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7월12일 대정부 질의에서 한나라당 조웅규 의원은 “정상회담이 통일에 대한 기대와 함께 국론을 심각히 분열시킨 측면도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통일논쟁으로 갈라진다면 해방 후 좌우대립과 같은 혼란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의원의 말처럼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의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이미 벌어져 있던 남북문제에 대한 현저한 시각차가 정상회담 이후 표면화된 것인지, 또한 일부 수구세력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그같은 분열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정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인 13일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이 “청와대가 언제부터 친북세력이 되었는가”고 발언한 것이 그같은 ‘분열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권의원의 발언은 말 자체의 문제점보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우리 사회 보수세력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는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90%가 넘는 국민이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6·15 남북공동선언문에 대해 지지 입장을 보이자 잔뜩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보수 세력들이 정치권에서의 발화(發火)를 계기로 목소리를 높일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의료대란이나 롯데호텔 파업 사태, 금융파업 사태 등으로 인해 국정의 난맥상이 표출되고 현 정부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대북 성과’ 또한 상당히 희석된 사실도 보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내치는 엉망인데 북한 문제만 잡고 있을 거냐”라거나 “나라 살림은 뒷전이고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자만과 도취에 빠져 있다” 등의 ‘우회적인 비판론’이 가능해진 것.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는 북한 방송이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다. 평양방송은 6월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 쓰레기의 심술궂은 넋두리질’이란 제목으로 비난했고, 7월11일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놈’이란 원색적 용어를 동원해 “거세찬 시대의 흐름도 분간 못하는 무지몽매하고 청맹과니인 주제에 그래도 그 무슨 대권을 노리며 개꿈을 꾸고 있으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라고 비방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이총재가 각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데 대한 반응이기는 했지만, 지나친 내정간섭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적십자회담 공동취재단의 일원인 조선일보 기자의 입북을 거부한 것도 보수 세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이같은 기류 속에서 조선일보가 7월11일 ‘조선일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설을 내놓아 정치권 보수 세력들이 목청을 높이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당장 12일의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조선일보나 한나라당은 노동신문이나 노동당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김기춘 의원) “정부의 홍보로 ‘봉건독재 평양공화국의 수령’ 김정일이 ‘평화와 통일의 지도자’로 변신했다”(조웅규 의원)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홍보부 장관이 된 것 같다”(박승국 의원) “평양에 다녀온 정부 대표들이 앞다퉈 김정일 위원장을 미화하고 비전향 장기수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북한을 찬양해 국민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했다”(현승일 의원) 등등 ‘정치권 입’을 통한 보수 세력들의 공격은 뚜렷한 대오를 형성했다.
그러나 보수 세력들의 일련의 주장이나 움직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문으로 한반도에서 ‘냉전적 대립구도’가 희박해진 바로 그때부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적 현실적 근거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야당 의원들의 공격과 비판론만 해도 남북 화해 및 교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만나야 할 지엽적인 문제이지 본질적인 사안은 아니다. “지난 냉전 체제하에서의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행보는 의심스러운 바가 없지 않았다”(한나라당 하순봉 부총재) 등 해묵은 색깔론도 이제는 그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부정할 경우 그들의 통일관이 결국 ‘북진 통일’이나 ‘흡수 통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한반도 새역사를 함께 만들자’고 남북 화해와 교류라는 총론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각론에 이르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손해’라거나 ‘북한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남한도 바뀌어선 안 된다’ 등의 냉전적 사고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혼란과 혼돈을 내보인다.
바로 이러한 한계로 인해 각 PC통신이나 참여연대 등의 게시판에는 보수세력들의 논리의 이중성을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역대 군사독재정권이 파쇼적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북한의 위협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악용한 것은 이제 바보 천치가 아닌 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배타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교묘히 반공을 이용하였다… 한나라당이 친북 운운하려면 회담 자체를 말렸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회담의 성공을 바란다고 한 것 자체가 친북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필명 이HONG雨 ‘나를 체포하라! 친북이 안 된다면…’)
“권오을 의원이 국회에서 ‘친북세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는… ‘김대중은 빨갱이다’라는 공화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반대파 숙청의 보도(寶刀)로… 이어온 이 나라 파쇼들의 근본 정신을 오늘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그럼 그를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세운 국민들은 무엇인가. 모두 빨갱이?”(필명 조로 2세 ‘친북세력? 아직도 먼 길이 남았는데…’)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의 한계는 ‘보수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침묵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명예총재는 지난 총선 때에도 가는 곳마다 “인민군의 침략을 막아내고 경제를 일으킨 세력은 보수주의자들이지 진보주의자나 급진주의자, 개혁주의자가 아니다”며 “침묵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도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보고만 있지 않고 행동으로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고 화해의 물꼬가 트이는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아닐까.
얼마 전 국민대 철학과 최종욱 교수 등 10명이 함께 펴낸 ‘보수주의자들’이란 책은 김종필 명예총재를 냉전주의자, 조갑제 이인화씨를 복고주의자, 노재봉 전 총리를 마키아벨리스트 등으로 분류했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자유주의적 성향의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땅에서 보수주의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구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정치권의 자칭 보수론자들이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건강한 보수의 이념에 의해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분류되는 것이 유리했던 역사적 편리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북한과도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마당에 정작 남한에서 ‘핏발 선 상살(相殺)의 정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국면을 차기 대권구도에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북한이 남한 정치의 최대 변수로 상륙했다”는 민주당 한 의원의 말처럼 이제 모든 남북 현안들은 사사건건 국내 정치의 핵심 논쟁거리이자, 정국 주도력 선점을 위한 ‘밑반찬’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14일 강연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세력은 ‘소수’가 되고, 정상회담의 의미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세력은 ‘다수’가 되는 양면구도가 예상된다”고 이분법을 전개한 것부터가 ‘보수들’의 위기감을 반영한다.
이런 정치권에 대해 한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저보다도 어린 세대들은 당신들과는 달리 통일된 조국에서 살아갈 세대입니다. 그 세대들에게 당신들의 세뇌된 정신을 물려받지 말게 하길 바랍니다. 당신들의 세뇌된 정신은 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 세뇌된 정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감히 말씀드립니다. 입을 다무십시오!”(필명 sergio ‘나와 당신들이 세뇌받은 의식’)
조의원의 말처럼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의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이미 벌어져 있던 남북문제에 대한 현저한 시각차가 정상회담 이후 표면화된 것인지, 또한 일부 수구세력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그같은 분열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정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인 13일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이 “청와대가 언제부터 친북세력이 되었는가”고 발언한 것이 그같은 ‘분열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권의원의 발언은 말 자체의 문제점보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우리 사회 보수세력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는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90%가 넘는 국민이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6·15 남북공동선언문에 대해 지지 입장을 보이자 잔뜩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보수 세력들이 정치권에서의 발화(發火)를 계기로 목소리를 높일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의료대란이나 롯데호텔 파업 사태, 금융파업 사태 등으로 인해 국정의 난맥상이 표출되고 현 정부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대북 성과’ 또한 상당히 희석된 사실도 보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내치는 엉망인데 북한 문제만 잡고 있을 거냐”라거나 “나라 살림은 뒷전이고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자만과 도취에 빠져 있다” 등의 ‘우회적인 비판론’이 가능해진 것.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는 북한 방송이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다. 평양방송은 6월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 쓰레기의 심술궂은 넋두리질’이란 제목으로 비난했고, 7월11일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놈’이란 원색적 용어를 동원해 “거세찬 시대의 흐름도 분간 못하는 무지몽매하고 청맹과니인 주제에 그래도 그 무슨 대권을 노리며 개꿈을 꾸고 있으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라고 비방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이총재가 각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데 대한 반응이기는 했지만, 지나친 내정간섭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적십자회담 공동취재단의 일원인 조선일보 기자의 입북을 거부한 것도 보수 세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이같은 기류 속에서 조선일보가 7월11일 ‘조선일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설을 내놓아 정치권 보수 세력들이 목청을 높이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당장 12일의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조선일보나 한나라당은 노동신문이나 노동당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김기춘 의원) “정부의 홍보로 ‘봉건독재 평양공화국의 수령’ 김정일이 ‘평화와 통일의 지도자’로 변신했다”(조웅규 의원)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홍보부 장관이 된 것 같다”(박승국 의원) “평양에 다녀온 정부 대표들이 앞다퉈 김정일 위원장을 미화하고 비전향 장기수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북한을 찬양해 국민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했다”(현승일 의원) 등등 ‘정치권 입’을 통한 보수 세력들의 공격은 뚜렷한 대오를 형성했다.
그러나 보수 세력들의 일련의 주장이나 움직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문으로 한반도에서 ‘냉전적 대립구도’가 희박해진 바로 그때부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적 현실적 근거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야당 의원들의 공격과 비판론만 해도 남북 화해 및 교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만나야 할 지엽적인 문제이지 본질적인 사안은 아니다. “지난 냉전 체제하에서의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행보는 의심스러운 바가 없지 않았다”(한나라당 하순봉 부총재) 등 해묵은 색깔론도 이제는 그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부정할 경우 그들의 통일관이 결국 ‘북진 통일’이나 ‘흡수 통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한반도 새역사를 함께 만들자’고 남북 화해와 교류라는 총론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각론에 이르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손해’라거나 ‘북한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남한도 바뀌어선 안 된다’ 등의 냉전적 사고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혼란과 혼돈을 내보인다.
바로 이러한 한계로 인해 각 PC통신이나 참여연대 등의 게시판에는 보수세력들의 논리의 이중성을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역대 군사독재정권이 파쇼적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북한의 위협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악용한 것은 이제 바보 천치가 아닌 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배타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교묘히 반공을 이용하였다… 한나라당이 친북 운운하려면 회담 자체를 말렸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회담의 성공을 바란다고 한 것 자체가 친북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필명 이HONG雨 ‘나를 체포하라! 친북이 안 된다면…’)
“권오을 의원이 국회에서 ‘친북세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는… ‘김대중은 빨갱이다’라는 공화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반대파 숙청의 보도(寶刀)로… 이어온 이 나라 파쇼들의 근본 정신을 오늘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그럼 그를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세운 국민들은 무엇인가. 모두 빨갱이?”(필명 조로 2세 ‘친북세력? 아직도 먼 길이 남았는데…’)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의 한계는 ‘보수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침묵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명예총재는 지난 총선 때에도 가는 곳마다 “인민군의 침략을 막아내고 경제를 일으킨 세력은 보수주의자들이지 진보주의자나 급진주의자, 개혁주의자가 아니다”며 “침묵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도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보고만 있지 않고 행동으로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고 화해의 물꼬가 트이는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아닐까.
얼마 전 국민대 철학과 최종욱 교수 등 10명이 함께 펴낸 ‘보수주의자들’이란 책은 김종필 명예총재를 냉전주의자, 조갑제 이인화씨를 복고주의자, 노재봉 전 총리를 마키아벨리스트 등으로 분류했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자유주의적 성향의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땅에서 보수주의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구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정치권의 자칭 보수론자들이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건강한 보수의 이념에 의해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분류되는 것이 유리했던 역사적 편리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북한과도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마당에 정작 남한에서 ‘핏발 선 상살(相殺)의 정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국면을 차기 대권구도에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북한이 남한 정치의 최대 변수로 상륙했다”는 민주당 한 의원의 말처럼 이제 모든 남북 현안들은 사사건건 국내 정치의 핵심 논쟁거리이자, 정국 주도력 선점을 위한 ‘밑반찬’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14일 강연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세력은 ‘소수’가 되고, 정상회담의 의미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세력은 ‘다수’가 되는 양면구도가 예상된다”고 이분법을 전개한 것부터가 ‘보수들’의 위기감을 반영한다.
이런 정치권에 대해 한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저보다도 어린 세대들은 당신들과는 달리 통일된 조국에서 살아갈 세대입니다. 그 세대들에게 당신들의 세뇌된 정신을 물려받지 말게 하길 바랍니다. 당신들의 세뇌된 정신은 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 세뇌된 정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감히 말씀드립니다. 입을 다무십시오!”(필명 sergio ‘나와 당신들이 세뇌받은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