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1

2005.04.19

유채꽃이 자동차 연료라고요?

꽃씨 추출 식물성기름 ‘바이오디젤’ 원료 … 의약품부터 환경 정화까지 ‘식물 전성시대’

  • 임소형/ 과학동아 기자 sohyung@donga.com

    입력2005-04-15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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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채꽃이 자동차 연료라고요?

    아마존 밀림과 해바라기. 식물자원은 인류가 개발해야 할 마지막 자원의 보고(寶庫)이다.

    해마다 이맘때 제주도는 유채꽃이 절정을 이룬다. 유채꽃밭에서 신혼의 단꿈을 사진에 담는 데 여념이 없는 신혼부부들은 유채꽃이 자동차 연료로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까.

    유채꽃씨에서 추출한 식물성기름은 친환경 연료인 ‘바이오디젤’의 원료다. 바이오디젤은 휘발유나 경유보다 배기가스를 훨씬 덜 배출한다. 경유보다 산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산화력이 좋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오염 물질의 주성분인 황이 들어 있지 않아 환경오염을 덜 일으킨다.

    유채꽃뿐만 아니라 콩, 해바라기씨, 코코넛 등도 대표적인 바이오디젤의 원료다. 우리나라의 경우 콩, 특히 대두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채꽃보다 콩의 생산량이 훨씬 많아서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인 콩이 이제 ‘밭에서 나는 연료’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

    유럽연합(EU)은 2012년까지 경유의 약 6%를 바이오디젤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바이오디젤을 판매하는 주유소가 수도권 지역에만 30군데나 있다.

    최근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을 연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식물 전성시대’다.



    숲은 이산화탄소 먹는 하마

    강원 평창군 도암면 능경봉 신갈나무 숲 속에는 서울대 기후물리연구실과 충남대 식물생태연구실이 공동 운영하는 대관령 생태기후관측소가 있다. 이곳 산 중턱에 사람 키의 15배가 넘는 관측탑을 세워놓고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 이 숲이 세계 어느 나라의 숲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하고 적게 내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식물로 가득한 숲이 기특하게도 ‘이산화탄소 먹는 하마’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올해 2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2년까지 일정 수준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기후협약이 발효된 데다, 2000년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인 점을 상기해보면 우리 숲의 이 같은 ‘능력’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중금속도 먹는다. 박달나무, 해바라기, 클로버 등이 그 주인공. 이런 식물은 몸 안에 들어온 중금속 같은 오염 물질들을 자체적으로 분해해 영양성분으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식물에 들어 있는 어떤 단백질은 놀랍게도 중금속의 독성을 완화하기도 한다. 국내외에서 공장이나 광산으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 이런 식물들을 심어 환경을 정화하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우주에서도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세계 15개국이 우주개발을 위해 공동 운영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도 ‘우주정원’이 있다. 이곳의 우주 식물들은 무중력과 태양복사에너지로 인해 ‘개성 있게’ 자란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자란 장미는 지구에서 자란 장미와 색깔 및 향기가 다르다. 일본의 유명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는 이 같은 우주 장미의 향기를 정밀 분석해 새로운 향수를 만들기도 했다.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의약품 개발에 이용한 예는 역사가 꽤 길다. 제약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린 항암제 ‘탁솔’도 주목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개발한 것.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요즘 감자 연구가 한창이다. B형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감자에 넣어 쥐에게 먹였더니 항체가 생긴 것이다. B형 간염 예방주사를 맞는 대신 ‘감자백신’을 ‘먹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몇 달 전 기자는 갈라파고스제도 취재차 남아메리카 에콰도르를 방문했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안데스산맥 해발 2850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 에콰도르 제2의 대도시 과야킬은 동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항구도시다. 그래서 에콰도르에서는 저지대부터 고지대까지의 식물 분포 양상을 한번에 볼 수 있다. 고산지대 특유의 건조하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쑥쑥 잘 자라는 식물도 많으니, 식물학자들에게는 이곳이 매력적인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유채꽃이 자동차 연료라고요?
    최근 에콰도르에는 세계 굴지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속속 입성하고 있다. 왜일까. 이곳은 예부터 민간요법이 매우 발달해 있다. 주민들이 고도에 따라 다양하게 서식하는 식물들을 약초로 이용해왔기 때문. 따라서 화학합성법만으로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한계를 느낀 제약회사들이 자국에서 구할 수 없는 새로운 자원을 찾아 이곳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에콰도르의 풍부한 식물자원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곳 과학계는 이 같은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죠.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에콰도르를 많이 방문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이곳의 식물자원 활용 방법을 개발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키토에서 만난 심국웅 에콰도르 대사의 간절한 소망이다.

    에콰도르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페루도 식물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에는 약 10만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서식하는 식물 종의 자그마치 3분의 1에 해당한다. 페루의 토종식물 중 하나는 얼마 전 미국에서 에이즈 환자의 설사를 멎게 하는 치료제 개발에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식물학자들과 제약회사들은 이미 남아메리카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지 오래다. 최근 우리나라도 페루와 국제협력 연구로 ‘유용 식물소재 추출물 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과학자들이 알게 모르게 치열한 ‘식물자원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식물자원의 ‘옥의 티’라면 자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작은 풀은 성장 기간이 수일에서 수개월이지만, 큰 나무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의 성장을 빠르게 하거나 기존 식물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식물 유전자를 조작하는 연구도 아울러 이뤄지고 있다. 물론 유전자가 조작된 식물이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게 한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앞으로 첨단 식물 연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그래서 하필 식목일 바로 전날 발생한 강원도 고성과 양양 지역의 산불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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