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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없다. 삶 자체가 고통”

에이즈 걸린 혈우병 환자 가족들의 절규 … 감염 원인 놓고 혈액제제 회사와 힘겨운 싸움

“희망은 없다. 삶 자체가 고통”

“희망은 없다. 삶 자체가 고통”
“엄마 때문에 혈우병에 걸려서 그런 끔찍한 병까지 안고 살아야 하다니. 아이는 그 사실조차 몰라요. 그걸 어떻게 제 입으로 이야기해요. 제가 죄인이에요.”

김정훈(가명) 군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혈우병은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멎지 않아 평생 혈액 응고 인자(혈액제제)를 주사 맞으면서 살아야 하는 만성 유전질환. 피 속에 있는 여러 혈액 응고 인자 가운데 제8인자(A형 혈우병), 제9인자(B형 혈우병)가 부족해 발생한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듯 혈우병은 모계 유전이다. 혈우병 보인자(존재하나 발현하지 않는 상태,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인 여성이 혈우병 유전자(X염색체)를 자녀에게 물려주는데, 아들일 경우 질환이 나타나고 딸일 경우 어머니처럼 보인자 상태가 된다. 즉 김 군도 보인자인 어머니로부터 혈우병 유전자를 물려받은 B형 혈우병 환자다. 자신이 혈우병 보인자 상태인지 몰랐다는 김 군의 어머니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혈우병에 걸린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김 군은 바로 그 지병 때문에 ‘에이즈’라는 날벼락까지 맞았다. 1993년 에이즈 감염이 처음 확인됐을 당시 김 군의 나이는 만 5세였다.

“저와 남편은 물론 주변의 누구도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어요. 아니, 그런 병에 대해 생각조차 안 해봤죠. 그런데 태어날 때 멀쩡했던 아이가 갑자기 에이즈라니요? 1991년부터 93년까지 맞은 혈액제제를 제외하곤 감염될 만한 경로가 없었어요. 하지만 나라에서도, 제약사에서도, 병원에서도 분명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만 하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또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병도 아니다 보니, 그렇게 죄인처럼 살아왔어요.”



현재 김 군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김 군의 부모뿐이다. 이웃이나 친척들은 물론 김 군의 조부모나 형제들도 전혀 모른다. 하지만 혈우병 특성상 출혈이 잦은데, 그때마다 부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사실이다. 에이즈가 혈액을 통해서 전염되기 때문. 아이의 분비물을 치울 때나 아이에게 혈액제제를 주사 놓을 때면 어머니도 사람인지라 움찔해지기도 하고 다른 형제에게 옮을까 걱정도 된다. 그러면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치지만, 그보다도 ‘수상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93년 감염된 아들 지금도 감염 사실 몰라

김 군처럼 1991년부터 93년 사이에 에이즈에 걸린 혈우병 환자는 2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감염 원인을 규명해주기는커녕 집단으로 감염됐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감염됐지만,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은 이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길마저 막아버렸다.

“희망은 없다. 삶 자체가 고통”

HIV 소송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피해자 가족 대표와 한국코헴회 관계자들.

하지만 2002년 울산의대 조영걸 교수가 언론과 논문 등을 통해 국산 혈액제제에 대한 HIV 감염설을 제기했고, 이에 해당 혈액제제를 제조한 제약사가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조 교수를 고소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에 그동안 숨어 지냈던 에이즈 감염 혈우병 환자 16명이 2003년 2월 “혈액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이 의심된다”며 제약사를 상대로 3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나이가 무척 어리다는 것이다. 16명 중 8명이 1980년 이후에 태어났고, 가장 어린 사람은 1989년생, 즉 에이즈에 감염됐을 당시 만 3세였다.

올해 7월1일 서울동부지법 민사11부(백춘기 부장판사)는 혈우병 환자의 에이즈 감염과 혈액제제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소송에서 승소해 5000만원의 배상금을 받게 된 사람은 김정훈 군 한 명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안 지 10년이 넘은 시점에 소송을 제기해 손배채권 시효가 소멸됐다’ 또는 ‘혈액제제 투여 기록이 미비하다’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이에 대해 해당 제약사 측에선 항소를 한 상황이다.

다시 김정훈 군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김 군네 냉장고에는 혈액제제와 항HIV약제가 가득 들어 있다. 항HIV약제는 에이즈 증상 발현을 억제하는 약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어머니가 직접 병원에 가 타온다. 어머니는 집에 오자마자 약 봉지에 붙어 있는 에이즈와 관련된 약이란 표시를 일일이 떼어버린다. 아직까지 김 군은 에이즈 특유의 임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는 어머니는 절박한 심정으로 약을 먹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약 먹기가 싫다며 짜증만 부린다.

“아이는 혈우병 때문에 약을 먹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로 아침식사를 거르고 약만 먹고 등교할 때가 많은데, 그러면 약이 너무 독해 하루 종일 속이 아프고 빈혈이 온다고 해요. 그래서 약을 먹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제가 ‘너 이 약 먹지 않으면 죽어’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저도 짜증이 나 버럭 화를 내다가도, 너무 미안해서 아이와 함께 울 때가 많아요.”

김 군은 ‘C형 간염’에도 감염됐다. 혈액제제 때문이라고 여겨지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른 지병들이 워낙 위중하다 보니 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간이 안 좋다 보니 아무래도 약의 해독력 역시 떨어지지 않겠냐”고 묻는다. 세 가지 병이 서로 악순환되면서 아이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 또 웬만하면 병원을 피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병원에 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어릴 적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단독 병실에 격리해 입원시키더군요. 또 침대 옆에 ‘감염 중’이라고 붙여놓았죠. 치과 치료도 함부로 못 받아요. 병원에서 거부하거든요. 입원할 때마다 단독 병실을 쓰니까 어느 날 아이가 묻더군요. ‘엄마, 나 이 병 말고 다른 병도 앓고 있는 거지?’ 정말 가슴이 툭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언젠가 아이한테 말을 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콱 죽어버린다고 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이중삼(53·가명) 씨는 차라리 자신이 말기암 환자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동정이라도 받지 않겠냐는 것.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이 씨가 혈우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군대에서였다. 어릴 적부터 코피가 자주 나고 출혈이 생기면 잘 멈추지 않고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이게 병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또 군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도 별 이상이 없다고 나와 군대까지 갔다. 하지만 훈련을 받다가 심하게 다친 뒤 받은 재검에서 그는 자신이 혈우병 환자라는 걸 알게 됐다. 1992년부터 혈액제제 주사를 맞았고, 94년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 씨 역시 C형 간염에도 감염됐다.

현재 이 씨는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자식은 없다. 아내가 몇 차례 유산한 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를 제외하곤 아무도 그가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웃들은 그가 혈우병에 걸린 것조차 알지 못한다. 이 씨는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아내가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손톱깎이와 귀이개 등도 아내와 따로 써요. 혹 보이지 않는 혈액이 묻어 있을까 두려워서요. 지혈도 혼자 하고, 주사도 제가 직접 놓죠. 혹시라도 아내한테 피해가 갈까봐 웬만하면 제가 다 처리하려고 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부부관계를 할 때마다 콘돔을 사용했지만, 그것마저 미안해 부부관계도 거의 가지지 않았어요. 아내는 주기적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이 씨는 최근 건강이 부쩍 나빠졌다고 호소했다. 아직 에이즈 특유의 임상 증상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체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이 떨어졌고, 감기에 걸리면 쉽게 낫지 않으며, 림프선도 자주 붓는다는 것. “이렇게 한발 한발 죽음으로 향해가는 것이 억울하면서도 너무나 두렵다”며 그는 울부짖었다.

김정훈 군의 꿈은 컴퓨터 전문가다. 하지만 부모는 한숨만 쉰다. 아이가 취직이나 할 수 있겠냐는 것. 김 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최소한의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할 만한 곳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 군을 비롯해 소송을 낸 16명의 가족들이 바라는 건 단순히 5000만원의 배상금이 아니다. 제약사와 국가의 성의 있는 사과와 환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다. 이 보상은 질병에 대한 치료는 물론 이들이 편견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김 군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주간동아 2005.10.11 505호 (p36~37)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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