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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개업 의사들 박사학위 장사 박사 좋아하는 국민성 탓?

개업 의사들 박사학위 장사 박사 좋아하는 국민성 탓?

개업 의사들 박사학위 장사 박사 좋아하는 국민성 탓?
의대와 치대, 한의대 교수들이 개업 의사들을 상대로 박사학위 장사를 했다고 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실태 조사와 처벌을 약속하고 나섰다. 그들의 죄목은 석ㆍ박사 과정에 등록한 개업의들에게서 돈을 받고 수업이나 실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도록 편의를 봐주고, 논문을 대신 써준 혐의(배임수재)란다.

그런 악습에 대해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이런 관행이 이미 40년쯤 전에도 성행했다. 당시 모 일간지 과학 담당 기자였던 필자는 어느 개업의사의 박사학위 자축연에 끼여 저녁을 얻어먹은 기억이 있다. 그는 모 의과대학의 한 연구실에 상당한 돈을 기부했는데, 그 덕분에 연구실은 풍성한 연구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고 그 보답으로 그의 학위 논문을 써주었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과연 이 의학박사님이 자기 박사학위 논문의 내용을 알기나 할까’ 하는 엉뚱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자기 학위논문의 제목조차 몰랐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그저 관행으로 널리 행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박사가 된 의사는 학위 자격을 충분히 활용하여 더 ‘훌륭한’ 의사로서 자기 병원에 더 많은 환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런 일이 많이 없어졌을까. 이번에 그 옛날의 관행이 새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긍정적인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박사 의사를 선호하는 이 같은 ‘이상한’ 행태는 우리 국민이 지나치게 박사를 좋아해 일어난 부작용인 셈이다. 필자는 ‘의사란 경험이 많을수록 환자를 더 잘 볼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요즘 병원을 가보면 믿을 것이 못 되는 편견이란 느낌을 받는다. 의료기구가 너무나 정교하게 발달해서 의사는 단지 검사 결과를 읽어내는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험조차 신뢰할 만한 준거점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개업 의사에게 ‘경험’이 ‘박사학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의 의료 소비자들이 ‘박사 의사’를 좋아하게 된 데는 미국 영화의 영향이 절대적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를 보면 의사를 언제나 ‘박사’로 호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의사를 부를 때 쓰는 ‘닥터(doctor, Dr.)’란 표현은 꼭 ‘의학박사’란 뜻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번역가들이 ‘박사’로 옮겨놓다 보니 의사는 박사 학위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는 추측이 나올 수 있다. 미국 의사들 대부분은 박사가 아님은 물론이다.



개화기의 선각자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웠으며, 독립협회에서 활동했던 서재필 선생을 부를 때 한국의 언론은 대개 ‘서재필 박사’란 호칭을 쓰곤 한다. 하지만 그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가 아닌 보통 의사이니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그저 ‘의사 선생님’ 정도라야 알맞지만, 해방 전후 그가 얻은 의사 자격(MD, medical doctor)의 닥터와 학문적 연구 결과에 대해 붙여지는 박사(대개 PhD, doctor of philosophy)의 닥터를 혼용한 탓에 붙여진 호칭인 셈이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현실은 고상하지만 먹고살 길조차 막막한 ‘박사’보다야 재력 넘치는 ‘의사’ 쪽이 훨씬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으니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5.04.19 481호 (p65~65)

  •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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