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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김우중 리스트

김우중 리스트, 핵폭탄이냐 보험용이냐

정치권·기업가·관료 등 대상 무한정(?) … 재기보다는 명예회복 “당신 떨고 있지”

김우중 리스트, 핵폭탄이냐 보험용이냐

김우중 리스트, 핵폭탄이냐 보험용이냐

6월16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서울구치소로 향하기 위해 서초동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집권 말기로 치닫던 2001년 말.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은 예기치 않았던 공격을 받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대우그룹 임원을 지낸 박정훈 전 민주당 의원 부인 김재옥 씨가 “1998년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돈을 받아 김홍일 씨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한 것. “방 안에 쌓아둔 박스에서 배어나온 돈 냄새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는 김 씨의 구체적 상황 묘사에 청와대는 꿀 먹은 벙어리였고, 정치적 파장은 컸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 씨는 서울 평창동 자신의 집을 찾은 기자에게 제2, 제3의 폭로를 예고하며 확전을 시사했다. “이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또 있다. 남편(박정훈 전 민주당 의원)의 공천 탈락도 문제지만, 김우중 전 회장이 돌아와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 씨는 당시 자신이 살고 있던 종로구 평창동 쫛쫛쫛번지 대우빌라를 “김 전 회장의 배려로 살고 있는 집”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과의 의리를 강조한 말이다.

실체 없는 리스트 DJ 도덕성에 치명타

김 씨의 이런 행동은 즉각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김 전 회장이 측근들을 동원 ‘김우중 리스트’를 흔들며 권력 핵심을 압박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처참하게 무너진 김 전 회장이 이른바 김우중 리스트를 동원, 재기에 나설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 이후 김 씨가 폭로극을 중단하면서 김우중 리스트는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나 실체가 불투명했던 김우중 리스트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DJ는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고, 국민의 정부는 레임덕으로 빨려들었다. 이후 청와대 측은 김 전 회장의 귀국에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전 대우그룹 임원 K 씨의 설명이다. “김 씨 폭로와의 상관관계는 모르지만 그 후 청와대 측이 김 전 회장 귀국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K 씨는 청와대의 이런 움직임은 곧바로 또 다른 핵심 실세의 방해공작으로 벽에 부딪혔고 결국 김 전 회장의 귀국은 실패로 끝났다고 증언했다(상자기사 참조). 3년여가 흐른 2005년, ‘김우중’은 다시 참여정부 집권 3년차 정국의 핵심 뇌관으로 등장했다. 그의 등장으로 국민은 사면론과 처벌론으로 세가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다. 언론은 그가 풀어놓을 대우의 흥망성쇠 이면에 대한 의혹과 궁금증으로 연일 호들갑이다. 덩달아 정치권도 논픽션 드라마 ‘김우중’이 몰고 올 파급효과를 점치기에 바쁘다. 이번에도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리스트’로 모아진다. 과연 김우중 리스트는 존재하는 것일까.



정공법 막히면 로비로 장애물 통과 독특한 경영술

김우중 리스트는 김 전 회장의 독특한 경영술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그는 일을 하다 정공법이 막히면 로비로 장애물을 통과하는 데 매우 능하다. 로비 행태도 남다르다. 대우의 전직 임원들은 “김 전 회장은 군더더기나 요란한 것을 싫어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한마디로 핵심을 찾아 깊숙이 찌르는 한 방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 대우 임원을 지낸 박정훈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은 6월17일 전화 인터뷰에서 “전두환·노태우 정권시절에는 청와대가 모든 것을 관장했지만 이후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의 한방론은 그룹 내에서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한 조직구조에서 파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국가권력도 “최고권력자가 판단하고 결정하면 조직이나 시스템은 따라온다”고 믿은 것 같다. 그는 이런 신념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들과 보통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다. 매개는 대부분 돈으로 알려졌고 구체적 흔적도 드러났다. 1995년 검찰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로 밝혀진 김 전 회장의 정치자금 제공 액수는 총 240억원. 이중 뇌물로 인정된 금액은 150억원이다.

김우중 리스트와 관련 관심을 받는 것은 대우가 위기에 빠진 98년과 99년이다. 체질이 약했던 대우는 당시 위기에 빠졌고, 김 전 회장은 대우를 살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시점이다. 청와대와 정치권력 관료집단들을 만나 이른바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도 이 시점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일부는 이미 드러났다.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1억원), 이재명 전 의원(3억원) 등이 김 전 회장의 돈을 받았다. 대우자동차가 있는 인천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로비가 이뤄졌지만 퇴출 직전에 정·관계에 벌인 로비 규모는 현재 드러난 것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99년 10월 해외로 도피하는 과정에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당시 귀국했다가 정치권의 압력을 못 이겨 재출국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의혹의 출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서 있다. 김 전 회장과 김 전 대통령의 관계는 애증(愛憎)이 교차한다. 김 전 회장과 DJ는 좋은 인연과 악연을 두루 갖추고 있다. 두 사람 사이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97년 대선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은밀히 DJ를 지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상도동 한 인사는 6월15일 “DJ 정치자금의 3분의 2를 김우중이 지원했다는 말이 나돌 만큼 두 사람이 가까웠다”고 말한다. 동교동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김 전 회장의 호의를 인정한다. 한 인사가 술자리에서 전한 말이다. “재벌총수들이 여야에 정치자금을 줄 때 일반적으로 8대 2, 심할 경우 9대 1 비율로 준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달랐다. 7대 3, 또는 6대 4 비율이다.”

구체적 사례도 있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이 비밀은 동교동 출신 한 전직 의원이 집권 후 술자리에서 스스로 밝힌 것이다. “경기 안산시에 있던 김 전 회장의 별장을 찾았다. 보스의 심부름을 갔는데 김 전 회장이 2억원의 심부름값을 주더라.”

DJ는 집권 후 김 전 회장에게 “정치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경제는 당신(김 전 회장)이 대통령이야”라는 수사를 공석에서 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도 친했다. 시작은 악연이었다. 92년 대선 당시 김 전 회장은 박태준 전 총리에게 신당 창당을 제의하는가 하면 타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집권여당 후보였던 YS와 불화를 자초한 셈이다. 김 전 회장은 YS가 당선되자 급히 YS를 찾았다. 그러나 YS 측은 “돌아가지 않으면 대우그룹을 해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고심하던 김 전 회장은 현철 씨와 그의 장인, 그리고 YS의 핵심참모였던 김모 변호사를 찾았다. 그 후 그는 YS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박관용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6월16일 전화통화에서 “YS는 당시 재벌총수들에게 정치자금을 내지 말라고 지시해 재벌총수들이 매우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고비고비마다 정치인과 관료들을 자기 사람처럼 동원했다. 정치권 인사들은 당시 김 전 회장과 함께 해외로 나가는 것을 가장 즐거운 여행으로 꼽았다.

과거 그의 큰손을 경험했던 정계와 관계는 돌아온 김 전 회장의 입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순순히 로비 사실을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다. 김 전 회장은 이미 귀국하면서 자신의 이런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당초 자신을 출국시킨 인물로 DJ를 지목했다. 그러나 귀국 직후 DJ 대신 채권단을 거론하며 전선 형성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흐름으로 보아 김 전 회장이 리스트를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검찰이 김 전 회장의 광범위한 로비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김 전 회장 귀국을 위해 뛰었던 한 대우 전직 임원 K 씨의 말이다.

“그는 살기 위해, 사면을 받기 위해 귀국했다. 그런 그가 일부러 정치권을 뒤집어놓을 필요가 있겠느냐.”

김우중 리스트, 핵폭탄이냐 보험용이냐

1998년 7월6일 청와대 오찬장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 ‘포춘’지 표지모델로 나선 김 전 회장. 97년 11월13일 폴란드 출장길에 작업복을 입은 채 햄버거를 먹고 있는 김 전 회장(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그는 “김 전 회장이 리스트를 갖고 있다면 차라리 보험용으로 쥐고 있는 것이 후일을 도모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대신 그는 “다른 측면의 김우중 리스트를 주시하라”고 주문했다. 김우중 리스트를 굳이 정치자금 수수자로 한정하지 말라는 것. 김 전 회장은 지금도 대우가 타살됐다고 믿고 있고, 그 과정에 역할을 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런 점을 집중 부각시킬 것이란 게 K 씨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최근 “김우중 전 회장이 들어와서 여러 발언을 하게 되면 파장이 클 것이며 잠 못 이루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그는 살기 위해, 사면 받기 위해 귀국”

“기업 구조조정과 빅딜, 기업의 해외 매각 등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김 전 회장이 유일하다. 그 당시 관여했던 사람들은 잘했다고 주장하지만 말도 안 되는 구조조정, 빅딜을 한 경우도 많았다.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며 돈을 받은 사람도 있고, 외국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도 있다. 국민경제에 못할 짓 한 사람이 많다. 김 전 회장이 이런 문제를 짚으면 그들의 가면이 벗겨질 것이다. 그래서 잠 못 잘 사람이 많다고 한 것이다.”

이 의원은 기업가, 관료, 정치인 등 그 대상의 폭을 확대한다. 이 의원은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의 입을 보지 말고 전경련 회장 김우중의 입을 주목하라”고 주장했다. IMF 체제 아래서 정치권력과 관료들이 어떻게 처신했는지 전경련 회장의 시각으로 재조명할 수 있다는 것. 이한구 의원과 박 이사장 등 대우맨들은 특히 DJ 정권 경제참모 5인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내놓는다. DJ 정부 당시 대우사태 처리에 관여한 정부 고위관료는 강봉균 재경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그리고 채권단의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였다. 알려진 대로 그들은 대우 해체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김 전 회장은 당시 DJ 정부의 경제관료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을 만나고 오면 흥분했다는 것이 이한구 의원의 설명이다. “때로 대통령 앞에서 ‘책상물림이다’ ‘실물경제를 모른다’며 망신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을 만나고 오면 한동안 감정을 삭이지 못하더라.”

“현대는 퍼주고 … 그 사람들 용서할 수 없다”

박정훈 이사장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이헌재 금감위원장을 만나 대우를 도와달라고 했더니 ‘대우는 빚이 많은 기업’이라고 하더라. 대우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나놓고 보니 DJ 경제참모 대부분이 대우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았다.”

김 전 회장은 이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지금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의 친척으로 김 전 회장과 사업 얘기를 주고받는 한 인사는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투신자살 직후 베트남에 있던 김 전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현대와 정부의 밀월 및 공적자금 지원내용 등이 속속들이 밝혀진 시점이었다.

“현대는 저렇게 퍼주고 나(대우)한테는 그렇게 매몰차게 할 수가 있나. 내가 바보였다. 그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건데….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국내에서 전화를 받은 이 인사는 그에게 귀국을 종용했지만, 김 전 회장은 “지금은 들어갈 여건이 못 된다”며 발을 뺐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그 분노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돈을 받아간 사람보다 권력과 직책을 이용, 기업 해체를 유도한 정책적 방치에 심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대우 해체 및 사망선고는 경영실패가 아닌 권력의 저격이었다는 것.

또 다른 복수의 증언자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김 전 회장은 재기보다 과거 기업가로서 명예회복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불공평하게 정책을 집행한 사람, 권력의 견제, 경제위기를 기회로 개인의 배를 채운 부도덕한 관료 및 정치인, 기업인 등에 대해 일정 부분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 김 전 회장은 과연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의 입에 국민의 눈길이 집중된다.





주간동아 2005.06.28 491호 (p20~23)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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