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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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회초리’ 수신료 거부운동

  • iam@donga.com

    입력2008-01-30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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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회초리’ 수신료 거부운동

    직원들의 ‘주식거래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하시모토 겐이치 NHK 회장.

    지난해 초 일본에서는 NHK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NHK의 간판 프로그램인 연말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서 가수 디제이 오즈마(DJ OZMA)와 여성 댄서가 상반신이 알몸처럼 보이는 특수 의상을 입고 출연한 것이 발단이 됐다. 실제 누드가 아닌, 누드처럼 보였을 뿐인데도 NHK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실제 알몸이 아니라곤 하지만 어린이들도 보고 있을 시간(문제의 장면이 방송된 때는 밤 10시20분경)에 어떻게 그처럼 저급한 내용이 전파를 탈 수 있느냐”는 게 다수 시청자들의 목소리였다. 이에 NHK 측은 “가수에게서 관련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시청자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공중파 채널을 보면 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저급한 내용들이 버젓이 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명 남성 연예인들이 속옷만 입혀놓은 마네킹(여성)을 끌어안고 뒹굴면서 발가락을 이용해 누가 빨리 속옷을 벗기는지를 겨루는 등의 프로그램이 ‘어린이들도 보고 있을 시간’에 버젓이 공중파를 탄다.

    한국이라면 이런 방송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겠지만, 일본에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독 NHK의 ‘홍백가합전’에 여론의 뭇매가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시청자에게 수신료를 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과 광고 수입으로 운영하는 민영방송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은 세금이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받아가는 이상 최대한 공정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NHK에 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NHK 직원들의 공금 유용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을 때 전국적 규모로 벌어진 수신료 납부거부 운동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의 매’였다고 할 수 있다.

    내부자 주식거래 NHK 또 사고 … 시청자들 분노의 목소리



    이처럼 일본 국민의 높은 기대를 받고 있는 NHK가 최근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엔 내부자 주식거래 문제다. 보도국 TV뉴스 제작부 기자 등 3명이 사내 단말기를 통해 특종기사를 미리 읽고 주식을 매입해 10만~40만엔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급기야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하시모토 겐이치(橋本元一) NHK 회장이 인책 사의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보도담당 임원과 법률준수담당 임원은 1월22일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NHK가 직원의 범죄 문제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11월 사건담당 기자가 이웃집에 11차례나 불을 지른 사실이 밝혀져 망신을 당했고, 지난해 상반기(1~6월)에만 전철 내 성추행과 아동매춘 등 NHK 본사와 자회사 직원이 연루된 파렴치 사건이 6건이나 발생했다. NHK 측은 연쇄 파렴치 사건을 계기로 인사담당 간부들이 전 직원을 면담하는 등 온갖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내부자 주식거래 사건은 이러한 대책이 전혀 약효가 없었음을 방증한다.

    NHK는 연결자회사를 포함한 총 직원 수가 1만5737명(지난해 3월 말 현재)에 이르는 방대한 조직이다. 그중엔 사회적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직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 백화점’을 연상시킬 정도로 불상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직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일본 국민의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은 지난해 들어서면서 한풀 꺾인 느낌이다. 아무래도 일본 국민이 ‘사랑의 회초리’를 너무 일찍 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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