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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게이, 커밍아웃” 외친 용감한 우유 씨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밀크’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게이, 커밍아웃” 외친 용감한 우유 씨

“게이, 커밍아웃” 외친 용감한 우유 씨

‘밀크’는 게이 인권운동의 전설인 하비 밀크의 생애를 다뤘다.

Thanks Harvey! 미국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거리에는 무지개색 국기(게이들의 심벌임. 여러 가지 색깔을 모두 포용한다는 뜻)들이 붙어 있는 가운데 ‘고마워, 하비’라는 표어가 유독 눈에 띈다. 하비 밀크. 이 미스터 우유 씨(성이 우유란 뜻의 밀크임)는 1970년대부터 게이 인권운동에 앞장섰으며 마침내 1978년 시의원에 당선된 미국 최초의 게이 활동가(gay activist)였다. 동료인 댄 화이트의 총탄에 맞아 마흔여덟 살의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게이 액티비즘 역사에서 그는 간디나 마틴 루터 킹에 버금가는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밀크’는 하비 밀크의 결정적인 마지막 8년의 삶을 조망한다. 이미 첫 장면부터 하비 밀크는 녹음기에 유언을 녹음하고 있다. 자신이 암살당했을 때만 공개하라는 단서를 달고. 영화는 가장 치열한 시대를 관통했던 게이 운동 역사에 대한 회고이자,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도 사회적 편견과 싸운 영웅에 대한 존경의 헌사다.

역시 게이인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영화를 거친 입자의 영상인 핸드헬드(handheld·들고 찍기)의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녹여냈다. 1970년대의 시대적 공기가 각종 뉴스 화면에 녹아들고, 영화 속 하비와 실제 하비의 족적이 겹쳐진다. 이미 그의 삶을 다룬 ‘하비 밀크의 시대(The Times of Harvey Milk)’라는 로버트 엡스타인의 1984년 다큐멘터리가 있지만, 구스 반 산트의 ‘밀크’는 사회적인 함의와 함께 하비 밀크의 ‘정신’적 유산인, 어떤 외압과 차별 속에서 사라질 수 없는 희망의 문제를 견인한다.

그가 살던 70년대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게이는 학교 선생을 할 수 없었으며, 때론 시체로 변해 돌아왔다. 캘리포니아의 아타스카데로 주립병원은 나치수용소와 비교될 정도로 게이와 레즈비언에게 전기충격 같은 가혹한 ‘치료요법’을 시술, ‘퀴어 수용소’로 불렸다. 그는 그런 곳에서, 그런 시대에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라고 외친다. 더는 어둠의 방에서 혼자 있지 말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에게 먼저 말하라고.

그래서 영화는 게이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고자 빈번히 녹음기, 확성기, 전화기 같은 ‘소통 수단’을 통해 세상에 나서려는 하비와 그의 친구들을 조명한다. 특히 하비의 동료 클리프가 게이들에게 선거를 독려하며 전화를 거는 장면은 일품이다. 수많은 전화기로 이어진 게이들의 전화받는 모습을 콜라주 형식으로 담아 다큐 양식에 파격을 가한다. 즉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장면에서만큼은 지극히 영화적인 양식을 사용, 세상에 맞서 싸우려면 네트워킹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서는 주류 사회에 진입한 한 게이 운동가의 현실적 투쟁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밀크’는 200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숀 펜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연기가 무엇인지, 연기의 신은 누구인지를 확실한 존재감으로 입증한다. 실제 촬영장을 방문한 밀크의 친구들이 숀 펜이 아닌 밀크를 다시 만났다는 감격에 북받칠 정도로 숀 펜은 밀크 자체였다고 한다. 오페라를 사랑했고, 심약한 게이 애인의 자살 때문에 괴로워하던 하비는 자신의 유서 같은 마지막 녹음에서 그 유명한 유언을 남긴다. “Let the bullet that rips my brain open every closet door in America(내 머리를 뚫고 들어간 총알이 미국의 모든 벽장문을 열게 되길).” 그의 죽음에 무려 4만5000명의 게이가 촛불시위를 벌였다. 하비의 죽음은 그가 가혹한 살인의 희생자라기보다 순교자로 격상되는 일종의 희생이었으니까.

2년을 기다려 대한민국에 간신히 안착하는 영화 ‘밀크’. 그에게서 용기와 희망의 푯대를 뼛속까지 느끼길 바란다. ‘밀크’는 모든 투쟁과 비전을 놓지 않아야 할 삶의 이유를 여러분의 귓가에 속삭이다 마침내 웅변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0.03.02 725호 (p82~82)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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