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조영철 기자]
태 의원을 만난 이유는 그가 탈북민으로서 역사적 기록을 여럿 남겨서만은 아니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세에 밝은 태 의원의 혜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3월 24일 그를 만나 여당 최고위원으로서 가지는 포부와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 외교 정책 등에 관해 들었다.
“여당 지도부 입성으로 탈북민에 희망”
탈북민 출신 첫 여당 최고위원이 된 소감은 어떤가.“한국 사회가 다양성의 가치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회가 경제 같은 분야에선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비교적 쉽게 깨지는 반면, 정치 분야는 그렇지 못한 편이다. 한국 정치문화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에게 더 포용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그간 한국에 온 대다수 탈북민은 자유 경쟁 문화에 익숙지 않아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최고위원에 당선된 후 ‘대한민국 사회에선 힘들어도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거나 ‘앞으로 여당 지도부에서 탈북민 복지와 정착 지원에 더 세심히 신경 써달라’는 탈북민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북한 반응도 궁금한데.
“3월 19일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가 ‘도주한 쓰레기가 여당의 요직에 들어갔다’고 운운하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한국의 집권 여당 최고위원이 됐다는 사실을 북한 엘리트층에 알리고 변화를 유도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이 반응을 보이니 고맙기까지 했다. 내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큰 틀에서 북한을 변화시킬 도전을 했는데,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면 맥 빠질 일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쟁 후 북·중·러 군사협력 확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이전과는 질적·양적으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핵탄두를 완성한 북한은 이제 투발 수단을 다양화, 정교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무기를 활용해 유사시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를 막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 이에 대해 태 의원은 “최근 북한이 실시한 공중 핵폭발, 수중 핵폭발 실험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면서 “북한은 미사일 기술이나 관련 기자재를 중국, 러시아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의심되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북·중·러 군사협력이 크게 강화됐다고 본다”고 말했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 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지도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사진 속 모자이크 처리된 의문의 인물에 대해 태영호 의원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홀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북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 러시아를 드나들며 미사일 기술 협력을 담당하는 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뉴시스]
“그간 북한의 도발은 대부분 한반도 서쪽에서 이뤄졌다. 공중에선 수도권 서쪽으로 무인기를 들여보내 한국군의 대응 태세를 확인했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도 모두 서해에서 감행한 도발이다. 이제 북한의 도발 주무대는 동해로 옮겨갈 것이다. 유사시 항공모함 같은 미국의 주요 전략자산은 수심이 깊은 동해로 들어온다. 북한은 이를 의식해 수중과 공중에서 핵폭발을 일으키는 실험을 한 것이다. 동해에서 해일을 일으켜 미 항모 전단을 막고, EMP(전자기펄스)로 항공 전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외부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일까.
“최근 1~2년 사이 북한의 미사일 기술력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전됐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기술 협력이 과거 냉전 시대처럼 복원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으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힘을 키워 동쪽에서도 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겪는 기술적 난제는 러시아가 수십 년 전 해결한 문제다. 작은 팁만 줘도 북한엔 큰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 안보의 상수(常數)로 계속 심각해져 가는 북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태 의원은 “이제 한국의 핵무장밖에 답이 없다”고 했다. 그간 점증하는 북핵 위협에 맞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 자체 핵무장 같은 주장이 여러 번 나왔다.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문제는 미국을 위시한 우방과 국제사회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할지다. 이에 대해 태 의원은 “우리가 새로운 논거를 개발해 미국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한시적 핵무장론’을 제기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체 핵무장을 하되,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스스로 핵무기를 내려놓겠다고 밝히는 것이다. 우리 노력에 따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일본 자위대는 반격 능력을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이 허용하지 않았을 사안이다.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미국 혼자 이를 견제하기엔 힘이 부친다. 미국은 일본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북핵 위협도 고조되는 상황이다. 미국으로선 한국의 핵 대응 능력을 키워주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본다. 일종의 ‘안보 역할 분담론’에 미국이 언젠가 호응할 것이다.”
북한이 3월 27일 ‘전술핵탄두’를 처음 공개한 이튿날 서면 질의에 태 의원은 “실제 핵탄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북핵이 완성된 현 시점에 평화를 위해선 자체 핵무장밖에 답이 없다”고 핵무장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한일 과거사에 매몰돼 정부 발목 잡는 게 ‘매국’”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태 의원은 “급박해지는 동북아 안보 상황에서 한일관계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야권에선 ‘제3자 대위 변제안’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는데.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권 국력을 지닌 국가다. 이처럼 강력한 나라의 외교를 두고 ‘굴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야말로 과거사에 얽매인 태도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와 기업은 배상하지 않겠다고 한다. 우리 측에서 배상을 강제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우리 국민인 피해자들의 인권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제3자 대위 변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렇다 할 대안도 없이 피해자 구제만 막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위배되는 조치 아닌가.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받기 어렵기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피해를 배상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당시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 악화를 방치해선 안 됐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대위 변제안’을 제안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를 무시했다. 일본에 대해선 죽창가만 부르며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고 사실상 직무유기를 했다.”
한일관계 개선 시도를 두고 미국 측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일관계 개선은 미국과 별개로 한국에 더 절실한 과제다. 최근 동북아 정세를 보라. 중국 공산당은 당헌에 ‘대만을 무력으로라도 통일하겠다’고 명시했다. 만약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만을 무력 병합하려는 시도를 하면 김정은이 가만히 있으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의 관심과 대응이 대만에 쏠렸을 때 북한이 도발해오면 한국은 일본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급박한 동북아 안보 상황은 보지 않고, 과거에만 매몰돼 현실적 대응을 취하지 못하도록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야말로 매국적 행위라고 본다. 북·중·러 모두 핵무기를 갖고 있고, 이제 군사동맹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미국 핵전력에 기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도 대단히 취약하다. 한일관계, 더 나아가 한미일 관계를 빨리 복원해야 한다.”
“정치 입문 반대하던 아내, 이제 큰 도움 줘”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태영호 의원(오른쪽)과 아내 오혜선 씨. [채널A 유튜브 캡처]
“처음 정치에 입문하다고 말하니 아내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나와 상의하지 않고 결정했느냐’고 했다. 최고위원 출마도 처음에는 반대하더니 이내 “최고위원 선거는 인지도가 중요한데,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묻더라. 그간 아내는 절대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나를 돕기 위해서인지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함께 출연하고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는 등 애를 많이 썼다. 최근 들어 부부 동반 강연도 많이 나간다. 홍보할 때 태영호가 강연하다고 하면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아서 난 한물간 거 같다(웃음). 반면 아내와 함께 강연한다고 하면 호기심을 표하며 많이들 온다.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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