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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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남북정상회담 說 說 說

경의선 열차 회담·김정일 APEC 초청·러 푸틴이 두 정상 초청 등 정·재계 꼬리 무는 소문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5-10-05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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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남북정상회담 說 說 說
    “정치는 기획이다.”

    정치에 대해 뭘 좀 아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최근 정계와 경제계에서는 11월 남북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큰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11월 빅뱅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쯤 이야기하면 눈치 빠른 사람은 감을 잡을 것이다.

    ‘누군가가 11월을 목표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뛰고 있구나.’

    오는 10월 말 남북은 경의선 및 동해선 연결 작업을 끝내고 열차 시험운행을 할 예정이다. 8월30일 남북은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실무협의회 5차 회의를 열고, 열차 시험운행을 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체결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몇몇 기관의 정보 수집·분석가들은 남북한 정상이 새로 개통한 경의선을 달리는 첫 열차를 타고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2000년 6월15일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 제1항에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른바 ‘자주(自主)’ 조항인데, 경의선 개통 후 처음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만나 6자회담 이후의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가닥을 잡는다면, 이는 ‘자주’를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때 주목을 끌었던 것이 11월19일 부산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담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한다는 예측이었다. 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담긴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내용 덕분에 한동안 관심을 끌었다.

    김 위원장이 열차로만 여행한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탄 열차에 노무현 대통령이 탑승해 회담을 하면서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서울역에 잠시 정차해 간단한 행사를 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다면, 김 위원장은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면서 자주도 실현한 지도자가 된다. 이러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우리 측이 초청하면 김 위원장은 부산 APEC 회담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 경우 남측 보수세력이 과연 이것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라는 문제가 일어난다. 보수세력이 눈속임 답방이라고 비판한다면 새로운 남남(南南)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도 있다. 김 위원장은 APEC 회담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이를 눈치 챈 듯 “북한은 APEC 회원국이 아니다”며 김 위원장의 APEC 참석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반대 때문에 남측은 APEC 주최국이면서도 김 위원장을 초청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APEC 회담 전에 열차를 이용해 김 위원장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다. 김 위원장이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다면, 이 열차를 북에서 준비하느냐 남에서 마련하느냐, 아니면 공동으로 하느냐라는 원초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북한은 김 위원장 경호를 이유로 들어 북한에서 운행해온 김 위원장 전용열차를 타고 내려오겠다고 할 수도 있다.

    열차 회담 땐 경호 문제 등 난제 많아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은 소수의 경호원만 대동하고 이 열차에 탑승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통용되는 원칙 중의 하나는 경호는 회담을 주최하는 쪽에서 주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초청받은 쪽에서도 그들의 정상을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경호원을 데려올 수 있지만, 이들은 무기 휴대에서부터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명령 지휘 체계가 다른 데다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무기를 휴대한 양측 경호원이 포진해 있다 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작은 해프닝이 자칫 큰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쪽에서는 허용하는 행동이 저쪽에서는 금기하는 행동일 경우,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경호원들이 총을 뽑아들고 VIP를 둘러쌀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우아하게 진행되던 행사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경호는 주최 측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방문국 경호원은 신변 경호 정도만 담당하는 게 원칙이 되고 있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도 이러한 원칙이 지켜졌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남쪽으로 온다면 경호의 주최는 한국이 맡아야 한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탄 전용열차에 노 대통령이 탑승한다면, 한국은 이 열차가 지나가는 지역을 지키는 외곽 경호만 전담하게 된다. 경호 주권을 잃었다는 비난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두 정상이 탄 열차가 휴전선을 통과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군 부대를 방문하면 경호 기관은 사고 등을 우려해 사전에 총기류를 단속한다. 따라서 어느 곳보다도 무기가 조밀히 배치돼 있는 휴전선에서 두 정상이 만난다면 양쪽은 총 등의 무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란 문제에 봉착한다. 양쪽이 모든 무기를 통제하자고 약속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이렇게 무장해제를 해도 될 만큼 상대를 믿어도 되는가’란 매우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 언론의 집요한 취재 행태도 열차를 이용한 남북정상회담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경호 문제 등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언론에 제보할 경우, 김 위원장의 남측 방문은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김 위원장이 한국에 온다는 기밀이 새나가면 보수단체의 시위가 이어질 것이고, 이를 핑계로 김 위원장이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저래 열차를 이용한 김 위원장의 한국 방문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면서 깨끗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제삼국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열차를 이용해서만 외국 순방을 한다. 또 그가 방문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춰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는 나라를 꼽아보면 중국과 러시아아가 떠오른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준비는 중국에서 이뤄졌다. 그해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사 역을 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베이징의 캠핀스키 호텔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로 나온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이어 임동원 씨가 이끄는 국정원과 김용순 씨가 이끄는 통일전선부의 관계자들이 만나 구체적인 것에 합의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한 중국은 한 번 사용한 카드다. 또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 등을 통해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려놓은 데다 수많은 한국인이 드나들고 있어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할 곳으로 적당하지 않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가 남게 된다. 러시아는 과연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할 곳으로 적당할까.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이 노 대통령의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자 경향신문과 단독으로 한 송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용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이 제의를 한 것은 올해 5월9일 러시아에서 열린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 60주년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남북한 모두에 초청장을 발송했으므로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에 온다면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일찌감치 모스크바 행사 불참을 밝힘으로써 2차 남북정상회담 기대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겠다’고 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9월19일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마무리된 4차 6자회담에서 러시아는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은 나름의 목소리를 질렀지만 러시아는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왜 그랬을까.

    폴리코프스키가 밀사로 뛰고 있다?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9월8일 6자회담 러시아 측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러시아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했고, 김 위원장은 적당한 시기에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6월 말 북한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200만 kW의 전력을 제공하겠다고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직후인 8월15일 러시아도 유사한 제의를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러시아는 매우 큰 나라인지라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대통령 전권대표를 파견해놓고 있다. 전권대표는 러시아 대통령을 대신해 극동러시아를 관할하는 최고 책임자이다. 따라서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 전권대표를 맡는데, 현재 대표는 콘스탄틴 폴리코프스키 씨다.

    11월 남북정상회담 說 說 說

    10월 말 완공되는 경의선 공사.

    북한의 전력 체계는 매우 복잡하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전력 체계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함경도 쪽에 건설한 전력 체계는 한국과 전혀 다른 러시아형이다. 중국 측의 협조로 건설된 평안도 쪽의 전력 체계는 중국형이다. 이렇게 세 가지 전력 체계가 혼재해 있다 보니 어느 한 체계에선 전력이 남고 다른 체계에선 부족해도 남는 쪽에서 부족한 쪽으로 전기를 보내줄 수가 없다. 러시아형 전력 체계에서 부족한 전력은 러시아가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는 김 위원장과 아주 가깝다. 그는 8월14~17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판 광복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때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를 수행한 인사 중에 극동러시아의 전력회사인 ‘보스토크 에네르고’사 관계자가 있었다. 이들과 전권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이 회사가 생산한 전력 중 남아도는 50만 kW를 북한에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두만강 바로 건너에 있는 러시아 연해주 핫산 지구에서 함경북도 청진을 잇는 350km의 송전선로만 놓으면 50만 kW 전력 제공은 문제가 없다고 제의한 것. 문제는 송전선로 건설 비용을 누가 대느냐는 것인데, 러시아 측은 한국 측이 비용을 댄다는 전제 아래 이 제의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폴리코프스키와 함께 평양을 방문한 대표단에는 러시아 석유회사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뒤 미국이 중단한 50만t의 중유를 대신 공급해줄 수 있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이 경우도 한국이 비용을 대는 전제 아래서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했다고 한다.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의 제의가 있은 때로부터 20일이 지난 9월8일 6자회담 러시아 측 수석대표가 다시 한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요청했다. 한마디로 러시아는 6자회담 타결보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 그러니 미국, 중국, 일본, 한국과 달리 북한에 압박을 가할 이유가 없었고 그로 인해 6자회담에서 나타나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 정부도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를 매우 환대한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15일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는 한국을 방문해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계, 관계, 재계, 학계의 인사를 두루 만나고 16일에는 경남대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때문에 소식통들은 폴리코프스키가 남북 관계를 뚫는 밀사로 활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러시아를 출입하는 소식통들은 조만간 김정일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때 한국에서도 노 대통령을 비롯한 실력자가 극동러시아로 가 김 위원장과 면담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식통들은 더욱 구체적으로 하바로프스크에서 콤소몰스크 나 아무르를 잇는 철로 연변은 풍광이 좋은데, 남북한 대표는 이 철로를 달리는 열차를 타고 대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러시아에서 남북한 정상이나 대표가 만날 경우 경호는 전적으로 회담 주선국인 러시아가 책임진다. 남북한 대표는 몸만 가면 되고 골치 아픈 경호와 양쪽 군대의 무장 해제 문제는 논의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왜 러시아가 남북정상회담(또는 대표회담)에 열을 올리는가라는 점이다.

    소식통들은 이를 명분과 실리로 나눠 설명한다. 푸틴 대통령은 재선 임기가 끝나는 2008년 야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9월27일 러시아 국영 TV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해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은 러시아의 장기 발전을 꾀하는 것으로, 3기 연임을 위한 개헌은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08년 이후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찾아갈 것이다”고 분명히 말했다.

    한 소식통은 “분쟁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별장이 있는 캠프 데이비드로 양쪽의 정상을 불러들여 중재하지 않았느냐. 푸틴도 남북한 정상을 상대로 그와 유사한 일을 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러시아의 위상을 높이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푸틴은 젊기 때문에 퇴임 후에도 원기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 퇴임 후의 활동을 생각한다면 세계평화에 기여했다는 기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의 중재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는 옛 소련의 독재에 항거한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 소련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노벨 평화상을 받는 러시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 면에서도 러시아는 전혀 손해볼 것이 없다. 2003년 9월 한국은 이른바 파리클럽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원리금 합계액이 22억4000만 달러에 이르던 대러차관 중에서 6억6000만 달러를 탕감해주었다. 경제가 어려운 러시아로서는 혹처럼 따라다니는 이 차관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국 측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이 탕감을 해주면 가장 좋고 아니면 러시아가 북한에 빌려주었다가 받지 못한 38억 달러 상당의 악성 채권과 이를 교환하는 방법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러시아에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렇게 협력을 돈독히 하는 과정에서 극동러시아 개발에 한국 기업이 참여한다면 러시아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부채질하는 셈이다.

    과연 러시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까?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빈도 수가 늘고 있다며 그 가능성은 매우 높게 전망했다. ‘정치는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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