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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이 띄우는 ‘여행자 편지’

네팔에서 접한 미완성 순애보

네팔에서 접한 미완성 순애보

네팔에서 접한 미완성 순애보
그는 매우 세련된 사람이었다. 가볍고 심플한 가죽점퍼는 12월의 카트만두 날씨에 적합한 선택이었고, 목에 두른 스카프는 오버라는 느낌 없이 그의 패션을 완성했다. 누가 봐도 호감이 느껴지는 준수한 얼굴과 한국에서도 주목받을 만한 스타일 감각. 그의 무테안경은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그는 가난한 카트만두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성이었다.

그를 만난 곳은 카트만두 타멜 거리, 네팔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이다. 그와 나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넓지도 않은 식당인 데다 손님이라고는 그와 나 단둘이었다. 여느 경우라면 아주 쉽게 인사를 나눴겠지만 그의 차림새가 일반적인 여행자 복장이 아니었기에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주문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기장을 꺼내 오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을 때 그도 메모장에 뭔가를 적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사람일까? 자꾸만 그가 궁금해졌다. 그것은 호기심을 넘어 직업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마주쳤고 드디어 길고도 어색했던 침묵이 깨졌다.

그가 카트만두를 찾은 연유는 이러했다. 그는 사업차 네팔을 들락거리고 있었으며 그의 나이 마흔에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네팔 여인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손님이었고 그녀는 종업원이었다. 그 상황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나이가 열일곱이란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는 열아홉 살이 됐지만 여전히 어렸고, 특히 그의 나이가 불혹을 넘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하기 힘든 일이었다. 네팔이 조혼 풍습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와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가끔 뉴스를 장식하는 ‘원조교제’였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매우 진지했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네팔에 왔다는 이야기는 숙연하기까지 했다.

그의 사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의 사랑을 믿지 못했고, 믿었다고 해도 20년이 넘는 나이차와 외국인이란 국적을 생각하면 시골 부모님이 허락할 리 없었을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녀가 어느 날 말도 없이 식당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터미널로 달려가봤지만 이미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아주 먼 거리를 달려서 그녀의 고향 길목 언덕까지 갔다고 했다. 그는 먼지 풀풀 날리는 어느 언덕에 서서 지나가는 버스란 버스는 모조리 세웠다. 빽빽하게 들어찬 손님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가 탄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드디어 어느 버스 안에서 그녀를 만나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의 사랑도 애절했지만, 이뤄지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벽을 넘어야 하는 사랑 앞에서 그녀의 심경은 또 어땠을까?

지성이면 감천이던가. 결국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에게 9월 네팔의 추석에 함께 고향에 가자고 제의했고,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그녀와 전화 연락도 쉽지 않던 네팔의 상황 때문에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 중간에서 그들의 의사소통을 도와줬는데 그가 실수를 한 것이다. 그녀가 이야기한 날과 그가 이해하고 있던 날은 달랐고, 결국 그녀는 그가 네팔에 도착하기 사흘 전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됐다. 그녀와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네팔을 다시 찾았는데 다른 남자의 아내가 돼 있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한국인 사업가와 네팔 처녀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

네팔에서 접한 미완성 순애보

카트만두 타멜 거리(위)에서 만난 그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격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마을(아래)에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그의 사랑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자. 그토록 진실한 사랑을 고백해놓고는 막상 고향에 함께 가자고 한 날까지 끝내 나타나지 않은 남자. 결국 엉뚱한 남자의 아내가 돼야 했던 그녀. 그는 어떻게든 돌이켜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의 고향을 찾아가 집까지는 가지 못하고 동구 밖에서 그녀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제 잊으라고 했단다. 그들 곁으로 오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서성이던 남자를 본 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섰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도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일 테니.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애초부터 결혼할 남자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남자의 사랑에 결국 마음을 열고 용기를 냈지만 그 사랑이 가볍거나 거짓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부모님이 점지해준 남자와 결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사랑하는 여인이 살고 있는 네팔을 떠나야 한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만남이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 돼버린 지금, 그는 자기 배 하나 불리자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불고기에 공깃밥까지 추가해 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가 식당을 나간 8시 무렵에야 나는 산미구엘과 두부김치를 주문했다. 고향까지 찾아가 동구 밖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을 때, 먼발치에서 서성이던 남자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괜히 내 가슴이 울컥해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켜버렸다.

네팔에서 접한 미완성 순애보
2002년 네팔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이제 더 늙었을 테고, 내 나이는 그때 그보다 한 살이 더 많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의 사랑을 부도덕하게 보지 않는다. 누가 감히 남의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럴 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사랑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사람을 시들지 않게 하는 감정이다. 그의 사랑이 이뤄지지 못했음에도 가끔 그의 사랑을 추억하며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소망한다. 길에서 떠돌기에는 날이 길지 않으니, 이제 우리 사랑하자고.



주간동아 2008.11.04 659호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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