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9

2008.04.01

퇴비로 키운 친환경 포도 풍성한 향기와 긴 여운

  • 아트옥션 대표 고려대 강사

    입력2008-03-26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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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비로 키운 친환경 포도 풍성한 향기와 긴 여운

    플라차넬로의 1982 빈티지.

    태양빛이 산자락으로 쏟아져 내리는 토스카나의 키안티 지역은 풍성함과 넉넉함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도시 전체가 중세 박물관 같은 피렌체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이들은 우피치 미술관이나 티본 스테이크, 조각품 못지않게 와인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피렌체 아래로 펼쳐지는 키안티는 광활한 지역이라서 이곳 와인들은 품질이 고르지 못하다. 물론 여행의 피로를 달래려고 찾은 이름 모를 식당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마는, 와인 자체의 품질을 놓고 보면 들쭉날쭉한 편이다. 하지만 남쪽으로 좀 내려오면 구릉의 경사가 가팔라지고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이 나온다. 이곳은 키안티의 가운데 구역으로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불린다. 가히 키안티의 핵심이랄 수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곳에 따라 500~600m에 다다르는 산이 있다. 이처럼 높은 지역에 조성된 포도밭은 서늘한 기후 덕분에 오랫동안 익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포도는 갑자기 익는 것보다는 서서히 익어야 좋다. 과일의 맛은 결국 당도와 산도의 결합이니만큼 무작정 달아도, 무작정 시어도 좋지 않다. 한여름 40℃의 무더위에 포도가 타버릴 위험도 산봉우리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침저녁의 일교차로 당분 못지않게 산미도 충분한 포도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 수많은 와인 중 으뜸 꼽혀

    키안티 클라시코에는 수백 개의 양조장이 있다. 남서향 경사면에 자리잡은 판자노 마을은 유난히 태양이 좋다. 내리쬐는 햇빛의 뜨거운 온도를 품으려고 땅이 오목하게 생겼으니 주변보다 포도 익히기가 수월하다. 이곳은 그래서 콩카도로(Conca d’Oro), 즉 ‘금조개’로 불리며 금싸라기 같은 땅으로 통한다. 이곳에 자리잡은 폰토디(Fontodi) 양조장은 매년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어낸다.



    특히 산지오베제 100%로 만드는 플라차넬로(Flaccianello)는 지역 으뜸으로 꼽힌다. 1981년부터 출시되고 있는 이 와인은 강하고 진하며 풍성한 향기와 긴 여운을 지녔다. 포도밭 이름인 플라차넬로는 포도밭에서 가까운 교회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 땅은 옛날에 실제로 교회 소유였다. 라벨에 붙은 십자가가 이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

    포도밭 옆에 쌓인 퇴비는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다. 소의 분뇨와 잘게 썬 포도나무 가지를 섞은 뒤 벌판에다 널어놓고 썩힌다. 가까이 가보면 발효로 인해 생긴 이산화탄소를 볼 수 있다. 양조장 주인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는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으며 친환경적인 포도밭 조성에 힘쓴다. 오직 땅에서 나는 것만을 땅에 사용한다.

    세심하게 토질 관리에 힘쓴 결과, 2004 빈티지의 플라차넬로는 한층 맛이 좋아졌다. 우선 뭉클하게 코를 제압하는 향기와 온 입을 장악하는 질감이 좋다. 신선하고 자극적이며 뛰어난 구조를 가져 오래 숙성할 만하다. 농익은 와인에서 풍겨오는 풍만한 맛뿐 아니라, 균형 잡힌 와인에서 나오는 세련되고 순한 느낌이 있다. 1982 빈티지는 열었을 때의 어두운 향내가 금세 사라지더니 온화하고 깔끔한 입맛을 선사한다. 꼿꼿한 구조를 느끼며 삼키는 가운데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스물다섯 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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