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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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정치 심판의 ‘14일간 선수생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4-15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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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 정치 심판의 ‘14일간 선수생활’

    임좌순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37년간 지켰던 심판석을 박차고 나와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던 임좌순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선수’ 데뷔전이 실패로 끝났다. 임 전 총장은 충남 아산의 4·30 재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낮은 지명도 등으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꿈을 접었다. 우리당은 경선 기회를 주지 않은 게 미안했던지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지만, 제3공화국에서 참여정부까지 대선 10번, 총선 10번, 지방선거를 5번 치러낸 ‘선거 파수꾼’이자 ‘미스터 선관위’로 불리던 그의 화려한 경력은 이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후였다. 37년간 주심으로 활동했던 임 전 총장은 14일간의 정치활동이 생소하면서도 남다른 느낌이다. 무엇보다 40여년 동안 쌓은 ‘내공’이 통하지 않는 현실에 적이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임 전 총장은 4월7일 전화통화에서 “바깥에서 심판을 볼 때와 그라운드에 나서 직접 선수로 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더라”며 정치 나들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임 전 총장은 실패로 끝난 선수 데뷔전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특히 선관위 시절 그가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선거법’이란 제도가 정작 현실정치에 적용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점에서 속이 편치 못한 눈치다.

    임 전 총장은 이번 데뷔전을 통해 ‘정치 신인이 얼굴을 알릴 기회가 없다’는 현실정치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임 전 총장은 “기성 정치인은 아무래도 지역에서 지명도가 높은데 그런 사람들과 여론조사 또는 경선을 한다는 것이 애초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공직에서 사퇴한 그가 지역 유권자들과 얼굴을 맞대면한 것은 3월12일. 우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직후였다. 그 이전에는 유권자(기간당원)들과 만날 경우 불법 선거운동이 된다. 미스터 선관위였던 그가 선거법을 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 결국 선거법을 준수하다 보니 경쟁력은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 신인은 손발을 묶어놓는 데 반해, 기성 정치인들은 20~30m 앞서 출발하는 불공평한 상황이 연출된 것.

    임 전 총장은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금지한 선거법이 시대적 흐름에 맞게 변화의 바람을 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로 데뷔한 지 14일 만에 느낀 소회다. “과거의 경우 온갖 탈·불법 선거운동이 난무해 규제 중심으로 법을 적용했지만, 이제는 선거문화가 바뀌었으니 합리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 돈이 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치 신인들이 적극적으로 얼굴을 알릴 수 있게 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 전 총장은 불법 선거운동이 횡행하는 배경으로 조직 선거를 꼽았다. 그래서 이를 막을 수단으로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한 간접 선거운동 쪽으로 선거법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선수로 뛰면서 여기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먼저 언론 활용론이 무용지물임을 체험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아산에 무슨 언론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중앙일간지나 방송은 이용하기 힘들고, 기껏 지역신문에 의존해야 하지만 지역신문도 정치 신인을 차별하기는 마찬가지. 공정성에 의혹을 제기할 만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임 전 총장은 언론을 통한 얼굴 알리기를 포기했다. 인터넷을 대안으로 설정했지만 이마저 노인 유권자가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선거운동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발로 뛰는 선거운동이 전부였지만, 넓은 지역에서 하루 만날 수 있는 유권자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선수로 뛴 2주일 동안 임 전 총장은 선거자금과 관련해서도 교훈을 얻었다. 돈을 못 쓰게 한 선거법은 손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일부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양성화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감안하면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 다만 경선의 문제점, 중앙당의 일방적 의사구조 등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러한 불합리한 정치 현실이 임 전 총장의 선수 데뷔를 좌절시켰지만 임 전 총장은 여기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 전 총장은 “심판석에 있을 때 그들 보고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그 길을 따라가면 말이 되겠느냐”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공천에서 탈락한 후 예비후보 철회서를 중앙당에 전달하고 조용히 ‘재여’로 돌아왔다. 14일간의 선수생활에서 느낀 문제점을 정리, 개선책을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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