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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禪 이야기

‘끽다거’에 담긴 깊은 의미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끽다거’에 담긴 깊은 의미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한자로 쓰면 ‘끽다거(喫茶去)’가 되는 이 말에서 ‘거’는 어조사로 해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말의 참뜻은 “(귀찮게 여러 소리 묻지 말고) 차나 한잔 하지그래”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중국의 조주 스님(778~897)이다. 그는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 “불법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때마다 “차나 한잔 하라”고 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제자가 “스님, 진리를 묻는 이들에게 왜 그렇게 말하십니까”라고 하자, 그때 역시 “자네도 차나 한잔 하지”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선어(禪語)가 된 이 말은 이제 인사동 찻집 간판에 출몰할 정도로 대중적이 됐다.

옛날 고승들의 일화에는 우리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진리를 묻는 제자에게 “마른하늘의 똥막대기”라는 둥 “마(麻) 서 근”이라는 둥 했다는 고승들의 이야기는 정황은 사라지고 문답만 남아 자칫 선을 신비화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승들의 답이 천차만별이라도 결국 뜻은 하나다. 바로 “불법이니 진리니 절대니 하는 것을 찾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금 차를 마시는 행위, 막 변소 치우는 데 쓴 똥막대기가 빨랫줄에 걸려 있는 것을 보는 행위, 옷을 지으려고 베를 저울에 다는 행위 등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이 모든 것’이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선어 ‘끽다거’를 남긴 조주 스님은 여든 나이에 주지가 되어 120살까지 살며 평생 청빈한 수행의 삶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 고향에 있는 절로 출가해 책은 보지 않고 바로 참선 수행에 들어갔다. 이어 유명한 선사인 남전 스님 문하에 들어가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무려 40여년을 시봉(일종의 비서로 가장 가까운 제자가 맡는다)했다.

스승 남전 스님이 입적한 때는 조주 스님 나이가 환갑이 다 된 이후였다.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된 스님은 천하산천을 주유하며 당대 고승들을 친견했다. 당시 그가 했다는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는 말도 유명하다.

조주 스님은 무려 20여년의 행각을 마치고 여든이 되었을 때에야 작은 절의 주지가 됐다. 40년 동안 가난한 절 주지로 살면서도 조주 스님은 불사를 빙자한 편지 한 통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한다. 책상의 다리가 부러져도 나무토막을 노끈으로 묶어 썼을 정도라 한다.

제자들이 묶은 ‘조주록(趙州錄)’에는 임종 자리에서 스님이 한 말이 나온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태워버리되 사리 같은 것을 주우려 하지 말라. 선승의 제자는 세속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더군다나 이 몸뚱이는 헛것인데 무슨 사리를 챙긴단 말인가.’



주간동아 2005.08.23 499호 (p31~31)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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