성신앙’ 흔적 찾았다

청원서 발견된 2500년 전 돌판…“북두칠성 등 표시된 세계 最古 천문도” 학계 주장

  • 입력2005-05-17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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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신앙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하여 ‘칠원성군’(七元星軍)이라 불리는 북두칠성.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부처님이 아닌 칠원성군을 모신 칠성각(七星閣)을 따로 지어 아예 기도자리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칠성신앙이 불교에 녹아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북두칠성은 인간의 길흉화복뿐 아니라 한국인의 생사를 주관하는 별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에 있는 삼신(三神)할머니로부터 명줄을 받아 어머니 태에 인연을 얻어 태어나고, 죽으면 관 바닥에 북두칠성을 그려 넣은 ‘칠성판’을 지고 북망산천엘 가야만 염라대왕이 받아준다는 게 한국인들의 생사관. 마치 한국인들은 하늘나라 북두칠성에서 내려온 자손들이라도 되는 양,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북두칠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칠성신앙의 뿌리는 어디까지 올라가는 것인가.

    “기원전 별 그림들과 놀랄 만한 유사성”

    10월20일 충남대 국제회관에서 열린 한국천문학회-한국우주과학회 합동 학술발표대회에서 박창범 교수(서울대·지구환경과학부)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에서 출토된 ‘구멍파인 돌판’을 분석한 결과 이 구멍들이 북두칠성과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이아 등 하늘의 별자리를 나타낸다고 발표했다.

    이미 한반도의 고대인들이 밤하늘 북극성 근방에 보이는 북두칠성 등의 별자리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또 이것이 청동기 시대의 권력층 무덤에서 발견된다는 점은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들이 사후 세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옛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돼 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구멍 파인 돌판이 국제적 공인을 받을 경우 세계 최고(最古)의 천문도가 한반도에 출현됐다는 점에서 사뭇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원래 이 돌판은 78년 이융조 교수(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가 대청댐 수몰지역인 충북 청원군 문의면 가호리 아득이 마을의 고인돌 유적을 발굴하다가 찾아낸 것으로, 크고 작은 구멍 65개가 새겨져 있었다.

    당시 이교수는 발굴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고대인들의 천문 관측과 관계된 별자리일 가능성을 잠깐 언급하는 정도로만 그쳤다. 고인돌에 새겨진 구멍들을 다산(多産) 등을 의미하는 성혈(性穴)로 해석하는 것이 당시 학계의 지배적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인돌 구멍들을 천문학적으로 해석한 것은 불과 수 년 전 북한 학자들의 고인돌 연구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이후 이것이 남한 학자들에게도 자극을 주었다.

    아득이 고인돌의 돌판이 별자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선 이는 김일권 박사(서울대 강사·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별자리를 연구한 김박사는 지난 98년 6월 ‘별자리형 바위 구멍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고구려 벽화의 별자리 그림과 고인돌에서의 별자리 돌판에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지배층이 사후 세계인 무덤이라는 양식을 통해 하늘, 즉 천문(天文)을 구현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박창범 교수가 이번 학회에서 아득이 고인돌 돌판이 ‘별자리판’임이 분명하다고 발표했다. 박교수는 “기원전 1500년경의 함남 함주군 지석리 고인돌에서 보이는 구멍(별자리) 그림, 기원전 500년경의 아득이 고인돌의 돌판, 기원후 6세기 초 고구려시대 무덤인 진파리 4호분에 그려진 별 그림,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원전 500년에 실제 있었던 북극 근처의 별(4.5등급보다 밝은 별)들을 재현한 천문도를 비교해본 결과 놀랄 만한 유사성이 보인다”고 말했다(‘그림’ 참조). 이에 의하면 아득이 고인돌은 북두칠성과 작은곰자리(동양 고천문학에선 북극오성), 용자리, 카시오페이아 등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

    박교수와 함께 아득이 고인돌 연구에 참여한 이융조-이용복 교수(서울교대 과학교육과) 팀은 이 돌판이 천문도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다음을 든다. △표면이 매끈매끈한 돌판 위에 새긴 60여 개 구멍들의 분포가 아주 복잡하거나 단순하지 않고 적당히 무질서한 상태여서, 의도적으로 제작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 △이 돌판이 고인돌 발굴 전까지 2500년 동안 무덤 속에 부장품으로 묻혀 있어서 전혀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아 후대의 가필이 없었다는 점 △북극성 주변의 별들을 뒤집어 묘사한 그림은 고구려 고분에서도 나타난다는 점 등이다.

    사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고인돌 중에는 돌판 위에 별자리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북한학자들은 함경남도 용석리 고인돌에 나타나는 별자리 그림의 경우 기원전 2300년경의 작품으로 주장할 정도다.

    문제는 북한의 고인돌 자료가 남한 학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북한학자들이 인위적으로 해석한 느낌을 준다는 점과, 지상에 노출된 고인돌의 경우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가필 및 가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후대인의 손때가 묻지 않은 아득이 고인돌 돌판이 세계 최고의 돌 천문도로서 빛을 발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돌에 새긴 최고의 천문도로는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1241년 제작)가 꼽히는데 아득이 돌판은 이보다 무려 1700여년이나 앞서는 셈이다.

    한국의 고인돌은 대체로 고조선 시기의 작품들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우리 조상들은 왜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북쪽 하늘의 별들에 주목했을까. 무엇보다도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거의 매일 밤 북쪽 하늘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주극성(週極星·1년 내내 보이는 별)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천문도에서 작은곰자리(북두칠성의 손잡이를 반대로 휘어놓은 모양)의 하나인 북극성은 2등성으로 그리 밝게 보이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바다와 사막을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동서남북의 위치를 알려주는 중요한 별로 인식돼 왔다.

    또 북극성보다 조금 아래쪽의 북두칠성은 계절과 시간을 알려주는 별로 이용돼 왔다.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1시간에 15도씩(12시간이면 180도) 큰 원을 그리며 돌기 때문에 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고, 또 계절마다 북두칠성의 위치가 달라 철을 파악할 수 있다. 봄에 해가 지면 북두칠성의 손잡이가 동쪽을 가리키며, 가을에는 서쪽을 가리키는 식이다.

    그런데 동양의 고천문학에서는 북두칠성을 하늘나라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권능이 있는 별로 여겨 왔다. 옛 동양 사람들은 북두칠성을 하느님이 타는 수레로 보았는데, 중국 산둥성 무씨사당에는 북두칠성 수레에 하늘을 다스리는 상제(上帝)가 앉아 있고 그 아래에 신하들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춘 모습을 새긴 돌을 볼 수 있다. 상제는 북두칠성 수레를 타고 황도대에 걸쳐 있는 사방위의 이십팔숙(二十八宿·동양 고천문학에서 설정한 하늘의 모든 별자리)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여하간 하늘 세계를 두루 돌아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한다는 북두칠성은 청동기시대 고조선 사람들의 고인돌 뚜껑 위에서 나타나고, 이를 본받은 고구려 사람들의 무덤 속에서는 다른 어느 별보다 크게 묘사돼 있다. 고구려를 이어받은 고려 사람들의 무덤에서도 중요한 별로 등장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여겨지는 화순 운주사의 칠성석은 북두칠성을 지상에 그대로 재현해 놓음으로써 지금도 ‘북두칠성 후예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서울대 김일권 연구원은 “고대 중국인들이 북극성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다면, 고대 한국인들은 북두칠성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한다. 다만 “왜 고대 한국인들이 북두칠성에 집착했는지에 대한 학문적 대답은 좀더 많은 자료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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