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초동 변호사들은 굳이 출근 시간을 정해놓을 필요가 없다. 점심 약속도 없는 날이 더 많을 정도라고 한다. 불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잠자는 피해자를 꼬드겨 ‘사건을 만드는 것’도 이제는 흔한 현실이 돼버렸다. 그에 따라 의뢰인이나 외부 인사들이 변호사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이는 사법연수원생 1000명 시대가 낳은 변화인 셈이다.
새내기 변호사들의 보수에 대한 기대 수준도 많이 낮아졌다. 최근 조사된 사법연수생의 기대 연봉 수준을 들여다보니, 변호사 개업 또는 취업 시의 희망 연봉은 38%가 5000만~7000만원이라고 답했고, 14%는 50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새내기 변호사들의 직급은 대기업 대리급”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변호사 업계의 관행적인 불공정거래 사례를 압박하고 나섰다. 물론 일부 변호사에 국한된 일이지만 성공 보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구실로 엄청난 착수금을 요구해온 것은 물론, 어떤 사유가 발생해도 일단 손에 들어온 착수금은 절대 내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옛 계약서가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보다 변호사들이 느끼는 서운함은 ‘법률시장의 양극화’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한다. 법률 수요의 증가선은 완만한데 변호사 시장으로 배출되는 새내기 변호사들의 저가 공세와 재조에서 마지막 기회를 노리고 변호사 시장으로 진출하는 고위직들의 공세가 심해져 ‘보통 변호사들’의 밥벌이가 쉽지 않다는 것. 과거에는 형사사건 1건만 수임해도 어지간한 대기업 간부의 연봉이 보장되는 시장이었으나 갈수록 그 시장이 협소해지고 있다.
양극화의 상층부는 다름 아닌 갓 법복을 벗은 고위 법조인들. 7월 초 시행된 국회 청문회에서 신임 김승규 국가정보원장과 조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사례가 그 행태를 잘 증명해준다. 김 원장은 2003년 변호사 개업 후 법무부 장관이 되기까지 단 1년 반 동안 7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조 재판관은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보여 2004년 변호사 개업 후 11개월 만에 1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김 후보자는 당시 부산 고등검사장을, 조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퇴임했고, 실제로 대기업 회장이나 공기업 사장들 사건을 주로 변론했다. 물론 당사자는 부인했지만 ‘전관예우’ 때문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돈다. “퇴직 후 3년 내에 40억원을 모아야 제대로 된 법조인이다”는 법조계 내부의 정설이 사실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직 법관들은 “전관예우는 몇몇 고위 인사들에 한정된 특수 사례”라고 손사래친다. 이제는 옷을 벗고 싶어도 기존 로펌의 파트너급 변호사들의 반대가 심해 영입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에 새롭게 등장한 시장이 바로 대기업 법무팀. 한 고위 법관은 “나라도 삼성, 현대에서 불렀으면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라며 “대기업으로 옮긴 동료 법관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퇴직한 고위 법조인을 ‘종로에서 택시 잡기만큼 쉽게 만나는 시장’이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노블리제 오블리제’라는 구호만으로 시정하기에는 우리 법조계의 고질병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