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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형부를 사랑한 처제의 위험한 욕망

박찬옥 감독의 ‘파주’

형부를 사랑한 처제의 위험한 욕망

형부를 사랑한 처제의 위험한 욕망

형부(이선균 분·왼쪽)를 사랑한 처제(서우 분)의 이야기는 오래된 비극 ‘오이디푸스’를 닮았다.

안개는 왜 무책임한 남자들에게 도피처가 돼줄까? 김승옥의 ‘무진기행’ 속 주인공은 서울에서의 비겁을 피해 고향 무진으로 내려간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의 주인공도 일자리 때문에 안개의 마을로 간다. 박찬옥 감독의 영화 ‘파주’ 역시 앞차의 번호판만 겨우 보이는 두꺼운 안개, 그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개’는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을 엄폐하듯 그렇게 도시를 감싸 안는다. 3년 전 갑작스럽게 파주를 떠난 은모는 짙은 안개를 뚫고 돌아온다. 파주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가족은 형부뿐이다. 언니가 죽고 없으니 어쩌면 그는 영영 남일지도 모른다. ‘파주’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그렸다고 예고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형부와 처제의 사랑 이야기가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 사랑은 야동이나 3류 소설에 등장하는 포르노그래피적 풍경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오히려 오래된 비극 ‘오이디푸스’와 닮았다. 이야기는 은모가 형부 중식을 처음 본 8년 전, 그리고 언니가 죽은 3년 전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현재 중식은 파주 철거민들을 도우며 중대한 죄를 대속하듯 살아가고 있다. 형부를 바라보는 은모의 시선은 어딘가 불안하다.

사랑한다지만, 그들의 사랑은 에로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의 이야기라면, 영화 ‘파주’는 아버지를 사랑한 딸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중식과 은모는 형부와 처제 사이다. 하지만 영화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둘의 관계는 부녀지간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은모와 은수 자매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유산으로 남겨준 집에서 살아간다.

은모에게 언니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자 보호자다. 은모에게 언니는 바로 ‘엄마’다. 예컨대 은모가 진학 문제로 상담할 때 은수는 부모를 대신해 학교를 찾아간다. 영화 속에서 은모가 중식을 향해 품는 욕망은 “형부, 사랑해요”와 같은 직설법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은 “난 형부를 증오해요” 같은 반대의 말로 묘사된다.



은모는 언니를 슬프게 한 형부를 증오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라는 증오는 갈망과 다를 바 없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를 원하는 것과 같기에 욕망을 증오와 교체한다. 은모는 형부에 대한 증오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자 형부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간다. 은모를 파주에서 떠나게 한 감정은 바로 불안이다.

불안은 사실 욕망하는 대상이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점차 다가올 때의 감정이다. 지독하게 원하던 대상이 손에 잡히려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만족이 아닌 불안을 느낀다. 사실 그 욕망이 채워져선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불안과 욕망의 길항작용은 몇몇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변주된다. 첫 번째 이미지는 ‘가스불’이다. 중식은 선배의 아내이자 첫사랑인 여자를 탐한다. 그녀와 성마른 섹스를 시작하는 순간, 젖병 삶는 물이 끓고 선배의 아이가 화상을 입는다. 가스불의 이미지는 언니의 죽음에도 개입한다. 형부를 미워하겠다며 사진 속 얼굴을 도려내던 은모는 그 가위로 도시가스 선을 자르게 된다. 이 실수 때문에 언니는 가스폭발 사고로 죽는다.

가스불은 일상에 숨어 있는 위험을 암시한다. 박 감독은 우리가 숨기고 살아가는 욕망이 바로 폭발의 뇌관이라고 말해준다. 욕망은 철저히 대가를 치른다. 욕망이 발화하는 순간, 아이는 지워지지 않는 화상을 입고 언니는 죽는다. 이는 ‘감옥’이라는 두 번째 상징과 연관된다. 은모는 형부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자, 그를 보험사기범으로 고발한다.

그렇게 중식을 철장에 가둠으로써 비로소 은모는 안심한다. 자신의 마음에 쳐지지 않는 울타리를 감옥이라는 물리적 거리감으로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형부를 감옥에 가두고, 은모는 파주를 떠난다. 하지만 은모와 형부의 사랑이 끝난 것일까? 아니다. 아마도 은모는 파주로 돌아와 형부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또 형부를 가두고 도망갈 것이다. 박 감독의 파주, 그곳의 안개는 바로 발효된 에로스가 들끓는 욕망인 셈이다.



주간동아 2009.11.10 710호 (p88~88)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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