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5

2005.07.26

돈을 좇는 로펌 … 국가 소송 너도나도 외면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5-07-21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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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을 좇는 로펌 … 국가 소송 너도나도 외면
    요즘 ‘변호사들’이라는 MBC 월화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로펌(law firm) 안에서 벌어지는 변호사들의 야망과 사랑이란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내겠다는 의도인데, 일각에서는 2004년 SBS 드라마 ‘러브 인 하버드’의 순진한 법대생들이 세상에 진출한 이후 어떻게 ‘때가 묻어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악평(?)까지 나오고 있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며, 법의 정의가 돈의 힘 앞에 굴복당하는 로펌 세계가 제대로 그려질지 궁금하다.

    로펌은 형태와 업무가 다양하여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통상적으로 송무(訟務)와 민사, 특히 기업이 중심이 되는 상사 사건을 다루는 전문 변호사 집단을 말한다. 기업활동과 관련한 법적 지원을 전담하기 때문에 이들의 판단에 따라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향방이 바뀌기도 한다. 그만큼 ‘보수(補修)’와 ‘업무 스트레스’ 면에서는 비교할 만한 직업군이 없을 정도.

    최근 삼성이 금융 계열사의 계열사 지분 의결권 제한 규정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이 로펌 업계에서 큰 화젯거리다. 이른바 VIP 고객인 삼성이 사주와 그룹의 사활을 걸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맞서 헌법소원이라는 칼을 뽑아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개정 공정거래법이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위헌론’과 삼성전자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애국론’에 호소하는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공정위는 “삼성이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로 헌재의 정치적 결정에 기대고 있다”고 흥분한다.

    문제는 공정위도 헌법재판소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법률안을 옹호할 법적 대리인이 필요한데, 중량감 있는 인물이 죄다 로펌에 소속돼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 편을 드는 로펌이 나오게 된다면 향후 삼성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어찌 보면 돈을 좇는 변호사의 본능일지 모른다.

    한바탕 소동도 있었는데, 7월11일 ‘법무법인 화우의 윤호일·양삼승 공동대표 변호사가 공정위 측 대리인단으로 선임됐다’는 미확인 보도가 발단이 됐다. 화우에는 법조계 왕당파로 불리는 사법시험 17회 출신 ‘8인회’의 조대현·강보현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데, 화우는 지난 대통령 탄핵 사건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사건 때 정부 측 소송을 대리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사위가 일하고 있고, 7월 초 조대현 변호사가 여당의 지명을 받아 헌재 재판관으로 영전하기도 했다. ‘드디어 화우가 노 대통령과 손잡고 삼성으로 대표 되는 재벌과 전선을 형성했다’는 억측을 낳을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화우는 “그 기사는 오보”라며 손사래를 쳤다. 관계자에 따르면 “화우는 이미 삼성과 공정위가 관련된 다른 소송을 맡고 있어 공정위를 대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화우 처지에서 보면 삼성이나 정부의 껄끄러운 요구를 피해갈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는 셈이니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겠다.

    2004년 여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소송이 시작되자 사태를 우려감한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몇몇 최고 로펌에 전화를 걸어 정부 측 대리를 서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로펌 관계자들은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이번 삼성-공정위 대결에서 공정위 예산은 변호사당 최고 2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며, 공정위 1년 법률 예산은 겨우 몇억원 수준이다.

    로펌에 문전박대당한 당시 강 장관은 정부가 100% 출자하는 국가송무 전담 로펌을 구상했고,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소송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정부법무공단’ 설립을 추진했다. 2006년 4월에 설립될 이 정부 로펌은 기존 로펌에 비해 박봉이 될 것만은 분명하지만 의협심 넘치는 변호사들로 채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돈에 연연해하지 않는 정부 측 법적 대리인들을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했던 ‘인권 변호사’ 수준으로 격상시키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 됐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 대통령의 말이 법조계에서만큼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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