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정몽준 ‘한숨’ … 정세균·손학규 ‘환호’

재·보선 여야 2:3 성적 차기 주자에 후폭풍 … 한나라당은 조기 전당대회 불씨 살아나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09-11-04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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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준 ‘한숨’ … 정세균·손학규 ‘환호’

    10·28 재보선 경남 양산에서 승리한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 부부가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기뻐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가 치러질 때마다 정치권은 선거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여·야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정국 구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처럼 보도한다.

    대개의 경우는 ‘과장’이다. 재보선 시즌에만 정치권이 들썩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유권자는 물론, 정당 사람들도 당시의 열기를 잊어버린다. 언론 보도 역시 평상으로 돌아간다. 결국 정국은 조금도 변하는 게 없다.

    하지만 간혹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재보선이 치러지기도 한다. 집권세력이 고비를 맞았거나 민심에 민감한 쟁점이 부각돼 있을 때, 또는 유력 정치인이 출마 또는 개입돼 있을 때 실시되는 재보선이 그렇다.

    이번 10·28 재보선도 어떤 면에서는 단순히 궐위된 국회의원 의석 5개를 채우기 위한 선거였다. 선거 결과도 민주당이 3곳, 한나라당이 2곳에서 승리해 수치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전체 의석수가 한나라당 169석, 민주당 86석으로 미미한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는 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안정기에 접어든 시점에 세종시 원안 수정이나 4대강 정비 같은 국책사업이 논란이 돼 있었다. 여기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잠룡(潛龍)들이 선거에 대거 간여했다.

    5곳 선거구마다 거물들의 대리전



    전반적인 선거 결과만을 놓고 보면 3대 2로 민주당의 신승(辛勝)이었다. 특히 수도권 2곳(경기 수원 장안, 안산 상록을)과 충청권(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에서 거둔 승리는 값진 것이다. 수도권의 승리로 모처럼 탄력을 받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충청권의 압승으로 세종시 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한나라당 처지에서도 나름대로 자위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완승을 자신하던 경남 양산에서 고전하긴 했지만 ‘여당의 재보선 참패’ 징크스를 깨는 데는 성공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은 0대 5 완패를 당했다. 여권 전체가 총력을 기울이던 경주 선거에서조차 정종복 후보가 무소속 정수성 후보에게 졌다. 그때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렇게 가면 과거 열린우리당이 여당 때 기록한 각종 재보선 0대 45 전패 기록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나마 2석을 건졌으니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여·야의 이 같은 손익계산과 함께 이번 선거 결과는 대권의 꿈을 꾸는 잠룡들을 비롯한 정치 거물들의 입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지도부가 탄력을 받은 데 비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정치인별로 파악해보면 수지타산 방식에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만큼 이번 재보선이 치러진 5곳은 선거구마다 제각각의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곳곳에서 선거가 ‘거물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갔을 정도다.

    먼저 수도권과 충청권의 민심을 얻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입지가 넓어졌다. 이번 선거에서 패할 경우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귀론이 제기되면서 정 대표의 지도력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단 그런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로 민주당의 역학구도에 미묘한 변수가 생겼다. 손학규 전 대표의 부상이다. 손 전 대표는 당의 수원 장안 전략공천 제의를 마다한 대신, 이찬열 후보 지원에 올인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동영 의원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로 당이 위기에 처한 4월 재보선 때 ‘춘천 칩거’를 깨고 나와 인천 부평을의 승리를 이끈 데 이어 두 번째다. 정 대표로서는 정 의원 복귀론이 조기에 불거지는 상황은 막았지만, 잠재적 경쟁자인 손 전 대표의 힘을 새삼 확인한 것이 개인적으로 마냥 달가울 수만은 없을 듯하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박근혜

    야권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기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이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엿봤다는 사실이다. ‘친노’ 대표주자로 경남 양산에 출마한 민주당 송인배 후보는 한나라당의 거물 박희태 전 대표를 맞아 ‘양산대첩’을 치르면서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쳐 여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해 친노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세력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여권의 역학구도 역시 이번 선거 결과로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박 전 대표가 진땀을 흘린 끝에 6선 고지에 오르면서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0순위가 된 것은 여권 전체 힘의 균형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 대신 수도권 선거 지원에 매달렸던 정몽준 대표는 지도력과 대중성 측면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그나마 2석을 건졌기 때문에 당장 책임론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당내에 잠복해 있던 내년 2월 조기 전당대회론의 불씨가 살아났다. 특히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지방선거에 대비해 정 대표의 조기 퇴진을 요구할 여지가 있다.

    한나라당 조기 전당대회론의 중심에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있다. 최근 이 위원장의 옛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의 내년 7월 재선거가 확정되면서 정가에는 이 위원장이 2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 지도부에 복귀한 뒤 재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파다하다. 이 경우 정 대표는 그야말로 과도기 대표에 그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국민권익위원장) 임기를 채울 수도 있고 못 채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 복귀와 재선거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만일 한나라당이 참패했더라면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은 ‘선거의 여왕’에게 화살이 돌아갔겠지만, 일단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아가 박 전 대표를 대신해 친박 세력이 양산에 출동, ‘친노’의 바람을 간신히 잠재우는 데 기여하는 성과를 거뒀다. 차기 대권주자들이 이번 재보선을 통해 얻은 성과를 어떻게 활용할지, 혹은 타격을 어떤 방식으로 만회할지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향후 정치구도는 상당한 변동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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